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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의 활동 범위 <두 평짜리 타임캡슐>

권나은

제232호

2023.04.27

윈도우 바탕 화면 위에 폴더가 떠 있다.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을 궁금해하며, 폴더를 클릭한다. 폴더 안에 새 폴더(1)이 들어 있다. 다시 폴더를 클릭한다. 새 폴더(2)가 나온다. 저 너머에 숨겨진 ‘무언가’를 기대하며, 새 폴더(2)를 클릭한다. 새 폴더(3)이 나온다.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폴더를 계속 클릭하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잠시 후, 화면에 윈도우98 화면 보호기가 나타난다. 형형색색 3D 파이프가 ‘ㄱ, ㄴ, ㄷ, ㄹ’ 모양으로 구부러지며, 끝없이 증식한다. 화면 보호기 속 파이프가 연결되는 모양은 현란하고 아름답지만, 기실 파이프에는 아무런 의미도, 관념도 들어 있지 않다. 화면 보호기는 클릭 한 번에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 이미지는 연극 <두 평짜리 타임캡슐>에서 사용되는 영상 클립의 일부다.

우리의 삶은 화면 보호기처럼 무의미하게 증식되는 풍경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신기루에 매혹된다. 연극도 이와 유사하다. 연극 무대는 환상 공간이다. 관객들은 무대 위의 모든 것이 결국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도, 다시 극장으로 향하고, 무대 위 정동에 마음을 빼앗긴다. 우리를 추동하는 환상이, 잠깐이나마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삶이 연극의 일부분이기 때문일까?

<두 평짜리 타임캡슐>의 공연 사진. 무대 뒷벽에 윈도우98 화면 보호기 이미지가 영사되고 있다. 어두운 푸른 조명이 무대를 비추고, 그 가운데에 반소매 상의와 검은 바지를 입은 승혁이 왼발을 땅에 딛고 오른 발은 뒤로 접어 올려 움직이고 있다. 그의 상체는 반시계방향으로 틀어져 있고 왼팔은 쭉 뻗어 어깨 높이에, 오른팔을 살짝 접어 가슴 앞에 위치시켰다.

압축 풀기

무대 위에는 두 평 남짓한 네모난 공간이 있다. 공간 위에 온열기, 빛이 바랜 커튼, 짐볼, 피아노 의자, 담요, 옷걸이, 마트 쇼핑백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곳은 승혁의 두 평짜리 방이고, 배경은 경기도 과천의 주공아파트다. 승혁의 가족은 이 아파트에서 이십 년 넘게 살았는데, 아파트 재건축 문제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네모난 공간은 연극이 진행되는 공간으로, 환상이 들어서는 영역이다. 네모 바깥의 공간은 환상이 개입하지 않는 영역, 비-연극 공간이다. 관객은 무대(네모난 공간)에서 극이 시작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앞을 바라본다. 이때 ‘지하 1층입니다’ 하는 안내음과 함께, 극장 왼쪽 구석에 있던 실제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주인공 승혁이 등장한다. 승혁은 관객들을 보며 “오늘 우리 아파트 뭐 해요?”라고 묻고, 무대 위로 진입한다. 원래 엘리베이터는 극장 내외부를 이어주는 이동 장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공연에서는, 시작과 동시에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가 통제되며, 철저히 무대 안에서만 극이 전개된다. 그런데 <두 평짜리 타임캡슐>은 엘리베이터(외부 통로)를 통제하지 않고, 오히려 무대(네모난 공간)와 연결해 버린다. 이로써 두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은 외부로 무한히 확장되고, 관객은 구경꾼이 아닌 공연의 일부(아파트 주민)가 된다.

승혁은 짐을 정리하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방학 숙제로 그렸던 <우리 동네를 소개합니다>라는 그림을 발견한다. 그림에는 어린 시절의 승혁이 바라본 동네 풍경이 고스란히 저장돼 있다. 승혁은 압축 폴더(zip)를 해제하듯이 방에 놓인 물건들을 하나씩 들어 올리고, 그림 속 풍경을 재현한다. 옷걸이는 아파트 화단의 해바라기로 변한다. 의자는 놀이터의 친구들과 승혁을 이어주는 베란다로 변한다. 온열기는 공중전화로 변한다. 파란 상자는 분식점, 스탠드는 문방구, 밥솥은 김밥집, 플라스틱 통은 반찬 가게가 된다. 승혁의 세상은 두 평짜리 방에서, 동네 전체로 확장된다. 어린 승혁이 인식하는 동네는 아파트 단지 한두 곳과 그 근처의 학교, 상가에 지나지 않지만, 승혁은 세상을 무척 넓고 신기한 곳이라고 느낀다.

관객들은 무대 위 승혁의 인솔로 신기루를 본다. 승혁은 스탠드를 든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고물 스탠드는, 텅 빈 기표이다. 승혁은 스탠드를 ‘문방구’라고 명명한다. 관객들은 찰나에 문방구를 목격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들은 다시 고물 스탠드를 본다. 그렇지만 지금 무대 위에 있는 이 낡은 사물은, 이전의 사물과 같다고 할 수 없다. 스탠드는 텅 빈 폴더가 아닌, 누군가의 기억이 복제된 파일에 가까워진다.

<두 평짜리 타임캡슐>의 공연 사진. 무대 중앙에 두 평 남짓한 정사각형 모양의 노란 장판과 초록색 벽지를 덧붙여 승혁의 방을 구획했다. 방으로 구획된 공간에는 온갖 잡동사니와 가구가 빼곡하게 쌓여 있고, 방의 한가운데에는 파란색 단프라 박스가 놓여있다. 승혁은 왼손에 종이 박스를, 오른 손엔 커다란 장바구니를 들고 공간 사이를 애써 비집고 들어간다.

다른 이름으로 저장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거나, 이름을 바꾸어 부르는 것은 다분히 연극적인 주술 행위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변하는 값과 변하지 않는 값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이는 현대인의 삶에서 중요한 덕목인데, 인간은 언제나 환상을 추구하지만, 그 환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잘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은 보통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아파트 자체를 욕망하는 것은 아니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구조화되고 맥락화된, 아파트라는 ‘기호’를 원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환상은 하나의 소프트웨어다. 이 사실을 자각하면, 우리는 환상을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유년 시절의 승혁은 언제나 무언가를 획득하고 싶어 한다. 승혁의 욕망은 여러 갈래의 극중극으로 나타난다. 승혁은 초등학교 시절 선망하는 동성 친구 무리와 잘 지내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그렇지만 소심했던 성격 탓에 친구 무리에서 탈락하고, 은밀한 수준의 괴롭힘을 당한다. 이때 친구들을 동경하는 승혁의 마음은 ‘그림자 연극(gif)’으로 표현된다. 중학생이 된 승혁은 피아노를 잘 친다는 이유로 반 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그렇지만 어느 날 예고 지망생이 전학을 오면서, 승혁은 친구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이때 승혁의 허탈한 심경은 ‘뮤지컬(mp3)’ 형식의 노래로 표현된다. 고등학생이 된 승혁은 프로게이머를 꿈꾼다. 그는 기숙형 프로게이머 학원까지 다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사기까지 당한다. 이때 승혁의 처참한 실패담은 메모장 위에서 ‘모노드라마(txt)’처럼 기록된다. <두 평짜리 타임캡슐>은 확장자가 다른 여러 연극을 불연속적으로 배치하며, 승혁의 환상을 낯설게 제시한다.

<두 평짜리 타임캡슐>의 공연 사진. 무대 뒷벽에 강아지와 구름이 여럿 그려진 일러스트가 영사되고, 승혁의 머리와 두 팔, 그림자 인형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사람 형태의 두 그림자 인형은 승혁의 머리를 언덕 삼아 서서 마주 보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욕망한다. 환상은 우리를 강렬하게 끌어당긴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실수와 변수, 재난이 개입한다. 사랑은 대체로 실패하고, 돈은 대체로 벌기 어렵고, 꿈은 대체로 이루기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는 연극적 경험을 통해 성숙에 이른다. 연극적 경험이란, ‘나’라는 파일을 설명하는 확장자가 끊임없이 달라지는 경험을 의미한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 무엇도 아니며, 무엇도 아니기에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승혁의 유년 시절 친구 중에는, 타투이스트가 된 사람도 있고, 수의사가 된 사람도 있다. 같은 프로게이머 학원 출신 중에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프로게이머가 된 사람도 있다. 승혁은 담담한 어조로 “나는 (그냥) 내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승혁은 일어나서 방 바깥으로 나간다. 무대 위에 아파트 전경과 동네를 촬영한 영상이 나타난다. 영상 속 아파트 전경은, 승혁이 연극 전반부에서 재현하던 동네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승혁이보다 키가 큰 해바라기도 없고, 승혁이를 불러내던 동네 친구들도 당연히 없다. 그렇지만 승혁이는 비어 있지 않다. 환상이 변하는 가운데, 승혁은 살아 움직이는 자신으로 나타나 추억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한다.

연극이 진행되면서, 네모난 공간 위에 올라와 있던 대도구들은, 공간 바깥으로 서서히 치워진다. 승혁이가 자라서 ‘(그냥) 자신’이 되었듯이, 네모난 공간도 ‘(그냥) 공간’으로만 남는다. 앞으로도 이 공간(별별극장)에는 많은 환상이 스쳐 갈 것이고, 승혁도 여러 가지 꿈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데 환상이 공간의 본질은 아니듯, 꿈을 이루는 것만이 우리 삶의 목적은 아니다. 뭔가를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승혁이는 ‘자신’으로 존재하며 나아가게 될 것이다.

<두 평짜리 타임캡슐>의 공연 사진. 승혁의 방이었던 무대 뒷벽에 버스가 빠르게 지나가는 도로를 촬영한 영상이 영사되고 있다. 벽에 붙어있는 ‘임요환의 드랍쉽’,  ‘월플라워’ 포스터가 눈에 띈다. 승혁은 벽 바로 앞에 위치한 책상에 앉아, 발은 의자에 올린 채 도로가 영사되는 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제공: 별별극장 / 촬영: 조준현]

팔꿈치의 활동 범위 <두 평짜리 타임캡슐>
  • 일자 2023.3.24 ~ 4.2
  • 장소 별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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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나은

권나은
의심을 동력으로 글을 쓴다. 가끔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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