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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은 진짜 안녕!

극단 드림플레이 <깐돌이와 친구들>

성수연

제250호

2024.02.29

진짜 초등학생이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연극이라고 해서 관객인 나도 진짜 초등학생인 사촌동생과 함께 연극을 보러 갔다. 진짜 초등학생의 이야기에 대해 진짜 초등학생 관객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연극이 끝나고 사촌동생과 함께 짜장면 한 그릇과 아이스크림 한 컵씩을 ‘때리며’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이도 없고 이제 아이도 아닌 사람으로서 방금 본 연극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이 있다고. 그러자 진짜 초등학생인 사촌동생은 마치 비밀을 알려주듯 연극과는 또 다른 진짜 초등학교 교실의 일상에 대해 알려주었다. 진짜 현실을 알게 된 그 순간, 나는 방금 본 연극과 현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진짜인지 진짜로 헷갈리기 시작했다.

진짜로 진짜인 연극?

연극 <깐돌이와 친구들>에 나오는 것은 모두 다 진짜다. 무대에 서서 자신을 소개하는 파주 문발초등학교 5학년 1반 아론은 무대 밖에서도 진짜 파주 문발초등학교 5학년 1반 아론이다. 아론이 아끼는 것은 축구공, 좋아하는 것은 그림이고 일산 코뿔소 아동미술 연구소의 회원이다. 아론은 전학을 가게 되어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싫다고 엄마인 소영에게 토로한다.
아론의 엄마로 함께 등장하는 소영도 무대 밖에서 진짜 아론의 엄마이다. 소영과 아론이 무대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벌써 2021년 <깐돌이와 나>에서도 진짜 자기 자신으로 등장해서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 연극의 방식이다. 지난 연극에서도 이번 연극에서도 제목에 나오는 ‘깐돌이’는 아론이 소영의 배 속에 있었을 때 별명이다.1)
진짜 진짜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은 아론은 (아마도 진짜) 이름이 상민인 친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민과 어떻게 친해졌는지를 관객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아론과 소영은 아론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어느 날 했던 대화를 보여준다.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무대는 거실이 되고 아론과 소영은 상황극을 하는 것처럼 그때로 자연스럽게 돌아가 연기를 한다. 물론 이미 진짜 아론이 아론의 역할이기 때문에 더 이상 진짜처럼 연기할 수는 없다. 관객은 아론과 소영의 진짜 일상의 대화를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깐돌이와 친구들>의 공연 사진. 소영과 아론이 인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다. 흰 티셔츠 위에 검은 셔츠를 걸치고 검은 바지를 입은 소영은 아론을 바라보며 크게 웃는다. 아론은 허공을 바라보고 입을 앙 다문 채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인형의 어깨에 오른팔을 걸치고 있다. 두 사람의 가운데 앉은 인형은 앉은키가 아론의 어깨 정도 오는 크기로, 주황색 반소매 티셔츠 아래 흰 긴소매 티셔츠를 받쳐입고, 흰 반바지를 입었으며 갈색 비니와 안경을 썼다.

소영은 아론이 집에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론은 숙제를 하면서 어깨를 반복적으로 으쓱 움직이고 그럴 때마다 입으로 소리를 낸다. 소영이 왜 그러냐고 묻자 아론은 옆자리에 이상한 녀석이 앉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체육시간에 뜬금없이 자기를 때린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짝꿍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론의 행동은, 이유는 모르지만 그 친구의 행동을 따라 한 것이었다. (이때 옆에 앉은 사촌동생이 내 귀에 “틱”이라고 속삭였다. 나는 ‘상민이 장애가 있는 걸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론은 속상해서 모구모구2) 한 병을 ‘때려야’겠다며 나간다.
아론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상황을 알 수 있는 소영은 아론을 진짜로 믿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럴 때는 너도 당하고 있지만 말라고 한다. 하지만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아론과 친구 사이에 벌어진 일인데 한쪽 편인 아론의 이야기만 들었다. 진짜로 진짜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론을 때렸다고 하는 친구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
아론과 소영은 당시 상황을 아이의 모습을 한 ‘깐돌이’ 인형과 함께 다시 되풀이해 본다. 소영이 깐돌이 인형을 조종해서 그 친구의 역할을 대신한다. 아론은 아론의 입장에서 겪은 일을 연기한다. 하지만 그 친구가 왜 아론을 때리게 되었는지 인형극을 해 보아도 알 수 없다. 그리고 소영은 아론의 학교에 간 어느 날 아론을 때린 그 친구, 상민을 만나고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알쏭달쏭했다. 아론과 소영의 말과 상황극을 통해서 상민이 어떤 사람인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 진짜 상민의 이야기는 알쏭달쏭했다.

<깐돌이와 친구들>의 공연 사진. 아론과 인형이 테이블에 책을 하나씩 펼쳐두고 나란히 앉아있다. 인형의 뒤로 이를 조종하는 소영의 모습이 조금 보인다. 아론이 인형이 앞에 둔 책의 한 부분을 가리키고, 인형도 아론이 가리키는 부분을 바라본다.

진짜 이야기와 다른 진짜 이야기

다음 장면이 알쏭달쏭한 상민에 대해 더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아론과 상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소영은 상민과 닮았던 자신의 어릴 적 친구 힘찬이를 떠올린다. 소영은 캡 모자를 뒤집어쓰고 어린 소영이 되어 연기한다. 어린 소영이 좋아하는 것은 피아노 치기와 노래하기. 그러던 어느 날 소영은 교무실에서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나오는 힘찬이의 엄마와 힘찬이를 마주친다. 그날 이후 힘찬이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소영의 기억에는 역광 속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만이 남아 있다. ‘힘찬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힘찬이에 대한 소영의 기억은 주의력결핍과 과잉행동이라는 어른의 단어로 설명되고 거기에서 멈춘다.
과거 어린 소영의 힘찬이에 대한 기억과 현재 아론의 상민에 대한 이야기가 나란히 놓인다. 하지만 소영이 기억하는 힘찬이에 대한 이야기로는 상민에 대한 알쏭달쏭함이 풀리지 않는다. 아론과 소영이 상민과 힘찬에 대해 한 이야기가 진짜이더라도 무대 위에 없는 상민과 힘찬이의 진짜 자기 이야기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론과 상민의 헤어짐은 소영과 힘찬이의 헤어짐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아론은 소영의 이야기를 듣고 걱정한다. ‘나 때문에 상민이가 전학 가면 어떡하지?’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최악이다. 학교에 간 아론은 상민(의 역할을 하는 깐돌이 인형)과 다시 대화한다. 그리고 아론과 상민은 상민이 불안하고 누군가를 때리고 싶을 때 “토네이도가 온다!”라고 말해서 서로에게 알려주기로 약속을 한다. 그렇게 상민이의 별명은 ‘토네이도’가 되었고 그것은 아론이 전학 가기 싫어하는 이유가 된다.

<깐돌이와 친구들>의 공연 사진. 주황색 캡을 뒤집어쓰고 목에 헤드셋을 걸친 채, 주황색 가방을 어깨에 멘 소영의 얼굴이 사진 중앙에 크게 위치한다. 그는 검은 셔츠가 아닌 청재킷을 걸쳤다. 그의 뒤편 왼쪽으로 테이블에 앉아 빨대를 꽂은 요구르트를 먹으며 소영을 바라보는 아론이 있고, 뒤편 오른쪽에는 의자에 앉은 인형이 있다.

다시 현재 5학년으로 돌아와서 아론은 전학 가기 위해 준비를 한다. 미술학원에서 만든 작품을 상민에게 주며 여러 얼굴의 조형물은 자기 얼굴이 점점 변해서 친구의 얼굴이 되고 두 얼굴이 합쳐져서 새로운 얼굴이 된 모습이라고 한다. ‘새콤달콤한 기분’에 반 친구들의 수에 맞춰 새콤달콤3)을 준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민아,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나쁜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착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진짜?’라고 의심부터 된다. 연극이 끝나고 나는 사촌동생이 “재미있었다!”고 한 말에 속으로 ‘진짜? 착한 사촌동생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재밌었어?’라고 의심했다.4) 그리고 진짜 초등학생으로서 연극이 진짜로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사촌동생은 연극에 대한 감상보다는 아론처럼 자신의 진짜 이야기, 또 다른 진짜 초등학생 교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반에는 세 명의 ‘찐따’가 있는데, 한 명은 변태라서, 한 명은 냄새나서, 한 명은 농담을 농담으로 못 받아들이는 재미없는 애라서 찐따라고 했다. 그리고 반에서의 ‘계급’은 찐따와 일반시민, 일진으로 나뉜다, 같은 이야기였다. 또 다른 진짜 이야기를 듣자 나는 혼돈이 오기 시작했다. 하나의 진짜와 또 다른 진짜 사이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렇게 연극이 끝나고 나서 서로 다른 진짜 이야기를 사촌동생과 나누었다.5) 아론이 상민에게 마지막으로 외친 “안녕!”은 무대 밖에서도 진짜 안녕!이다. 그리고 무대 밖 어딘가에서 진짜 상민이 아론의 안녕!을 또 다른 안녕!으로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무대에 진짜로 등장하지 않았던 또 다른 진짜 이야기들도, 다른 안녕들도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길 바랐다.

<깐돌이와 친구들>의 공연 사진. 의자에 앉은 아론이 자신이 만든 미술 작품을 들어 바라보고 있다. 작품은 여러 얼굴을 합쳐 만든 입체 조형물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열십자 모양이며, 옆에서 바라보면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얼굴의 모습이 된다. 푸른색, 노란색 피부와 파란색, 빨간색 머리 등 다양한 색채로 채색되어있으며, 눈썹, 입술, 코 등의 일부는 그림을 덧대어 붙이기도 했다.

[사진 제공: 극단 드림플레이]

극단 드림플레이 <깐돌이와 친구들>
  • 일자 2024.2.3 ~ 2.4
  • 장소 연우소극장
  • 작·연출 김재엽 출연 이소영, 김아론 드라마투르그 이소영 음악감독 한재권 조명디자인 최인수 인형디자인 김기홍 무대·의상·소품 소영&아론 영상촬영 김재엽 영상편집&오퍼레이터 백운철 조명오퍼레이터 이사야 그래픽디자인 박예슬 제작 극단 드림플레이, 깐돌이프로젝트 후원 경기문화재단, 연우소극장
  •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4001103
  1. 나는 <깐돌이와 나>를 보지 못해서 인터넷의 리뷰로 대략적 줄거리를 파악했다.

  2. 태국의 SAPPE사에서 만든 과일향 음료수.
    다양한 맛의 모구모구를 진열한 사진이다. 멜론, 블루베리, 리치, 딸기, 복숭아 등의 그림을 통해 각 병에 담긴 음료의 맛을 유추할 수 있으며, 각 맛에 따라 음료의 색도 초록색, 흰색, 보라색, 노란색, 붉은색 등으로 다양하다. (사진 출처: 나무위키)


  3. 크라운제과에서 만든 과일향 캐러멜 종류의 간식.
    여섯 개 다른 맛의 새콤달콤을 나란히 진열해 둔 사진이다. 상단부터 블루베리, 레몬에이드, 복숭아, 키위, 딸기, 포도 맛이다. (사진 출처: 나무위키)

  4. 나중에 다시 물어보니 “예의가 아니라 진짜로 재밌었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5. 이 글도 사촌동생이 읽어보고 연극에 대한 기억이 맞는지 그리고 자기가 한 이야기가 맞는지 다시 확인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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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연(요다)

성수연(요다)
연극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수다스러운 관객을 지향합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걱정이며 항상 기억나지 않는 장면을 함께 보충할 동료를 찾고 있습니다. 가끔 요다라고도 불리며 공연을 보고 집가는 길 지하철에서 와랄라 하는 계정(@walalainthesubway)이 있습니다. claire08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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