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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성취를 전하는 역할

웹진 [연극in]을 말한다

고재열 _ 시사IN 문화팀장

웹진 1호

2012.06.07

  • 웹진 [연극in] 편집위원으로 위촉한다는 연락을 받고 처음 든 생각은 ‘난 연극 잘 모르는데’라는 것이었다. 담당자에게 얘기했지만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섭외의 배후조정자로 밝혀진 이규석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에게 “나 연극 잘 모르는 거 잘 알지 않나?”라고 항의했지만 “연극을 잘 모르는 사람도 필요하다”며 일축했다. 창간준비호를 위한 기획회의에서 칼럼을 맡았을 때도 “나는 연극 잘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얘기했지만 역시나 반응은 “그런 사람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 번의 자기부정이 모두 무위로 그치고 결국 편집위원에 합류하고 칼럼을 맡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이규석 극장장이다. 그가 벌이는 일은 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1993년인가 1994년인가 과선배라는 그를 만났다. ‘대학에 입학했으니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지’했던 다짐이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구나’ 하는 후회로 바뀌었을 무렵이었다. 그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고 했고 공부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배고픈 연극판을 떠나 언제 학교에 돌아올 지가 궁금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다시 그의 이름을 들은 것은 기자가 된 뒤였다. 교수가 애타게 부를 때는 대답 없던 그가 내게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프린지페스티벌’을 연다고 했다. ‘프린지 페스티벌, 그게 뭐지?’라고 생각하는 나를 위해 개념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그 의미를 풀어주었다. 너무나 열심히 설명을 해서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묻는 걸 까먹어 버릴 정도였다. (나는 아직도 이규석 극장장의 졸업 여부를 묻지 못했다. 언젠가 그가 심심하고 한가해진 날에 물어볼 생각이다.)
공연 포스터
  • ‘298세대’가 만드는 웹진 [연극in]

    우연찮게도 [연극in] 편집위원들은 모두 1970년대 생이다. 요즘 ‘건축학개론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바로 1970년대 생(90년대 학번)인 것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묻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내겐 동년배 의식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단 어느새 변방으로 밀린 연극이라는 예술세계를 우리 세대가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내게 그들은 또 다른 이름의 ‘이규석’이었다. 연극에 미쳐 무엇인가를 포기했을 그런 사람들로 보였다. 그들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화 환경에 맞춰 ‘웹진’이라는 형식으로 연극판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창간준비호를 4호 만들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구독자 데이터를 피드백으로 보내는데 코너별 클릭률까지 나온다는 것이다. 필자들에게 클릭률을 알린다는 것이 어찌 보면 무례한 일일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자연스러웠다. 데이터에 근거해 개선해 나가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기획회의 뒷풀이로 술 대신 연극을 보는 것만큼 다들 쿨했다.
  • 신세대, 오렌지족, IMF세대를 넘어 ‘문화세대’로

    1970년대 생은 사실 우리 사회에서 잊힌 존재다. 386세대와 88만원세대 사이에 껴서 존재감 없는 세대다. 그래서 나는 이 세대를 298세대(386-88=298)라고 부른다. 386세대와 88만원세대 사이의 낀 세대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 세대의 시작은 화려했다. 신세대, 신인류, X세대, 오렌지족 등 온갖 수식어가 우리들을 장식했다.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시작했던 셈이다. IMF 금융위기 때 외신이 ‘한국은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나라’라고 비난했었는데 그 일찍 터뜨린 샴페인 맛을 본 세대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 세대부터 해외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이 일반화되었다.

    외국 문물을 접하고 경제가 끝없이 팽창하던 그 시절, 그래서 ‘우리의 삶은 우리 부모세대의 삶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던 그 시절이 지나고 IMF를 맞았고, 소비성향이 강했던 이 세대는 카드대란의 원흉이 되었다. 부동산 버블의 막차를 타다 상투를 잡고 ‘하우스 푸어’로 전락한 세대도 바로 이 세대다.

    <건축학 개론>의 ‘기억의 습작’이 이들의 기억을 꺼내고 있다. ‘서태지 세대’로 불리기도 했던 이들은 문화세대였다. 1970년대 산업화세대, 1980년대 민주화세대에 이어 산업화의 풍요와 민주화의 자유를 만끽한 문화세대였다. 대중문화가 폭발해서 이후 2000년대 한류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만화가 강풀, 김제동 등 우리 시대의 리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는 인물들이 바로 이 세대다.

    그 세대가 연극계에서도 제몫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연극in] 꽃점을 위해 최근 몇몇 작품을 관람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연극적 새로움을 시도하면서도 ‘후지지 않게’ 만들기 위해 디테일에 깨알같이 신경 쓴 작품들이 반가웠다. ‘우리도 이런 연극을 만들 수 있구나’ 싶을 정도의 완성도 높은 연극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성취를 잘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in]이 그 확성기가 되어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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