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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보다 더 좋은 일

‘책 권하는 서울’을 제안하며

고재열_시사IN문화부 기자/블로그‘독설닷컴’운영

웹진 21호

2013.04.04

  •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자는 캠페인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두말할 여지가 없다. 여기에 시비를 걸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한 번 시비를 걸어보련다. 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안 읽는 사람을 계몽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자’고 말하는 것은 ‘상대방은 책을 안 읽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내려다보는 것이다. 뭔가 신경질이 있다. 조금 비약하자면 현재를 한탄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을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말이다.

    같은 말을 ‘책을 권하자’고 돌려서 말하면 어떨까? 책을 권하자는 것은 완곡하다. 원래는 책을 좋아하는데 바빠서 책을 못보고 있는 사람에게 책으로 힌트를 주자는 뉘앙스다. 현재를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아쉬워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책을 읽자’고 말하는 것은 수직적이고 ‘책을 권하자’고 말하는 것은 수평적이다. 시민은 잔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시민이 어디 있겠나? 하나마나한, 짜증을 부르는 소리다. ‘책을 읽자’는 21세기의 표어가 되기에는 진부하다.

    확산적이지도 않다. 관이 ‘책을 읽자’고 선전한들 함께 ‘책을 읽자’며 나서는 시민은 없다. 그것은 설치는 일이 될 뿐이다. 하지만 ‘책을 권하자’고 하면 시민이 함께 할 수 있다. 훨씬 소통적이다. 세상은 책 ‘웅변가’보다 책 ‘전도사’를 선호한다. 책을 나누는 것은 미래를 나누는 것이다.

    얼마 전 동네에서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책의 내용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독서모임이 아니라 정한 책을 바탕으로 관련 있는 다른 책에 대해서 두루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그 책을 씨앗으로 해서 다른 책으로 관심이 가지를 뻗어나가게 하는 형식의 독서모임이다.

    사람들은 책에 대한 수다를 의외로 좋아했다. 독서가 멈춘 것은 책에 대한 관심이 멈췄다는 것이다. 책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독서로 이어졌다. 다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책을 가져와서 소개할 지에 주목했다. 모임이 끝나면 스스로 읽어야 할 책을 숙제로 정해갔다.

    남에게 권할 책을 고르는 것은 아름다운 스트레스다. ‘누구에게 어떤 책을 선물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단 상대방에 대해서 파악해야 한다.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곰곰 생각을 해보아야 적당한 책을 권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책을 권하는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계기를 선물한다. 어떤 책을 준다는 것은 나는 어떤 책을 읽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책을 읽느냐는 또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당연히 신중할 수밖에 없다. 결국 책을 권하는 것은 스스로의 독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독서를 독려하는 당근이 된다.

    그리고 책장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책장에 꽂힌 읽지 않는 책은 지식의 비계일 뿐이다. 비계로 가득 찬 비만책장은 책꽂이가 아니라 책창고다. 먼지 쌓인 책은 지식 대사증후군의 증거다. 책을 빼내고 여백을 만들면 지식의 순환계가 다시 작동하게 된다.

    가지치기를 한 나무가 멋지게 자라고 솎아내기를 한 채소가 잘 자라듯, 책장도 주기적으로 골라내기를 해야 생각의 근육이 커진다. 어떤 책을 골라낼까 하는 순간 책과 나 사이에 긴장이 생기고 그 긴장이 바로 독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책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많이 쌓아두는 사람이 아니다. 책이 너무 좋아 그 책을 나누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다. 지식은 머리에 쌓아두는 것이지 책장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학문이 자라듯 책도 나누면서 지식이 자란다.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책을 권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책을 읽자’고 말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다. ‘책을 권하자’고 하면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서울시 구청사를 서울도서관으로 만들면서 서울시는 ‘책 읽는 서울’을 으뜸 구호로 내세웠다.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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