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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도 그 이야기가 계속되는데…

2023 서울변방연극제
㈔햇살사회복지회 <오프 리밋 off-limit> & 원의 안과 밖 <정전의 밤>

김민조

제239호

2023.08.10

‘변방’의 귀환

2021년, 서울변방연극제는 제20회를 맞이했다. 필자는 스무 살이 넘어가는 축제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에 외부위원으로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조심스러웠지만 서울변방연극제의 위치성이랄지 공연예술계 종사자들의 인식에 대한 발언을 얹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축제가 ‘변방의 시선’이라는 기조를 오랜 시간 견지해 온 것은 분명 소중한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울변방연극제는 그동안 축적되어 온 역사와 네임 밸류로 인해 메이저 리그에 진입하기를 욕망하는 연극인들이 누구나 한 번쯤 거쳐 가고 싶어 하는 꿈의 축제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가 서울변방연극제에 국한된 문제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변방을 호명해 온 플랫폼이 어느새 중심을 호명하는 플랫폼이 되어갈 때, 누구나 요즘 잘 나가는 아티스트라고 끄덕일 수 있을 법한 이름들이 축제 프로그램을 채우고 있을 때, 정작 동시대의 변방에 계류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시공간은 좁아져만 간다. 그렇기에 마이너-소수-변방을 위한 축제를 지속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인정 경쟁의 시장 논리가 정당화하는 불균형한 자연 상태, 내지는 상징 자본을 중심 쪽으로 거두어가는 ‘보이지 않는 손’에 스스로 대항하는 방식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3년, 제21회 서울변방연극제의 기조가 발표되었을 때 필자가 반가움을 느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취약”하고 “오염”되고 “더럽다”고 손가락질받는 존재들을 위한 축제. 공식 소개에 따르면 이번 축제를 기획한 신임 예술감독, 프로듀서, 프로그래머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아래 놓인 상태이자 생성의 범주를 나타내는 이 언어들이 갖는”1)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힘에 걸어보기로 한 듯하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평택, 화정, 공주, 양수리 등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서울-’이라는 명칭에 대한 배반을 꾀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오프 리밋>, <변방농장 ‘공중제B’>, <함께 살아가기 프로젝트: ㅅㅅㅅㅅ>, <정전의 밤> 등 비서울 지역에서 열린 프로그램들은 박물관, 텃밭, 거주공간, 비닐하우스와 같이 극장이 아닌 장소에서, 연극이 아니되 연극이 아닌 것도 아닌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처럼 탈서울, 탈극장, 탈연극의 지향이 맞물리는 형태의 공연을 적극적으로 큐레이션 했다는 점은 이번 축제가 ‘변방(성)’을 다시 급진화하기 위한 물적 토대와 포맷에 대한 고민을 수반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2023 서울변방연극제 음성 포스터의 유튜브 캡처 화면. 해당 화면에 대한 해설은 다음과 같다. 
            “맨 왼쪽 상단에, 짙은 붉은색 또박또박한 글씨체로 ‘2023 서울변방연극제 Seoul Marginal Theatre Festival’. 
            선명한 진분홍색 배경 위에 짙은 붉은색 선으로 얇은 격자 무늬가 그려져 있어요. 11시 방향으로 기울어진 격자 무늬는 마치 그물 같기도 해요. 
            맨 오른쪽 하단에, 아주 두꺼운 글씨체로 ‘변방’ 모음과 자음이 서로 끌어안은 것처럼 겹쳐진 형태의 디자인으로, 축제의 로고를 만들었어요. 
            격자 무늬와 똑같은 짙은 붉은색. 중앙 윗 부분에서 하얀색 작은 점이 피-어나요.” 영상을 재생하면 이미지가 바뀌면서 이에 대한 음성해설이 나온다.
[2023 서울변방연극제] 음성 포스터 (새창으로 보기)

그렇다면 이 축제에 가담한 변방인들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리뷰어에 따라 다양한 관점(퀴어, 청년, 지방민, 몸 등)으로 이번 축제를 아카이빙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필자가 이 글에서 관심을 두고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기존에 이미 관객을 만난 적이 있던 사람들이 이 플랫폼을 통해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방식이다. 공연을 통한 연결은 순간적이고, 연극은 후일담 없이 커튼 너머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관객이 돌아간 이후에도 무대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슈 파이팅이 자극하는 사유 너머에 누군가가 계속 살아가고 있다고 했을 때, 과연 연극이나 공연이라는 형식은 그 이야기를 이어서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인가. 지금-여기 극장에서 개시되는 놀라운 현존 말고, 드문드문 지워지고 빛이 바랜 오래된 기억이 귀환할 수 있는 집이 될 수 있을까.

<오프 리밋>: 10년 전, 또는 10년 후의 이야기를 찾아서

평택 안정리에 소재한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 일곱집매에서 열린 <오프 리밋>의 현장을 방문하는 경험은 필자에게 10년 전 서울 연우소극장에서 관람한 연극 <일곱집매>(2013, 재연)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양구가 K-6 캠프 험프리 근방에 거주했던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구술 인터뷰를 활용하여 연극으로 재구성한 <일곱집매>는 오키나와 일본군 위안부 여성의 손녀로 태어난 대학원생 하나가 평택 기지촌 여성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을 따르고 있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필자는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하나의 시점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연극을 관람하게 되었는데, 그렇기에 <일곱집매>는 하나라는 외부인-매개자를 뒤따라 이슈 너머에 있는 당사자의 삶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게 되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연극 배우가 할머니들의 역할을 수행했던 <일곱집매>와 달리 같은 해에 상연된 <숙자 이야기>(2013)는 기지촌 여성 당사자들이 직접 무대에 출연하는 자전적 다큐멘터리 극의 형태를 띠었다. ‘숙자들’이 보여준 생애사의 부당한 장면들을 관객이 고쳐 쓰는 참여형 퍼포먼스에 관해 주현식은 “관객들이라는 타자와의 열린 관계를 통해, 공동출현(Compearance)함으로써 숙자들의 새로운 자아가 발명”2)되었다는 논평을 남겼다. 비록 극화된 형태였지만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혐오를 넘어 당사자들의 삶이 관객에게 보여지고 들려질 수 있음을 확인한 <일곱집매>가 있었기에, 당사자와 관객의 직접적인 소통을 꾀한 <숙자 이야기>가 가능했을 것이다.

<오프 리밋> 현장 사진. 관객들이 안정리 골목길을 따라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 일곱집매로 찾아가고 있는 모습을 뒤에서 찍은 사진이다. 
            가장 앞쪽에 군복을 입고 깃발을 든 채 관객들을 안내하는 배우가 보인다.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꽃이 그려진 일곱집매의 작은 간판이 건물 벽에 걸려 있다.
<오프 리밋>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숙자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평택에서. “이번 공연은 사람들이 여기로 찾아오는 거예요. 우리가 서울로 가는 게 아니라.”3) 요컨대 <일곱집매> 이후의 프로젝트는 관객이 점차 연극이라는 물적-제도적 형식을 허물고 나와 당사자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향해 움직여가는 기나긴 과정으로 재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승합차를 타고 안정리 골목에 도착한 관객들은 박물관의 중정에 모여 기지촌 여성들이 꾸려온 공간의 모습과 분위기에 녹아드는 시간을 갖는다. 할머니들과 인사를 나누는 담소 시간에 어떤 관객은 오래전 이 근방에 살았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어떤 관객은 <일곱집매>나 <숙자 이야기>를 보았다고 수줍게 손을 들기도 한다. 10년을 넘어가는 세월과 미처 들려진 적 없는 이야기가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음이 느껴지지만, 할머니들은 내방한 사람들에게 구태여 무언가를 꾸며서 보여주려 하지 않고 그저 여상하게 앉아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다.
<오프 리밋>은 과거에 이미 증언된 바 있던 이야기들이 다시 재생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시실로 이동한 관객들은 김숙자 할머니가 사랑했던 미군 청년 ‘영철’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곁에 앉은 할머니들은 또 저 이야기를 한다며, 숙자는 아주 사랑꾼이라며 가볍게 면박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영철’과의 사랑을 회고하는 김숙자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마치 자신의 경험을 처음으로 입 밖에 꺼내놓는 사람과 같은 뭉클한 떨림이 느껴진다. 어쩌면 딸로서 경험한 극심한 성차별과 가출, 성병 검사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연대했던 이야기들도 김숙자 할머니가 그동안 무대의 안팎에서 수없이 반복해 온 이야기일지 모른다. 어떤 이야기는 영원히 잊힐 수 없고, 그래서 다시 이야기될 수밖에 없으며, 반복은 사실 반복이 아님을 관객은 여기에서 배워간다.

<오프 리밋> 현장 사진. 미군 청년 ‘영철’과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숙자 할머니. 
            이 공간은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의 한 전시실로, 이곳에는 할머니들이 당시 사용했던 사적인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 벽면에 쓰인 “미국으로 가버렸어”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김숙자 할머니는 ‘영철’이 녹음해줬던 노래가 담겨 있는 카세트 테이프를 가리키며 웃고 있다.
<오프 리밋>

전시실을 나온 관객은 ‘빈방 있음’과 ‘오프 리밋’이라는 제목이 붙은 두 개의 방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들어가게 된다. 필자가 들어간 방은 ‘오프 리밋’이었기에 ‘빈방 있음’에서 증언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제목을 보고 연극 <일곱집매>의 무대에 숨은 주인공처럼 자리하고 있던 ‘빈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방은 여복동 할머니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발견되고 나서 ‘빈방 있음’이라는 광고가 나붙었다는 실제 일화를 반영한 공간이다. 대본을 구성한 이양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하나 역을 맡았던 최설화 배우는 연습 도중 빈방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져 빈방에 MP3를 대고 “침묵을 녹취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고 한다.4) <일곱집매> 이후의 공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빈방’의 존재는 증언할 수 없는 것과 청취할 수 없는 것이 기지촌 여성들의 삶에 내속하고 있음을 의식하게 한다. 어쩌면 관객이 다 듣고, 다 들어가게 만드는 대신 두 개의 방 중에서 하나만 선택할 수 있게 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까.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빈방’은 이번에도 필자에게 지워질 수 없는 공백이 되었다.
<오프 리밋>은 성 구매자 미군, 성 판매자 한국인 여성, 포주로서의 대한민국이라는 삼분법 내에서 쉽게 이야기될 수 없는 미군과의 사랑과 국제결혼이라는 화두가 거침없이 발화된 시간이기도 했다. 어떤 당사자에게 그것은 낭만적인 사랑의 추억이기도 했고, 다른 당사자에게는 미국 유학의 꿈을 이뤄줄 수단이기도 했으며, 미군이 꼬드겼던 말과 전혀 다른 ‘통나무집’을 힘겹게 탈출하여 고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이기도 했다. 연극 <일곱집매>의 창작진이 ‘자발적 선택’의 프레임을 힘겹게 극복하고자 했다면, 10년 후의 <오프 리밋>은 한국 여성의 기지촌 유입이 구조의 문제였다는 확신을 딛고 서서 당사자들의 욕망이 한국 사회의 ‘창녀’ 혐오와 아메리칸 드림 사이에서 불온하게 역동해 온 이력을 드러낸다.
다만 관객이 박물관에 머무르며 당사자들의 생활 공간이나 전시 공간에 녹아들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았으며, <일곱집매>나 <숙자 이야기>의 창작진이 이번 공연에 스태프로 참여했음에도 기지촌 여성들의 이야기가 재현되어 온 그간의 역사를 겹쳐볼 수 있도록 환기해주는 장치가 충분치 않았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과거의 이야기들이 적절히 도입되기만 한다면, 덧씌워지는 이야기들은 시차(時差) 속에서 새로운 역사성을 만들어내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프 리밋>이 또 다른 어딘가에서 다시금 반복되기를, 그 미래의 이야기 속에서 <오프 리밋>과 다시 조우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정전의 밤>: 이야기들의 생로병사

원의 안과 밖의 <정전의 밤>은 이미 극장에서 상연된 한 편의 연극이 폐막 이후에도 계속 자라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번 축제에서 <정전의 밤>은 2021년 신촌극장에서 관객을 만난 <정전의 밤>이라는 공연의 몇몇 장면을 양수리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리플레이한다는 콘셉트로 진행되었다. 원공연의 핵심적인 문제의식, 테마, 모티브의 일부를 양수리 비닐하우스라는 공간성에 접목시켜 새로운 장면들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재공연이나 개작의 방식과는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원공연을 재현하기보다는 원공연 이후에도 계속 자라나고 있는 생각의 가지들을 따라가는 것이 목적인 공연이라고 말하는 편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그리워했습니다”라는 한 문장을 따라가는 공연. 관객은 여기에 “계속되는 이야기를 함께 만드는” 동행자의 자격으로 참여하게 된다.5)
그런데 <정전의 밤>에 흐르고 있는 다양한 결의 이야기들이 단지 2021년 동명의 연극에서 발원한 것만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전기가 끊어지고 문명이 정지된 밤’이라는 이 공연 특유의 세계관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이 도래했던 2020년과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심화된 2021년 무렵 상연된 <재주는 곰이 부리고> 시리즈에서 이미 그 원형을 드러낸 바 있다. 이 시리즈는 ‘대면’이 죄악시되고 ‘예술’이 민원 신고의 대상으로 전락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출현했다. 기후위기와 팬데믹이라는 장기적이고 전 지구적인 위기 속에서 연극이 종언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연극인들은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해왔고, 원의 안과 밖의 경우에는 현존하는 연극이 자본세와 더불어 종말을 맞이한 이후의 시간에 다시금 최초의 ‘연극’이 싹트는 장면을 상상하려 했던 것 같다.
현대 서커스와 연극이 장르적으로 혼성된 <재주는 곰이 부리고> 시리즈에서 관객은 인부들의 살점을 뜯어먹으며 솟아오른 송전탑이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불야성이 캄캄해지고 자본주의 문명이 일제히 셧다운된 세계. 그리고 다시 원시적인 불꽃이 타오르는 세계. 그 세계를 상징하는 레토릭이 바로 ‘정전의 밤’일 것이다. 요컨대 2021년 <정전의 밤>은 <재주는 곰이 부리고> 시리즈의 후일담이자 ‘계속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초점은 어둠에 적응하며 손짓 발짓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놓인다. 혹은 정전의 밤이 도래하기 전부터 그렇게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에게.

<정전의 밤> 공연 사진. 얼굴에 하얀 천을 덮어 쓴 여덟 명의 사람이 야외에 서 있다. 
            흰 천에는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앞을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은 귀 옆으로 천을 묶어 얼굴에 고정시켰다. 
            각각 일상복을 입고 있다. 아스팔트 바닥이 그들이 야외에 있음을 보여주지만, 배경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다.
<정전의 밤>

2021년 <정전의 밤>은 오직 신촌극장의 들창에 새어 들어오는 자연광에 의지해 진행된 공연이었다. 참여자들은 천을 묶어서 만든 이야기보따리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쪽지나 종이에 쓰인 글을 읽는다. 거기에 쓰인 것은 다양한 사유로 죽은 사람들과 내 뒤를 따라 걷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밤은 ‘그림자’가 나의 세계를 뒤덮는 시간이고, ‘그림자’와 나의 이야기가 분간할 수 없이 뒤섞이는 시간이다. 그리고 연극은 타자를 관람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게 배달되어 온 타자의 이야기를 내 몸으로 발화하는 행위가 된다.
양수리 비닐하우스로 옮겨온 <정전의 밤>은 기본적으로 참여자들이 원시적인 방식으로 서로에게 이야기를 전한다는 원공연의 콘셉트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 달라진 점은 이야기가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과정이 ‘농사’의 사이클에 비유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그 이야기가 계속되는데…” 라는 짧은 문장을 귓속말로 주고받은 동행자(관객)들은 최요왕 농부가 일군 비닐하우스를 입구에서 출구까지 가로지르는 체험을 하게 된다. 참외, 호박, 방울토마토 등의 작물이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비닐하우스는 흡사 정글을 연상케 한다. 동행자들은 잎과 가지에 피부가 쓸리고, 벌레에 물리고, 작물을 밟지 않도록 걸음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옮기는 연습을 하며 밭고랑을 누비는 농부의 감각을 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비닐하우스를 나온 동행자들은 최요왕 농부가 밭을 가로질러 활을 쏘는 광경을 보게 된다. 과녁에 꽂히거나 주변에 흩어진 화살을 주워서 모아보면 저마다 다른 글이 쓰인 쪽지가 묶여 있다. 필자가 읽었던 쪽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너무 열심히 돌봐도 작물이 죽고, 대충 돌봐도 죽는다는 최요왕 농부의 일기 내용이었다. 농사가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고 작물이 농부가 통제할 수 없는 원인으로 죽는다는 이야기. 이 시점에서 <정전의 밤>은 작물을 키워서 먹는 기쁨보다는 죽어가는 작물을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쪽지를 모아서 읽는 절차가 끝나면 길잡이(곽소민)는 변기에서 거름을 퍼내고는 퇴비를 만드는 설비 쪽으로 동행자들을 안내한다. 필자는 미처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얼굴에 뒤집어쓴 이야기보따리를 들추고 온갖 작물이 흙더미에 파묻혀 썩어가는 퇴비장의 냄새를 맡아본 동행자도 있었다고 전한다.

<정전의 밤> 공연 사진. 어둠 속에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의 상반신이 보인다. 이들은 양손에 양파, 애호박, 달걀 등과 화살을 들고 있다.
<정전의 밤>

참여자들이 마지막에 다다르는 곳은 ‘무덤’이라 표시된 풀밭이다. 수풀 사이로 물구나무를 선 사람의 하반신이 보인다. 동행자들은 병들어 죽은 작물이 퇴비장을 거쳐 다시 거꾸로 박힌 사람의 형상으로 무덤에서 자라나는 일련의 사이클과, 멀지 않은 곳에서 기상 음악처럼 들려오는 트럼펫 소리를 기억의 프레임 속에 간직하며 <정전의 밤>을 빠져나오게 된다. 요컨대 농사의 현장을 중심으로 치러진 <정전의 밤>은 어둠 속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전하던 원공연에서 나아가, 이야기(作物) 자체가 시들고 죽고 소생하는 일련의 순환 과정을 체험하는 일에 관심을 옮겨두고 있는 셈이다.
물론 ‘과정 만들기’의 일환으로 수행된 공연인 만큼 창작진이 기존의 공연부터 쌓아온 맥락과 동행자들이 이번 공연 내에서 감지할 수 있는 부분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가령 이번 공연에서 언어를 매개로 한 ‘이야기’의 축과 감각을 매개로 한 ‘농사’의 축 사이에 링크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그 링크를 연결하는 작업이 상당 부분 은유적 상상력에 기대야 했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정전의 밤>이라는 이야기가 앞으로도 계속 생장점을 바꾸며 뻗어나갈 것이라 믿으며, 이번 공연에서 미처 눈에 띄지 않았던 잔가지들이 어둠을 찌르며 무성하게 자라나길 기대해본다.

[사진 제공: studio H 박혜정 / 서울변방연극제]

2023 서울변방연극제
㈔햇살사회복지회 <오프 리밋 off-limit>
  • 일자 2023.7.7 ~ 7.11
  • 장소 평택역 2번 출구 →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_일곱집매
  • 출연 권향자, 김경희, 김광자, 김숙자, 김시영, 김월순, 김윤채, 김지원, 김지희, 노유나, 박영례, 박인영, 미나, 수지, 우범진, 우순덕, 유인경, 최설화, 최영자, 페기, 하수희, 한철훈, 선샤인합창단(지휘:박지선, 반주:홍주연) 스태프 고귀경, 김미나, 목소, 송정안, 이양구, 장경숙, 조경훈, 차지수 후원 ㈔평택시민재단, 행복한감리교회, 한국信연구소, 평택도시공사
  • 관련정보 http://smtf.cafe24.com/?page_id=128

원의 안과 밖 <정전의 밤>
  • 일자 2023.7.19 ~ 7.20
  • 장소 서울, 경기 양평군 양수리
  • 창작자 곽소민, 원지영, 김진이 외 동행자들
  • 관련정보 http://smtf.cafe24.com/?page_id=272
  1. 2023 서울변방연극제 공식 홈페이지, smtfestival.com.
  2. 주현식, 「자전적 다큐멘터리극 <숙자이야기>와 헤테로토피아」, 『드라마연구』 58호, 2019, 91-92쪽.
  3. <오프 리밋> 공연소개, 2023 서울변방연극제 공식 홈페이지, smtfestival.com.
  4. 이양구, 「연극 <일곱집매>에서 기지촌 여성들의 생애사(生涯史) 구술자료의 활용」, 『구술사연구』 4호, 2013, 25쪽 참조.
  5. <정전의 밤> 공연 소개, 2023 서울변방연극제 공식 홈페이지, smtfestiv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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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조

김민조
협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비평가를 지향합니다.
동시대 퀴어, 페미니즘, 장애, 포스트휴먼 연극의 흐름에 대한 반응과 아카이빙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 밖으로 나오기와 공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기를 잘 못해서 큰일입니다.
wingmn1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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