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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위한 실패의 즐거움

지금아카이브 ‘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
김은한 <상식적인 접근>

진송

제229호

2023.01.26

이번 호 [리뷰]에 게재된 글은 ‘2023년 웹진 연극in [리뷰] 코너 필자 공모’의 선정작입니다. 공모에 선정된 필자는 2023년 한 해 동안 [리뷰] 코너의 고정 필진으로 활동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김은한이 쓰고 연기한 스탠드업 코미디 <상식적인 접근>은 의도적으로 관객들을 웃기는 데 실패하는 극이다. <상식적인 접근>이 가지고 있는 치밀함과 정교함, 그리고 코미디의 실패가 야기하는 적막은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상식적인’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있다. 마트료시카 인형을 하나하나 열어 보듯, 김은한에 의해 설계된 연극에 깊이 연루되다 보면 아무것도 쥐지 않은 축축한 손바닥 같은 텅 빈 실패만이 관객의 손아귀에 남는다. 웃음만으로는 도착할 수 없는 어떤 실패에 대해, 그 실패가 목적지인 어떤 세계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나는 배우와 관객들이 만든 ‘비밀 클럽’을 잠시 빠져나온다.
‘왼손을 들면 박수, 오른손을 들면 환호성’이라는 호응 유도로 시작하는 김은한의 극은 그의 지시를 순순히 따르는 친절한 관객들의 성원 속에 막을 올렸다. 관객들은 정말로 코미디언에 대한 호의를 가지고, 어쩌면 코미디에 투자한 자신의 귀한 저녁 시간을 위해, 그의 모든 몸짓 하나하나에 웃어주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가 반복해서 재미없는 농담을 관객들에게 던지는 바람에 관객들의 어색한 웃음은 점점 잦아들게 되었고, 김은한이 회심의 개그 ‘젖꼭지 삠’을 외치며 가슴을 앞으로 쭉 내미는 자세를 취했을 때에 관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무도 웃지 못했다. 세상에는 창백한 조명을 받고 있는 김은한의 몸과 거대한 정적만이 남은 듯했다. 그 거대한 정적은 웃지 못한, 웃어주지 못한 관객인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와 온몸을 지그시 짓눌렀다. 코미디언에게 가장 두려운 순간, ‘바밍(Bombing)’1)의 순간이 발생한 것이다. 고백건대 그 순간은 관객인 나에게도 꽤 섬뜩하게 경험되었다.

배우 김은한이 무대 중앙에 서있다. 상하의 모두 붉은색의 생활한복을 입고 있다. 여미지 않은 상의 안쪽에는 검은색 라운드 티셔츠를 바지 안으로 넣어 입었다.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있으며, 안경을 쓰고 구불구불한 컬이 있는 짧은 머리다. 오른팔을 얼굴 높이에, 왼팔을 가슴 높이에 들고 있으며, 몽롱하게 객석을 바라보고 있다. 무대 뒷벽은 세로로 주름이 잡힌 커튼으로 채워져 있으며, 푸른색의 어두운 조명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상식적인 접근>이 완전히 실패한 공연으로서 막을 내린 것처럼 보였을 때, 김은한이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고 연기를 이어나가며 사실상의 2막이 시작된다. 어떤 익명의 사람이 공연을 망쳤다며 괴로워하는 김은한에게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가 아닌 ‘비밀 클럽’에서 공연을 하지 않겠냐고 제안하고, 그곳에서 김은한은 난데없이 하이쿠2)낭독을 하게 된다. 비밀 클럽에서, 김은한은 아주 훌륭하게 하이쿠를 낭독하고 그 의미와 사연을 설명한다. 관객들 사이에는 여전히 침묵이 감돌지만, 그것은 전과 같은 무겁고 죄스러운 적막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으로 반짝거리는 경청의 반증이다.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하이쿠들을 소개하며, 연신 “좋네요”, “좋아요”를 남발하는 김은한을 보노라면 이 사람이 애초에 즉흥적인 웃음으로 가득한 코미디보다는 행간의 침묵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지를 되묻게 될 정도다.
하이쿠 공연을 마친 김은한은 공연을 제의한 사람에게 ‘더 깊은 비밀 클럽’에서 공연을 할 것을 제의받는다. 이곳에서 김은한은 ‘침묵’이라는 형태의 ‘웃음’을 공연한다. ‘공연한다’는 동사는 그날 무대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기에 다소 부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김은한은 침묵이라는 형태의 웃음을 관객에게 ‘제시하고’, 관객과 ‘합의한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웃음이 퍼지는 것을 침묵 속에서 ‘느껴보라’고 ‘제안한다’.
소극장 무대에서 비밀 클럽으로, 더 깊은 비밀 클럽으로, 즉 더 침묵에 가까운 곳으로 공간이 전환되는 이 극의 전개와, ‘왼손을 들면 박수, 오른손을 들면 환호성’이라는 방식으로 관객과의 합의를 만들어냈던 이 극의 시작, 웃음으로서의 침묵으로 경험되기 이전에 무거운 바밍의 순간으로 미리 경험되었던 침묵은 ‘웃음으로서의 침묵’을 합의하는 것으로 갈무리되는 해당 장면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며 <상식적인 접근>을 단어 하나하나가 정합적인 한 편의 정형시– 마치 하이쿠 -처럼 보이게 한다. 여기까지만 감상하노라면 〈상식적인 접근〉은 실패를 수단으로 활용하여 이룩한 완벽한 성공의 한 사례처럼 보인다. 코미디언에게 가장 두려운 순간이라는 ‘바밍’마저도 설계하고 활용하는 이 치밀한 연극에 진짜 실패가 개입하거나 끼어들 틈은 없을 것 같다.

무대 위의 김은한이 배를 내밀고 왼손을 위로 쳐들고 있다. 눈을 감은 채로 입으로는 ‘오’나 ‘우’와 같은 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연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김은한은 뒤이어 자신이 선물한 ‘침묵―웃음’을 음미하는 관객들 앞에서 마치 바밍이 발생했을 때처럼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이 이 연극의 진짜 마지막 장면이다. 하지만 이 ‘마지막’ 장면은 역설적이게도 연극이 끝난 이후에도 깔끔한 ‘마무리’가 아닌 중단 없는 하강의 움직임이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비밀 클럽 아래에는 더 깊은 비밀 클럽이, 침묵 너머에는 더 깊은 침묵이, 혹은 그 뒷면에 무시무시한 폭소를 숨기고 있는 침묵이 있다는 것을, 이 연극을 본 관객이라면 알 수 있다. 이 하강의 움직임에 따라 관객들마저 모조리 속게 만들었던 김은한의 실패라는 정교한 도구는 연극의 성공이 아닌 실패를 향해 꼼짝없이 다시 되돌려진다.
코미디가 (대개 소수자의 사회적인) 실패와 부적응을 활용해 웃음을 유발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상식적인 접근>이 실패를 마주한 후 내보이는 몸짓들 앞에서는 관객도, 배우도 아무도 조롱하듯 폭소할 수 없다. 김은한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간 순간부터, 그 이전에 김은한이 만들어낸 연극의 합의에 동의한 순간부터, 관객 역시 이 연극의 실패가 만들어내는 하강의 움직임에 깊이 공모하게 되기 때문이다. 김은한이 더 깊은 비밀 클럽으로 이동할 때, 관객 역시 더 깊은 비밀 클럽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패를 향한 비웃음을 가능하게 하는 거리두기는 이 기묘한 공모를 통해 불가능해지고, 관객을 따돌리는 김은한의 속임수를 통해서 다시금 재생산된다.

김은한이 왼발만 땅에 딛고 오른발은 뒤로 90도 구부린 채 서 있다. 팔을 조금 구부린 상태로 양손은 허리 높이에서 축 늘어져 있으며, 혀를 쭉 빼고 있는 모습이다.

자본주의의 합리성은 이러한 실패를 용인하지 않으며,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뭔가를 생산해 내기를 강요한다. 그 무언가는 관객의 웃음일 수도, 관객을 웃기는 데 성공한 ‘스타 코미디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연극은 뭔가를 생산해내기보다 실패의 루프 안에 도착적으로 머무르기를 고집한다. 이 반복과 머무름은 생산적인 미래를 그 목적으로 두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호세 무뇨즈(Jose Munoz)가 「화장실을 크루징하기(Crusing the Toliet)」에서 대안적인 미래성으로 언급한 “그 안에서 아무것도 생산되거나 행위되지 않지만 무언가 인내되고 지지되는 몸짓”3)을 연상케 한다. 그는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음을 견뎌내는 순간이야말로 무너지고 실패하는 몸들을 매개하는 가능성이자 아름다움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실패하고, 여러 겹의 섬세한 실패와 그 결과를 음미하는 듯한 이 연극의 어불성설은 말 그대로 코미디다. 그러니 웃음소리 사라진 이 코미디의 즐거움은 바로 거기에 있다. “나는 실패한다. 왜냐하면 실패하고 싶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접근>을 설명하는 조금은 장난스럽고 조금은 우울한 이 동어반복 앞에 잠시 멈춰서 본다. 내가 멈춰선 이곳은 실패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오로지 실패 그 자신만을 목적으로 하는 즐겁고, 우울하고, 느릿한 하강 놀이의 행간이다.

김은한이 손가락을 쫙 편 채 왼팔을 높이 들고 있다. 오른손을 주먹을 쥐고 있으며, 입은 크게 벌려 ‘아’와 같은 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듯 보인다.

[사진 제공: 지금아카이브, 촬영: 손영규]

지금아카이브 ‘2022 코미디캠프: 파워게임’
  • 일자 2022.8.18 ~ 8.28
  • 장소 용산 펀타스틱 씨어터
  • 기획·연출김진아 작·출연김은한, 배선희, 신강수, 안담 음악배선희 조명정유석 그래픽김진아 홍보도움사랑해 촬영손영규 수어통역‘공인수어통번역 잘함’ 김홍남, 최황순 문자통역‘소리를 빚다’ 이시은, 박세원, 임정희 배리어프리 자문이래은 PD이선민 제작지금아카이브 후원서울문화재단
  • 관련정보 https://nowarchive.kr/powergame_crewstage
  1. 코미디 공연에서 웃기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웃지 않는 경우를 일컫는 용어이다.
  2. 일본 정형시의 일종으로, 17음 내에 운치와 의미를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3. Jose Esteban Munoz, “Cruising the Toilet: LeRoi Jones/Amiri Baraka, Radical Black Traditions, and Queer Futurity”, in Cruising Utopia: The Then and There of Queer Futurity, NYU Press, 2009, p.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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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송

진송
2020년 7월 『문장웹진』에 「남자 없는 여자들」을 발표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비평 콜렉티브 ‘누워있기협동조합’에서 재미있는 기획들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의 구성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블로그 ‘진진송의 블로그(blog.naver.com/zinsongzin)’를 운영 중이다.
zinsongz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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