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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도 천사도 디테일 속에 있다

[고재열의 리플레이]

고재열_시사IN 문화팀장

제143호

2018.07.05

대한민국은 이슈공화국이다. 북미정상회담과 6·13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와 헌법재판소 대체복무제 관련 판정이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안타까운 점은 논쟁은 큰데 그 논쟁을 통해 얻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오직 갈등을 확인할 뿐이다. 이슈가 나올 때마다 사회가 갈라지기만 하는데, 과연 그것이 갈릴 이유인지, 갈라지더라도 거기서 갈라져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일단 예멘 난민 문제를 들여다보자. 이 문제는 오해가 빚어낸 촌극에 가깝다. 예멘 난민이 제주에 들어오게 된 경위는 몇 개의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 낸 기적이다. 정부는 제주특별자치도의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제주도를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게 설정해 두었다. 하지만 제주도 직항로는 대부분 일본이나 중국의 도시들이었다. 제주도에 난민이 유입되려면 비자 규정이 까다로운 이 나라들을 경유해 들어와야 했기 때문에 난민 유입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예외가 발생했다. 얼마 전 말레이시아와 제주도 사이의 직항로가 생겼는데 내전을 피해 말레이시아에 와 있던 예멘 난민들이 비자가 없어도 된다는 것을 알고 대거 제주도로 들어왔다.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 정부가 예멘 난민을 무비자 입국 대상에서 제외해 현재 이 유입 경로는 막혀있다. 앞으로도 이런 대규모 난민이 유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리하자면 예멘 난민 문제는 난민 문제가 아니라 인도적 체류 지원의 문제다.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이 난민 인정을 받는 비율은 2% 남짓이다. 예멘 난민들도 대부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다만 난민 여부를 판단하는 동안 인도적 체류가 허가될 뿐이다. 이때 임시 난민들을 돕는 것은 민간단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대체복무제 논쟁이 진행된 양상도 이와 비슷하다. 논쟁이 진행될수록 논점은 더 흐려졌다.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병역 기피가 양심적이면 병역 이행은 비양심적이냐며 따지고 비난했다. ‘양심적’이란 표현을 개인의 신념을 따르는지 여부가 아니라 단순하게 도덕적으로 선한지 여부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주의적 주장이 난무한 가운데 논쟁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횡보했다.

하지만 대체복무제는 이미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현행 병역법에도 ‘사회복무요원, 예술·체육요원, 공중보건의사, 병역판정검사전담의사, 공익법무관, 공중방역수의사, 전문연구요원, 산업기능요원’ 등으로 복무한 사람을 ‘보충역’으로 규정하고 병역을 대체한 것으로 인정해준다. 다만 이런 ‘보충역’이라 하더라도 훈련소에서 기초 군사훈련은 마쳐야 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이런 ‘보충역’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기초 군사훈련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충역’으로 입대하는 사람에게 군사훈련을 시키지 않고 인명 살상과 관련 없는 실무 교육만 시킨다면 어떨까? 어떤 ‘보충역’이더라도 기초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 현행 규정만 바꾼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훈련소 입소를 반대할 이유는 사라진다. 관건은 대체복무제가 아니라 ‘대체훈련제’였던 셈이다. 병역을 다른 형태로 수행할 사람이 꼭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느냐 아니냐로 논의를 전개했다면 의견 접근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논쟁이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편가르기로 진행되는 양상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기승전-사형시켜라’로 귀결되는 양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나의 편이 아니면 적의 편이라는 단순 논리가 담론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보다 적의 논리를 섬멸하자는 꼬임이 더 호응을 얻는다.

분노사회와 혐오사회가 낳은 이런 갈라짐은 이명박근혜 시대의 적폐라 할 수 있다. 국민을 갈라치기해서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려고 했던 집권자의 꼼수가 낳은 ‘부끄러운 유산’이다. 꼼수의 주역들이 갇혔음에도 불구하고 증오의 잔상은 오래 남는다. 선전선동에 혹하던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라고 말하지만 천사도 마찬가지다. 적폐청산은 멀리 있지 않다. 이런 선전선동을 극복하고 디테일을 따져보는 것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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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시사저널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으나 '삼성기사 삭제사건'에 항의해 6개월 동안 파업을 벌인 후 사표를 내고 동료들과 시사IN을 창간했다. 블로그 '독설닷컴'으로 인터넷 논객 활동을 시작했으며 요즘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트위터 @dogsul | 페이스북 facebook.com/dogsuld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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