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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받은 참사들

톰스나웃시어터 컴퍼니 <산재일기>

김민조

제233호

2023.05.11

가습기살균제와 세월호. 2010년대에 깊이 아로새겨진 이 상징적인 사건들은 ‘사회적 참사’라는 전환적인 개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 단어가 함의하는 것은 첫째, 참사는 몇몇 개인의 과실로부터 비롯된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철저하게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철도 관리를 담당하는 인력이 감축되면 기차가 선로를 이탈할 가능성이 높아지듯이 몇백 명의 사상자를 초래하는 참사는 안전 시스템이 온전하게 가동·유지·보수되지 못하는 장소에서 조용하게 뿌리를 뻗어나간다. 둘째, 어떤 종류의 참사는 한날한시에 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의 신체와 정신을 망가뜨리는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안방의 세월호’로 불렸던 것처럼 참사는 일간지에 대서특필될 수 없는 개개인의 일상적인 현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생존자와 유가족이 견뎌내야 할 참사 이후의 시간들까지 참사의 영역에 포함한다면 더욱 그렇다.
산업재해는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겪어온 사회적 참사라고 할 수 있다. ‘산재’와 ‘일기’를 결합시킨 연극 <산재일기>는 산재가 어쩌다 발생하는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철저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참사임을 폭로하는 작품이다. 연극의 전언에 따르면 사회와 기업이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는 위험의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매일같이 산재로 인해 사망하거나 다칠 수밖에 없다. 산재는 노동자가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돌볼 여력이 없는 과로 환경에서 발생한다. 산재는 노동자의 보건과 안전을 확보하는 비용보다 산재 피해를 처리하는 비용이 싸게 먹히는 사회에서 발생한다. 노동과 산재의 인과성을 입증하기 어렵고, 현장 관리자와 임원들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게 짜여 있는 법률 시스템 속에서도 산재는 발생한다. 하청노동자가 입은 산재에 대해 원청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고용 구조 속에서 산재는 꼬리를 물고 발생한다.
그러나 <산재일기>를 보는 관객들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장벽은 기업이나 정부, 법원의 문제가 아니라 산재를 내 피부에 닿아 있는 사건으로 선뜻 감수하기 어려운 우리들 자신의 문제일 것이다. 본인이 산재 경험과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여기에는 관객 개개인의 경험이나 공감 능력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또 다른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그 문제는 노동의 현장이 재현 체계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주류적인 미디어 산업은 노동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나 노동 행위를 둘러싼 물질적·제도적 환경을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노동이 콘텐츠가 되기 위해서는 상품이 만들어지는 ‘공정’ 단위로 시퀀스가 쾌적하게 연결되어야 하며, 노동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복 작업은 가속되거나 편집되어야 한다. 노련한 장인, 탁월한 기술, 완벽한 상품의 이미지로 가공된 노동 콘텐츠 안에는 졸음을 참아가며 일하는 잔업노동자나 오작동을 일으키는 기계, 잘려나간 손가락에 대한 상상력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 문제에 개입하는 예술은 노동을 감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재현 체계에 어떻게 도전할 것인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극 <산재일기> 공연 전 무대 사진. 블랙박스 무대의 뒷벽에 열일곱 명의 이름과 출생년도, 그리고 그 위치성이나 정체성을 나타내는 소속, 직위, 혹은 가족관계 등의 텍스트가 영상으로 투사되어 있다. 연극 <산재일기>는 이 인물들의 증언들로 구성되었다. 무대 중앙에는 1열 종대로 키가 다른 나무 등받이 의자 여섯 개가 놓여 있고, 바닥엔 그 그림자가 나란히 드리워져 있다.

<산재일기>는 17명의 산재 피해자와 주변인, 활동가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텍스트를 구성한 일종의 다큐멘터리 연극이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연극이 버바텀(verbatim) 연극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대상들의 육성을 오디오 장치로 직접 들려주는 부분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연대활동가들의 육성을 블랙박스 극장 안에 틈입시킴으로써 청취의 감각을 구성하는 데 집중했던 0set프로젝트의 <바람 없이>(2019)와 같은 공연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산재일기>는 인터뷰 대상자들의 언어를 전달하는 매개자로서의 ‘배우’와 타인의 말하기를 재현하는 기술로서의 ‘연기’에 집중하고 있다. 양정윤과 정혜지는 90분 남짓의 러닝타임 동안 수많은 배역을 넘나들며 인터뷰 대상자들의 증언을 전달한다. 물론 배우들이 당사자를 대리하여 발화하는 역할만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배역을 빠르게 입고 벗으며 때로는 사측 인사의 입장을 표명하기도 하고, 객관적인 해설자의 위치로 물러나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렉처 퍼포머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산재를 둘러싼 발화 공간을 구축해나가는 연기 행위 자체가 또 다른 노동의 과정으로 읽힌다는 점이다.
<산재일기>는 인터뷰 당사자의 육성이나 노동 현장을 촬영한 프로젝션 이미지 등을 통해 생생한 실재감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노동하는 몸’의 감각을 공유하는 일에 보다 초점을 맞춘 것으로 여겨진다. 신체 미디어를 중심적으로 활용하는 연극에서 이러한 방식은 그다지 낯선 것은 아니지만, <산재일기>의 연기 노동에는 몇 가지 독특한 점들이 있다. 첫째는 인터뷰 대상자들이 수행했을 법한 노동 작업을 직접적으로 모방하는 행동을 거의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배우들은 의자를 들어서 옮기거나 큐브를 쌓는 등 추상화된 퍼포먼스를 통해 그들이 일정한 속도로 진행되는 ‘공정’의 압력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표현한다. 둘째는 산재로 인해 발생한 손상을 모방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정윤과 정혜지는 밀링기에 손목이 잘리거나 가스에 중독되어 장애를 얻게 된 산재 피해자들의 신체적 상태를 모방하거나 그들이 느꼈을 법한 정신적 고통을 대신 쏟아내는 방식으로 연기하지 않는다. 당사자의 입장을 연기하되 당사자인 것처럼 연기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산재일기>의 배우들이 시종일관 견지하는 정직한 거리는 당사자를 연기하는 배우는 당사자가 아니고, 연극이 가리키는 현장과 연극이 실연되는 현장은 동일시될 수 없다는 재현 윤리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관객이 무대에서 실제로 보게 되는 것은 산재 피해자들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과 언어를 연기로 번역하고 있는 또 다른 노동자들이다. 산재라는 실재의 경험을 베껴 그리는 대신 산재를 둘러싼 구조를 묘사하고 있는 노동자. 그런 의미에서 <산재일기>는 브레히트의 서사극과 이념적으로 유사하며, <나는 신이다>(2023)처럼 ‘실재의 충격’을 의도한 고발물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산재일기>에서 두드러지는 정보의 과잉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경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산재와 일상, 노동자와 대중 사이에 벌어져 있는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산재를 둘러싼 정보들이 그 틈새로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관객 또한 ‘노동하는 몸’으로서 연극을 본다는 관점에서 말하자면, 입력과 반응의 한도를 초과하는 정보량은 연극과 감각을 연결해나가는 관객들에게 과중한 작업량을 부과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연극과 관객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속도로 움직이며 함께 노동한다는 감각이 옅어질수록 관객은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이다. 기실 이 문제는 <산재일기>뿐만 아니라 은폐되어 온 사회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연극들이 전반적으로 공유하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연극 <산재일기> 공연 후 무대 사진. 공연 전 무대 사진과 동일하게 무대 뒷벽에 텍스트가 영사되는 가운데, 무대 중앙에는 여러 의자들과 큐브들이 위태롭게 쌓여 있다.

<산재일기>는 양정윤과 정혜지가 무대 위에 놓여 있던 빈 의자들을 위태롭게 쌓아 올리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모든 의자들이 기울어진 채로 간신히 서로를 지탱하고 있어 하나가 쓰러지면 전체가 모조리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모양새이다. 산업이라는 것은, 사회라는 것은 그렇게 산재로 인해 죽거나 사라진 사람들의 자리를 끝없이 쌓아 올리면서 연명하는 체계일지도 모르겠다. 커튼콜 없이 사라진 배우들의 뒷모습을 기억하며 보이지 않는 장막 뒤에서 죽음을 수주받고 있는 사람들, 참사를 하청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sounyoungpark]

톰스나웃 시어터컴퍼니 <산재일기>
  • 일자 2023.4.27 ~ 5.7
  •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 작·연출 이철 출연 양정윤, 정혜지 조연출 김민주 조명 윤해인 음악 이재 드라마투르그 권순대 디자인 스튜디오 단단 사진 김용욱 기획 보코 제작 톰스나웃시어터컴퍼니 주최·주관 이철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 관련정보 https://theater.arko.or.kr/product/performance/257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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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조

김민조
협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비평가를 지향합니다.
동시대 퀴어, 페미니즘, 장애, 포스트휴먼 연극의 흐름에 대한 반응과 아카이빙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기와 공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기를 잘 못해서 큰일입니다.
wingmn1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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