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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2013

2012년 키워드의 2013년 업그레이드 버전

고재열_시사IN기자/블로그‘독설닷컴’운영

웹진 15호

2013.01.03

  • 이럴 때가 참 애매하다. 글을 쓸 때는 연말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을 때인데 글이 나올 때는 새해, 새 희망을 얘기하고 있을 때다. 마치 시간여행자처럼, 바깥세상과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마음은 분명 기억의 창고에서 추억을 재정리하고 있는데, 글은 믿지 않는 미래를 찬양하고 있다.

    물론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아니 언제나 그래왔다. 철지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왔다. 늘 미래의 징후에 주목했다. 몇 가지 산발적 조짐을 긁어모아 트렌드라고 얽어매기도 했다. 그렇게 쓰고 세상이 그렇게 움직여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이번엔 시선을 과거로 향하려고 한다. 2012년 일 년 동안을 키워드로 되새기고 그 현상이 2013년에 어떤 변이를 일으킬 것인가를 조망하련다. 2012년의 키워드로는 ‘멘붕’ ‘역사의 법정’ ‘사망유희’ ‘강남스타일’ ‘일베충’ ‘응답하라’ ‘대나무숲’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키워드들이 보여주는 2012년의 맥락과 2013년의 숙제를 살피겠다.

    2012년은 ‘멘붕’의 해였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 대부분은 이 부류에 속하리라 본다. 민주통합당에 대한 ‘총선 멘붕’, 통합진보당에 대한 ‘통진당 사태 멘붕’, 그리고 야권의 대선 패배로 인한 ‘대선 멘붕’까지 3단 콤보 멘붕을 맛 본 한 해였다. 특히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20대에게 충격은 더 컸다. 섣부른 치유는 열패감만 더 키울 수 있겠지만 20대에게 2014년 지방선거에서 직접 주인공으로 나서보라고 권하고 싶다. 당선자를 포함해 대선 후보들이 기초자치단체 선거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했으니 가능성이 커졌다. 멘붕에 대한 최고의 힐링은 바로 희망이다. 그 희망을 누구에게 의탁하지 말고 직접 품으라고 충고하고 싶다.

    다음 키워드는 ‘역사의 법정’이다.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묻힌 과거사를 역사의 법정에 불러내는 작업이 활발했다. 지난해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도가니>가 광주 인화학교 장애아 성추행/성폭행 사건에 대해 재조명 하게 만든 것을 비롯해 올해 <부러진 화살> <26년> <남영동 1985> 등이 묻힌 과거사를 역사의 법정에 기소했다. 문제 해결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2013년에는 과거사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더욱 활발했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5·16 쿠데타에서 유신까지, 박정희 시대만 재조명 받을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사망유희’는 지난해 진중권 등 진보논객과 변희재 등 보수논객이 벌인 끝장 토론의 이름이다. ‘사망유희’는 이소룡의 마지막 유작 영화로 맨 아래층부터 맨 위층까지 적을 한 명씩 물리치며 올라간다는 의미에서 따 온 이름인데, 아마 이소룡이 ‘한국 공산당’과 대결한다는 영화 줄거리에 착안해 좌우대결 토론의 이름을 이렇게 붙인 것 같다. 필자도 이 유희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는데 주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토론을 죽고 죽이는 대결로 보는 것이, 좌우가 갈린 이 시대의 자화상인데 새해에는 논쟁적인 현안이 있을 때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강남스타일’은 지난해 대한민국 최고의 히트 키워드다. ‘글로벌 박수무당’ 싸이가 전 세계를 신명나게 만들었다. ‘강남스타일’의 성공 요인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이야기가 나왔으니 생략하고 10억 조회 수를 기록한 유튜브를 들여다보자. ‘강남스타일’의 사례처럼 뉴미디어는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낸다. 유튜브와 아이튠즈 그리고 앱스토어 환경이 유행을 실어 나르는 플랫폼에서 ‘약자의 목소리’와 ‘억울한 사연’까지 전하는 신문고로 진화하길 기대한다. ‘뉴스타파’ 후원에 수만 명이 몰리고 ‘국민주 TV’에 성원이 답지하는 것이 그 징조일 것이다.

    ‘일베충’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에서 활동하는 이를 비하하는 말 은 대량 청년실업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삼포 시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시대 의 잉여들은 광장을 버리고 동굴로 들어가 불의한 강자와 불합리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아닌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불의에 저항하는 지식인 그룹을 테러하고 있다. 그 대가로 그들은 ‘벌레’의 의미를 가진 별칭을 얻게 되었다. 이들을 위한 ‘솔로대첩’ 이벤트는 ‘거친 경찰과 불안한 비둘기와 그걸 지켜보는 솔로들’의 쓸쓸한 패전으로 끝이 났다. 언제든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세대,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책으로 위로받는 세대, 이 세대가 애벌레에서 성충이 되어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2012년은 과거를 부르는 해였다. <응답하라 1997>은 1997년 HOT-젝스키스 세대를 불렀고, <건축학 개론>은 1992년 서태지 세대를 불렀고, 그리고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불렀다. 현재가 막히면서 사람들은 과거의 영광에 눈을 돌렸다. 올해는 미래의 희망이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길 바란다. 응답하라 2014년 지방선거! 응답하라 2016년 총선! 응답하라 2017년 대선! 새로운 희망을 품고 2030세대가 그 주인공으로 서길 바란다.

    지난 한 해 동안 트위터에서 가장 공감을 많이 산 것은 ‘대나무숲’ 계정들의 목소리였다. ‘출판사 옆 대나무숲’을 비롯해 ‘편집국 옆 대나무숲’ ‘촬영장 옆 대나무숲’ ‘시월드 옆 대나무숲’ 등 각종 대나무숲이 우리시대 ‘을’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대나무숲 열풍은 갑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향한 한 판 ‘푸닥거리’였다. 그들의 외침이 비공식적인 푸념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제기되어 세상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응답하라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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