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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그때 그 사람

MB시대의 불행한 연극인

고재열_시사IN문화팀장/블로그‘독설닷컴’운영

웹진 14호

2012.12.20

  •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문화예술 지원 철학이었다. 이 철학이 이명박 정부 들어 살짝 바뀌었다. '지원은 하지 않아도 간섭은 한다'로. 정권과 문화예술계가 긴장 관계였던 것은 여느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명박 정부는 남달랐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평을 부탁하면 대다수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제대로 된 정책이 없었기에 평할 것도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 문화예술 정책의 초기 키워드는 '좌파 적출'이었다. 온갖 혐의를 씌워 노무현 정부 시절 임명된 문화예술단체 수장들을 찍어냈다. 그렇게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등이 쫓겨났다. 정부기관과 우파 언론 그리고 우파 단체가 삼위일체가 되어 이들을 찍어냈는데, 그 선두에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있었다.

    이명박 집권 전반부 '유신 콤비(유인촌 장관, 신재민 차관)'는 '좌파 청소부' 노릇을 자임했다. 2008년 3월 "이전 정부 정치색을 지닌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유인촌 전 장관이 발언한 이후, 문화부는 '완장 정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인권영화제, 한국독립영화협회,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 특정 단체를 겨냥한 특별감사를 감사원이 진행했다. 그 결과를 빌미로 정부는 이들 단체로 가던 정부 지원금이나 이들 단체가 주관하던 행사 지원금을 대부분 끊었다.

    영화계를 감사할 때는 정부에 비판적인 독립영화인을 길들이기 위해 '불법 폭력단체'로 규정한 독립영화협회가 관여한 모든 사업을 감사하고 '독립영화'라는 이름을 아예 '다양성 영화'로 바꾸도록 종용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독립영화 감독은 "정부가 독립영화인들의 독립정신을 길러주고 있다. 이제 독립영화 감독들은 독립군들이 독립운동 하듯이 영화를 찍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풍자했다.

    반면 우파 문화예술 단체에는 퍼주기로 일관했다. 예산이 수백 억 원 되는 사업도 일사천리로 집행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하는 목동예술인회관 건립사업이다. 이 사업은 실행 과정에 문제가 많아서 정부가 국고보조금 165억 원을 환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문화부가 태도를 바꾸면서 오히려 100억 원을 추가 지원한 것이다. 베이징올림픽 때 유인촌 전 장관과 가까운 연예인들이 조직한 응원단에 2억여 원이 지원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인사 대부분이 한자리씩 꿰찼다. 임연철 전 국립중앙극장장(경선대책위 언론특보), 양성우 전 간행물윤리위원장(선대위 문화예술특보), 정갑영 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인수위 자문위원), 전택수 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4대강 공약 관여)이 있다. 인수위 전문위원 파견 근무 시 '언론인 성향 조사'를 벌여 물의를 빚은 박광무씨는 문화부 핵심 보직으로 통하는 문화예술국장 자리에 올랐다. 뉴라이트 성향 단체인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을 지낸 이대영 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은 애초 "쓸데없이 예산을 낭비한다."며 진흥원 설립을 반대했던 인물이다.

    문화부 공무원에게 물어보면 유인촌 전 장관에 대한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다. 어느 정도 업무 능력을 인정받는 장관에 속한다. 정책에 대한 개념화 능력이 좋고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서 유능한 장관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유 전 장관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이 지나쳐서 문제였다. 여기서 능력이란 바로 사람을 밀어 내치는 능력과 특정 세력을 배척하는 능력이었다. 유 전 장관의 그 특출난 능력에 대해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장은 이렇게 경고했다. "연기자 출신인 유인촌 장관은 장관직도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만약 착각하고 있다면 지금 그가 지극히 비열한 악역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가면을 쓰고 뒤에서 조종하고 있지만 다 보인다."

    유 전 장관에 의해 핍박받고 쫓겨난 문화예술인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은 '저항적 글쓰기'를 했고 한국독립영화협회 감독들은 정부가 빼앗아간 상영관에서는 자신의 영화를 틀지 않겠다며 '자학투쟁'을 벌였다. 쫓겨난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들은 유 전 장관의 당근을 거부하고 끝까지 '거리의 합창단'을 고수했다.

    연극계도 저항했다. 2009년 6월26일 '현 시국에 대한 연극인 선언문'에 연극인 1027명이 서명했다. 연극인들은 "파행적 정치의 저변에서 권력의 오만방자함과 인간에 대한 무례함을 읽는다. 나와 견해가 다른 자는 먼지라도 털어서 죄를 들추어내는 적대적 편 가르기와 소통의 부재를 읽는다. 힘이 있는 자가 약한 자를 배려하며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군림하는 신자유주의적 독선을 읽는다."라며 유 전 장관을 비난했다.

    연극인 선언에 연극계 출신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움찔했다. 나중에 그는 "연극인 시국선언이 나오는 것을 보고 딱 그만두고 싶었다."고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연극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 괴로운 사람은 연극인이었다. 연극인 선언을 주동했던 소장 연출가 5인에 대한 살생부가 나돌았다. 그리고 연극 관련 상을 싹쓸이하고 지원금 공모에서 빠지지 않던 그들의 이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살생부에 이름을 올린 한 연출가는 "정부 돈 받고 정부 비판을 할 수는 없지 않겠나. 그동안 많이 받았으니까 이제는 그 돈 안 받고 실컷 비판하겠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연극인 출신인 최종원 전 의원의 국회 입성 일성이 바로 '유인촌을 국회 국정감사에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2010년 7월 보궐선거에 당선된 후 그는 "자리에 물러났어도 당시 (유 전 장관의) 행적을 짚어야 한다. 최장수 문광부 장관으로 남게 되었는데, 그 명예에 앞서 권력에 놀아났던 한 인간의 비굴한 측면을 따져봐야 한다. 가을에 있을 국정감사에서 유 전 장관을 증인으로 신청할 생각이다. 유 전 장관의 행적 전반에 대해 문화예술인 90% 이상이 분노와 허탈감, 울분을 가진다. 유 전 장관은 예술을 바라보는 잣대가 너무 치졸했다."라고 비판했다.

    연극계가 유인촌 전 장관의 덕을 본 것이라면 '시사 풍자'가 부활했다는 것이다. 국립극장 법인화 과정에서 국립극단이 해체되는 등 내홍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밑바닥부터 비판의식이 샘솟았다. 집권 중반기를 넘어서면서 <광부화가들> <광부화가들> <마라, 사드> <정말 부조리하군> <꽃님이발관> <태수는 왜> <운현궁 오라버니> <다윈의 거북이> <쇼팔로비치 유랑극단> <웃음의 대학> 등 풍자극이 대학로에서 만개했다.

    유인촌 전 장관은 두 가지 기록을 세웠다. 하나는 이어령 전 장관을 제치고 역대 최장수 문화부장관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악의 공직자'에 선정된 것이다. 레이건과 같은 소셜테이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추락한 유인촌, 그는 그가 연기하던 폭군 연산을 현실에 구현한, 이명박 시대의 불행한 연극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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