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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듣는다

연희집단 갱 <연희풍경 [연희동, 금토일]>

손옥주

제224호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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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집단 갱’의 <연희풍경 [연희동, 금토일]>을 만났던 날, 문득 티벳학자인 심혁주 선생의 글이 떠올라 간만에 책을 펼쳐보았다.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기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선생은 생명체의 본질에 대한 서언을 남겼다.

나는 살아있다는 것의 본질을 ‘소리’와 ‘냄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움직이고(動), 움직이기 때문에 소리(聲)를 내고, 소리를 내기 때문에 냄새(齅)를 발산하고 그리고 타자를 만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소리와 냄새를 가지고 말이다.

- 심혁주, 『소리와 그 소리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 궁리, 2019, 5쪽

책을 읽으며 살아있음과 움직임과 소리가 맺는 인과의 상태를 부지런히 좇던 시선이 “타자를 만나기 때문이다”라는 문구에 한참 동안 머물렀다. 이 문장은 단순히 타자를 자아의 확장으로 해석하거나 자아를 세계의 응축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와는 사뭇 다른 지점에서 시작된 듯했다. 또한 이 문장에서는 움직임을 ‘시간성 안에서 발생하는/발생되는 변화’로 정의하거나 ‘소리를 발생시키는 물질 간의 마찰’ 정도로만 이해하는 열린 한계 또한 별달리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쩌면 선생이 문장이라는 형식에 담아 제시하고자 했던 인과란 한 세계의 출현이 다른 세계의 진동으로 작용하는 일련의 상태와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옴이 마니를 진동시키는 것처럼 궁---의 울림이 딱!--의 상태를 추동하는 것. 의도됨과 의도되지 않음 모두의 너머에서 그저 그렇게 지금 여기에 놓여 있는 상태. 그런 점에서 소리의 기원이란 어쩌면 절대적으로 세밀한 살아있음의 양상들이 모여 리듬이라는 이름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바로 그 순간에 비로소 경험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희풍경 [연희동, 금토일]>의 공연사진이다. 푸른 조명이 화이트박스 전반을 채우고 있고, 기둥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꽹과리를 든 두 명의 연희자가, 오른쪽에는 각각 장구와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는 연희자가 있다. 흰 상하의를 입은 네 명의 연주자는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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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부터 사흘간 연희예술극장에서 펼쳐진 <연희풍경 [연희동, 금토일]>은 이처럼 관계로 경험되는 소리의 기원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연희집단 갱’의 창작자 4인(김기영, 김해민, 임동식, 조선아)은 작년부터 <연희풍경>이라는 제목의 리서치 퍼포먼스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번 공연은 작년 12월에 발표된 <연희풍경 [화천, 세 시]>와 올해 2월에 발표된 <연희풍경 [혜화, 일곱 시]>에 이은 세 번째 발표작이었다. 공연 리플렛에 따르면 이번 공연은 “‘공간을 듣는 몸으로 합주하기’라는 단순한 출발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특히 공연 전반에 걸쳐 “듣는 상태와 하는 상태의 일치. 타는 상태. 접촉의 순간” 등 창작 과정 중에 새로이 발견되거나 비로소 상기된 것들에 대한 창작자 저마다의 경험과 그 경험들이 서로 얽혀가는 양상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이는 곧 제도화된 전통연희의 수행 방식을 오랜 기간 익혀왔음에도 그 과정에서 체화되어버린 습(習)으로부터 끊임없이 미끄러지기로 한 창작자들의 선택과 그로부터 비롯된 어떠한 얽힘의 상태가 공연의 전면에 등장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매 순간 소리로, 몸으로, 진동으로 서로 얽고 얽히며, 다시 말해 ‘연희하며’ 이들이 만들어가는 것은 다름 아닌 제목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이때의 풍경이란 더 이상 관조를 전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자의 의미 그대로 마치 바람(風)과 볕(景)이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며 순환하듯이, 풍경은 그저 그곳에서 머물거나 흘러가며 무엇인가를 ‘듣는다’.

<연희풍경 [연희동, 금토일]>의 공연사진이다. 장구를 연주하는 연희자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의 맞은편에 가야금 주자가 앉아 연주하고 있다. 공간 전체가 어둑어둑하며 가야금 연주자의 뒤편 벽에는 꽹과리를 치는 연희자의 그림자가 크게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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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의 자리에 ‘어떻게’로 시작하는 질문을 놓”1)기로 결심한 4인의 창작자들에게 있어 무엇인가를 듣는다는 것은 듣는 주체가 듣는 대상을 향해 귀 기울이고자 하는 의지적 행위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혹은 서로의 소리를 듣기 위해 가야금을 뜯고, 장구를 치고, 꽹과리를 울리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악기와 만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소리 그 자체의 상태로 끊임없이 이행(transition)시키려는 어떠한 실천적 순간들이 모여 ‘듣는다’는 행위를 완성하는 듯했다. 가야금을 뜯고, 장구를 치고, 꽹과리를 울리는 것은 그와 같은 이행의 흐름 위에 자연스레 놓인 하나의 순간이었으므로, 그것은 가야금을 뜯지 않고, 장구를 치지 않고, 꽹과리를 울리지 않던 순간과 동등한 의미로 다가왔다. 또한 그것은 뜯거나 치거나 울리는 순간의 전후에 각 창작자의 몸을 통해 발산되던 즉흥적인 움직임과도 의미의 경중을 다투지 않았다. 가령, 필자가 관람한 공연 회차에서는 창작자들이 모두 무대 위에 등장한 뒤로도 약 4분 30초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악기의 소리를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는데, 악기를 매개로 한 소리 이전부터 부단히 움직이며 자신만의 호흡과 리듬을 찾아 소리의 길을 만들어가던 창작자들의 모습을 통해 소리의 생성 기원임과 동시에 일종의 소리 그 자체가 되어가던 4인 4색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연희풍경 [연희동, 금토일]>의 공연사진이다. 의자에 앉아 꽹과리를 연주하는 연희자의 모습이 정면에 보이고 그 뒤로 장구 연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관객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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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풍경’이란 변화를 통해서만이 비로소 경험될 수 있음을 말해주듯, 약 30분씩 총 9회에 걸쳐 진행된 이번 공연의 관객수는 회차마다 4명 또는 15명 또는 40명으로 상이하게 설정되었다. 조명으로 무대 한켠에 자리한 차가운 흰 불빛은 차차 노을 지는 주황빛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암전으로 전이되며 시간의 흐름을 상태로서 계시하고 있었고, 만(卍)자의 한 획을 닮은 무대 구조는 극장 이곳저곳에 흩어져 앉아 있던 관객 개개인에게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을, 들을 수 있는 것과 들을 수만 있는 것을 동시에 경험케 하기도 했다. 풍경이 되어 동시에 아련히 피어올랐다가 찰나의 시간에 사라져버리곤 하는, 그리고는 어딘가에 잠복해있다가 아무렇지 않게 슬쩍 고개를 내밀곤 하는 소리의 궤적을 따르며 어떤 것은 포기될 수 있으나 포기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여전히 같은 시공간에서 생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구축되어가고 있는 ‘연희집단 갱’의 창작 작업은 어쩌면 횔덜린이 말했던 “시적 논리(poetic logic)”와도 맥이 닿아있는 것인지 모른다.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작업으로 유명한 작곡가 하이너 괴벨스는 한 강연에서 횔덜린의 이 개념이 분석적, 철학적 논리와는 다르게 우리가 지닌 비선형적 감각과 연결되어 있음을 언급하며 “여러 다양한 연쇄 안에서 생각과 감정과 반영이 점차 성장해”2)감을 인용, 강조한 바 있다. 서로 다른 감각을 이루는 “보다 독립적인 부분들 간의 연결에 대해 리듬”3)이라고 한다면, 다시 말해 특정한 시간 프레임으로서의 박자가 아닌, 연결됨의 상태 그 자체에 대해 리듬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면, 9월의 어느 금, 토, 일요일에 연희동 한복판에서 펼쳐진 소리의 장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었던 질문들 또한 그것에 다름 아님을 문득 기억해본다.

<연희풍경 [연희동, 금토일]>의 공연사진이다. 꽹과리를 들고 의자에 앉은 연희자의 뒷모습과 그 맞은 편에 서서 꽹과리를 연주 중인 다른 연희자의 모습이 보인다.

소리를 향한 충동을 버린다. 소리는 인과 작용의 결과가 아니다. 원인이 아니라, 발생을 눈치챌 뿐이다. ‘왜’의 자리에 ‘어떻게’로 시작하는 질문을 놓는다. 하나의 답을 구하지 않는 태도로 안으로 안으로 또는 밖으로 밖으로 파고드는 질문을 타고 놀기로 한다.

- <연희풍경 [연희동, 금토일]> 리플렛 중

[사진제공: 연희집단 갱 ⓒ강희주]

연희집단 갱 <연희풍경 [연희동, 금토일]>
  • 일자 2022.9.23 ~ 9.25
  • 장소 연희예술극장
  • 공동창작/출연 조선아, 임동식, 김해민, 김기영 연출 김기영 아트디렉터/그래픽디자인 정김소리 조명감독 Team Tak 무대감독 용도 드라마투르기 박두헌 영상촬영 이영균 사진촬영 강희주 현장진행/무대크루 이지호 조명크루 이상민 감사한 분 김건중 주최/주관 연희집단 갱
  • 관련정보 https://www.instagram.com/p/CiWdHdSpEeR/?igshid=MDJmNzVkMjY=
  1. <연희풍경 [연희동, 금토일]>의 공연 리플렛 참조.
  2. Heiner Goebbels, Aesthetics of Absence: Questioning Basic Assumptions in Performing Arts, Cornell Lecture on Contemporary Aesthetics, 9 March 2010, p. 4.
  3.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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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옥주

손옥주 공연학자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극학, 무용학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무용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포스트닥터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현재 학술 연구와 동시에 리서치 파트너와 드라마터그로 공연 현장에서의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춤의 감수성과 문학적 상상력은 서로 맞닿아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춤을 닮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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