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인지편향

[박해성의 무대와 객석 사이]

박해성_연출가

제144호

2018.07.19

운전을 한다. 예상치 못하게 심한 정체를 만난다. 절박하게 내비게이션을 쳐다본다. 내비게이션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시크하게 우회로를 내민다. 그럴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 있다. 지금 이 정체 속 차들이 모두 같은 우회로를 안내받고 있는 건 아닐까. 다들 그 길로 몰려가면 그 길이 정체되기 시작할 것이고, 그동안 지금 이 길은 정체가 풀리는 것 아닐까. 차량마다 목적지가 다를 테니 다른 우회로를 안내 받을수도 있겠지만, 국도나 고속도로 같은 경우는 상당 구간 대부분의 차량들이 선택할 수 있는 우회로 조합은 한정돼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녕 눈치싸움인 것인가. 선택을 대신해달라고 매달아 놓은 내비게이션이 나로 하여금 피 말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만들다니.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여기 강냉이 한봉지 주세요 (출처: kbs.co.kr)

오늘도 우리는 밥 한 끼 먹겠다고, 연극 하나 보겠다고, 게임 하나 지르겠다고, 고양이밥 한 푼이라도 싸게 사겠다고 스마트폰을 뒤진다. 검색을 하고, 리뷰와 후기와 유튜브를 본다. 정보는 우리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선택이 폭이 넓다는 것은, 비교적 나은 선택을 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회가 많아졌다고 나은 선택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 우선은, 그 정보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관건이다. 우리의 타임라인은, 우리가 자주 가는 사이트는, 자주 쓰는 검색엔진과 질문형태, 답변형태는 우리에게 익숙한 정보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우리가 유효한 정보로 받아들이는 기준도 다분히 자의적이다.

우리의 데이터가 얼마나 자의적인지는 설문조사만 봐도 알 수 있겠다. 우선은 설문대상이 생각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답하리란 보장이 없다. 있는 그대로 답하고 싶어도,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애매하다면? 대부분의 질문은 내가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이다. 취미랄 게 없는데 취미를 적으랜다. 책을 안 보진 않으니까 그럼 독서라고 하자, 이런 식이다. 1년에 구매하는 도서의 양? 세어본 적도 없고 세기도 애매하다. 설문조사에 응하는 행동 자체도 꽤나 귀찮거나 뭔가 내 사회적 캐릭터를 재정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취미를 독서라고 답하면 왠지 정말 독서를 취미로 하는 문화시민이 된 것만 같다. 설문조사도 이럴진대, 여론조사, 구매후기나 소셜미디어, 언론에 올라오는 글은 말할 것도 없다. 즉, 우리가 판단의 근거로 생각하는 정보들은 데이터 원형(raw data)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이나 선입견 등 수많은 요소에 의해 가공된 결과물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던 순간까지, 같은 해 영국의 EU 탈퇴안(Brexit)이 가결되던 순간까지 거의 모든 여론조사와 언론, 소셜미디어의 반응은 트럼프 패배를, 브렉시트 부결을 점쳤다. 검증되고 공인된 해설일수록 수긍할 만한 데이터, 타당한 근거와 논리를 내세웠다. 세계의 다른 시민들도 그 예상에 수긍했다. 엄격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자랑한다는 미국이 아몰랑 어릿광대 같은 인물을 대통령이 되도록 내버려 둘 리 없지 않은가. "Manners maketh man"의 나라가 공존과 통합의 깡통을 요란하게 걷어차는 건 상상할 수 없지 않은가. 결국엔 그 믿음이 정보를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인지편향으로 작동했다는 건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출처: knowyourmeme.com)

미국인들이 2016년 대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문명사회의 세계시민으로서 우아하게 답변하는 동안, 그들의 구글 검색창에는 각종 인종혐오성 검색어가 뒤덮였고, 이 혐오검색어의 지역별 검색량 데이터가 대선 결과 트럼프 지지지역, 지지규모와 거의 일치한다는 구글 데이터 분석이 있다. 요즘 핫하다는 빅데이터 분석인데, 이러한 빅데이터의 신뢰성은 대부분의 미국인이 숨 쉬듯 대화하듯 구글 검색을 이용한다는 점과 모든 검색행위가 자의식이 개입된 행위가 아니라 실제적인 욕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점. 즉, 사실상 독점적 데이터 채널임과 가치중립적인 데이터 세트라는데 근거한다. 만일에 그렇다면, 이 데이터세트가 자의적 해석이 배제된 현상 그 자체를 바라보고 연구하는 새로운 도구가 될 가능성이 큰 것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만약에 모든 차에 GPS가 달려있고 모든 차량의 출발지와 목적지가 그 GPS신호와 함께 하나의 빅데이터로 모인다면, 그렇다면 예상치 못한 심한 정체가 생겨날 리 없다. 데이터를 통해 각 차량의 목적지와 위치를 감안하여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착착 배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야 운전자가 선택할 이유도 없다. 어느 구간에서 어떻게 가속하고 어디서 멈출지를 그 하나의 빅서비스가 결정해주니, 운전도 알아서 해줄 수 있겠다. 자율주행자동차가 별건가. 그런데 이런 완벽한 시스템에 단 한 대 차량의 예외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예외가 일으킬 연쇄반응과 파장은 차량정체 따위가 아니라 언뜻 봐도 대재앙 각이다. '완벽한 시스템'은 단 하나의 예외 없이 모든 자동차가 이 시스템에 종속될 때에야 가능한 것이다.

선택은 언제나 귀찮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다른 '완벽한 권위'에 맡겨버리던가, 우리가 접한 정보가 충분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린 선택이 옳다고 '믿어'버린다. 하지만 정보만으로 선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큰 데이터 세트도 인지편향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장치에 불과할 뿐, 데이터 세트 자체에 선택을 맡긴다면 작은 예외에도 큰 위험이 따른다. 그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인지편향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일은 데이터 분석 뿐 아니라, 아마 예술의 역할일 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예술의 선택, 창작자의 직관 안에서 끊임없이 인지편향을 찾아내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위해서 예술이 허공을 응시하는 것이 아닌, 땅 위와 자기 자신을 집요하게 응시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박해성

박해성 연출가
상상만발극장에서 연출
트위터 @theatreimaginer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