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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숨은 어린이 찾기

2023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극단 로.기.나래 <해를 낚은 할아버지> & 마르켈리네Markeliñe <유리아: Rain>

최권화

제239호

2023.08.10

7월의 더운 날,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선정작 두 편을 봤다. 아동극으로 명명된 공연들을 보러 가려니 문득 ‘아동극’의 정의가 궁금해졌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아동극’을 검색했다. ‘어린이들의 교육과 오락을 위하여 만든 연극’이라고 한다. 여기서 ‘어린이’에 해당하는 대상은 ‘만 0세부터 만 11세까지의 연령대에 속한 사람’이다.
7살 어린이와 함께 살면서도 아동극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어린이는 유명 캐릭터 (뽀로로, 타요, 티니핑 etc.)가 없는 무대를 즐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어른은 어린이만큼 아동극에 취할 수가 없다고 한정했다. 무대 위에서 바다 동물들과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해와 달이 바다에 빠지는 건 너무 가짜니깐. 아, 우산을 사람으로 착각하며 집착하는 건 조금 가능할 수 있겠다.

동화(童話)에 동화(同化)되기

<해를 낚은 할아버지>는 인형극 전문 극단 로.기.나래의 작품으로 동명의 동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형극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할아버지가 그림자로 등장한다. “그날도 꼭 오늘 같은 날”이라 말하며 ‘그날’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할아버지는 낚시를 무척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실수로 해를 낚아서 바다에 빠뜨리게 된다. 해가 빠진 바다는 점점 뜨거워지고, 바다 동물들은 괴로워한다. 북극의 얼음도 녹아내려서 북극곰은 빙하를 타고 나타난다. 할아버지는 달을 낚아서 바다에 빠뜨리면 바다가 차가워질 거라고 말한다. 이내 할아버지는 달을 낚아서 바다에 빠뜨리고, 할아버지와 바다 동물들은 시원해진 바다에 기뻐한다. 하지만 해와 달이 모두 사라진 하늘은 너무 깜깜하다. 바다 동물들과 할아버지는 해를 다시 하늘로 올려보낼 방법을 간구한다. 거북이의 등껍질, 해파리들의 불빛 그리고 대왕고래의 물살은 해를 하늘로 올려보내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된다. 기쁨도 잠시, 달이 빠진 바다는 너무 차갑다. 바다 동물들과 할아버지는 조개껍데기, 범고래들의 꼬리를 이용하여 달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데도 성공한다.

<해를 낚은 할아버지>의 공연 사진. 선두에 낚싯대가 걸린 나무배에 할아버지 인형과 분홍색, 초록색 문어 인형이 타고 있다. 
            푸른색 천 두 장이 바다의 파도를 표현하고 뒷벽에는 물결 영상이 영사된다. 
            할아버지의 배 옆으로 빛나는 얼룩무늬 해파리 셋과 펠리컨 인형이 있고, 그들의 뒤로는 어두운색의 고래 인형이, 할아버지의 배 앞에는 거북이 인형이 있다. 
            인형들은 종이와 직물, 솜 등 다양한 소재들로 만들어졌다.
<해를 낚은 할아버지>

채도가 서로 다른 세 개의 파란색 긴 천이 3열로 줄을 지어 자연스럽게 흔들리며 바다의 파도를 표현한다. 관객이 입장할 때부터 극장 내부에는 파도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무대에 음향이 더해지니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느낌도 들었다. 공연에서 바다 동물들과 할아버지는 입체적인 인형으로 등장하고, 대왕고래는 무대 뒤 벽면에 영상으로 등장한다. 무대 전환을 할 때는 관객석 양쪽 벽까지 바닷속 장면과 바다 동물들의 영상이 나타난다. 3D와 2D의 동시 등장에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관객석이 통째로 바닷속에 들어온 느낌이 들게 만든다. 공연의 후반부에는 배우들이 직접 인형을 들고나와 관객석을 돌며 노래를 부른다. 이때 관객들은 인형들을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다. 이런 장치들은 극 속에 충분히 이입한 관객들을 더욱 즐겁게 만든다.
이 공연의 주제는 명확하다. 그것은 공생의 중요함이다. 해와 달을 바다에 빠뜨린 건 할아버지였지만, 바다 동물들은 할아버지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다 동물들은 할아버지가 자책할 때마다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하자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생태 피라미드에서 인간은 언제나 최상위 포식자에 배치된다. 이 피라미드는 생명의 우열에 관한 구별이 아니지만, 종종 인간이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이 공연은 ‘자연의 문제는 인간이 홀로 해결할 수 없고, 모든 생명은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 공연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해가 지구의 바다에 빠지는 건 크기만 생각해봐도 불가능한 일이다. 공연을 함께 관람한 7살 어린이에게 “해가 바다에 빠지는 게 가능할까?”라고 우문을 던졌더니, “지어낸 이야기니깐 그렇다”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선입견보다 분별력이 있다.

<해를 낚은 할아버지>의 공연 사진. 무대 전체와 객석이 보이는 사진이다. 
            무대 위에는 왼쪽부터 해달 인형과 사람 머리보다 큰 분홍색과 초록색 문어 인형, 고래 인형 두 개, 흰 북극곰 인형이 보인다. 
            각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문어 인형 조종사들은 인형을 머리 위에 쓰고 각각 피리와 드럼을 연주한다. 
            해달과 고래, 북극곰 인형 조종사는 인형 하단에 달린 막대기를 양손으로 잡고 있다. 
            한쪽에서는 커다란 나무배를 든 두 사람이 객석으로 내려가는데, 배 위에는 할아버지 인형과 조개에 담긴 달이 보인다.
<해를 낚은 할아버지>

No line! No boundary!

<유리아: Rain>(이하 <유리아>)은 스페인 극단 마르켈리네의 작품으로 무언의 무용극이다. 작품 관련 설명에는 Euria가 스페인어로 비(rain)를 의미한다고 나와 있었지만,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니 Euria는 스페인의 지방 언어인 바스크어라고 한다. 극단 마르켈리네는 1987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 설립되었고, 연출이자 작가인 마르켈리네가 본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단체이다. 그동안 공연했던 작품들의 기록을 찾아보니, 마임에 주력한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관객 입장 시 극장 내부에선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해를 낚은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유리아> 역시 관객 입장부터 배우의 첫 등장까지 같은 음악이 이어진다. 이는 음향이나 음악이 관객들로 하여금 일차적으로 공연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암전이 되고 무대 뒤 벽면에는 흰 새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영상이 나온다. 무대 상수에서 한 남자가 포장된 직사각형의 물건을 가지고 등장한다. 이 포장지는 관객들로 하여금 내용물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는 단순하게도 큰 직사각형의 여행 가방이라 생각했다. 포장지를 뜯었을 때 등장한 건 놀랍게도 빨래건조대. 어두운 분위기와 상충하는 도구의 등장은 무거운 분위기를 조금 가볍게 만들어 준다. 또다시 슬픈 음악이 나오고, 어두운 표정의 배우는 빨래건조대를 펼치다가 그 안에 갇히기도 하며 과장된 몸짓을 보여준다. 겉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려고 할 때는 옷걸이가 스스로 움직이고, 관객들은 이런 모습에 웃는다.

<유리아>의 공연 사진. 검은색의 빈 무대 한가운데 노란색 조명이 떨어지고, 그곳에 한 남성이 쪼그리고 앉아있다. 그는 검은 양복 차림으로 근심하는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본다. 
            그의 오른편에는 흰 조명으로 구획된 공간에 한 사람이 누워있다. 
            뒷벽에는 검은 배경에 단순한 흰 선으로 묘지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 영사된다.
<유리아: Rain>

우여곡절 끝에 남자는 빨래건조대 펼치기에 성공하고, 빗방울 모양의 흰 천들을 빨래건조대에 널기 시작한다. 남자는 옷걸이에 걸려 있던 우산을 껴안는다. 그러자 여자가 등장한다. 남자의 애인이다. 남자가 껴안은 우산은 이 커플이 함께 쓰고 다니던 우산이다. 여자의 등장으로 이 커플의 행복했던 날들이 무대 위에서 회상된다. 회상 장면에서는 터널, 빗속, 별들이 가득한 하늘 등이 무대 뒤 벽면에 구체적이지 않은 흑백의 그림으로 나타난다. 그 모호함에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표정이 더해지니 커플의 행복했던 과거가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이내 화면은 무덤으로 바뀐다. 여자는 움직임이 느려지다가 바닥에 눕고, 남자는 몸을 흔들며 운다. 여자의 죽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남자는 다시 걷고, 무대 뒤 화면이 움직이며 남자가 극장에 들어왔단 것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남자는 새로운 우산을 만난다. 남자가 애인과 쓰고 다녔던 우산은 어두운 색인 반면에 새로 만난 우산은 밝은색이지만 고장 나 있다. 고장 난 우산과 함께 또 다른 여자가 우산과 동일한 패턴과 색상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 이 여자는 우산의 움직임과 동일하게 움직임으로써 사람이 아닌 우산 역할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여자(우산)의 등장과 함께 무대 뒤쪽 벽에는 글자가 나타난다.

- 당신은 누구세요.
- 저는 기쁨이에요.

남자에게 있어서 비와 우산은 사랑과 기쁨의 상징이었지만, 애인이 죽고 난 후론 슬픔과 그리움의 상징으로 바뀐다. 하지만 새로운 우산을 만남으로 인해 남자의 표정과 행동은 점점 밝아진다. 새로운 우산을 새로운 사람이나 상황 혹은 물건으로 상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남자에게 있어서 감정의 변곡점이 된 것은 확실하다.
남자는 트렁크에 짐을 싼다. 서랍장에서 빗방울 모양의 천들을 모두 꺼내어 트렁크에 담는다. 하지만 한 장의 빗방울 모양 천은 서랍장 속에 그대로 남겨둔다. 이 모양은 빗방울 모양이기도, 눈물 모양이기도 하다. 상실에 의한 슬픔을 경험한 사람의 정서적 기저에는 어떻게든 그리움이 남을 수밖에 없고, 남겨진 한 장의 천은 이 그리움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애인이 느린 몸짓으로 등장하여 트렁크와 함께 천천히 무대를 떠난다. 마침내 무대 뒤 벽면에 해가 떠오른다. 새로운 우산과 남자는 화분에 물을 주고 집을 청소한다. 이제 남자의 집에는 우산 두 개가 있다. 기쁨과 슬픔.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본능적인 감정이다. 삶은 한쪽의 감정으로 치우칠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며, 남자는 기쁨 우산과 슬픔 우산의 손잡이들을 엇갈려 하트를 만든다. 여기서 공연은 막을 내린다.
공연을 보면서 남녀의 이별이 어린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공연은 애인과의 이별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이별에서 통용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사람과의 이별, 반려동물과의 이별 혹은 아끼던 물건과의 이별. 어린이 관객들 또한 다양한 이별에 관해 생각했을 것이다.

<유리아>의 공연 사진.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남자가 양손에 각각 노란 우산과 검은 우산을 들고 감탄하는 표정으로 노란 우산을 바라본다. 
            그의 오른쪽 뒤편으로 흰색 3단 서랍장이 보인다. 
            서랍장 위에는 빨간 꽃이 핀 흰 주전자 모양의 화분과 웃는 여자의 그림이 담긴 흰 프레임의 액자, 그리고 갈색 깃털로 만든 먼지떨이가 놓여있다.
<유리아: Rain>

<유리아>는 생후 36개월 이상 관람이 가능한 공연이다. 공연 설명을 읽으며, 나는 이 공연을 과연 어린이들이 앉아서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린이들은 오로지 최소한의 도구와 배우들의 움직임으로만 이루어진 공연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언어가 배제된 공연은 모두에게 생경하고 공평한 경험이었다. 어린이 관객들은 어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타이밍에 웃고 또 슬퍼했다. 어린이를 덜 오해하는 방법을 꾸준히 찾아야겠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어른들이 아동극을 보는 것이다.

[사진 제공: ⓒ아시테지코리아_FOTOBEE]

2023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극단 로.기.나래 <해를 낚은 할아버지>
  • 일자 2023.7.15 ~ 7.18
  •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 연출 배근영 출연 이병선, 이현주, 김성현, 정성진, 이주희, 인정아, 고은경, 임보람, 권이진, 신소영, 김경미, 이다영 작가 김정미 그림작가 남미리 음악감독 이주환 조명감독 최진근 영상감독 황성하 무대디자인 김교은 인형디자인 배근영 무대감독 이지오
  • 관련정보 https://theater.arko.or.kr/product/performance/257918

마르켈리네 Markeliñe <유리아: Rain>
  • 일자 2023.7.21 ~ 7.23
  •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 극본 및 연출 Markeline 출연 Fernando Barado, Nerea Martinez & Itziar Fragua 의상디자인·조명 Marieta Soul-Espacio Creativo 영상 Alphax Studio 조명 Paco Trujillo 음악 Mario Viñuela, Alos Quartet 해외투어 매니지먼트 Jon Koldo Vázquez
  • 관련정보 https://theater.arko.or.kr/product/performance/257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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