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불의한 세상
[고재열의 리플레이]
고재열_시사IN 문화팀장
제145호
2018.08.10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찾는 대표적 해외 여행지다. 특별히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히 관광객이 찾는 스테디셀러 여행지 중 한 곳이다.
이 찬란한 유적지 뒤에서 33년간 독재를 이어 오고 있는 훈센 정부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이 없다. 지난 7월 29일 총선에서 훈센 총리가 이끄는 캄보디아 집권당(캄보디아인민당)은 국회의원 125석 전석을 석권해 정권을 5년 더 연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훈센 총리는 민주적으로 재집권한 것이 아니다. 이번 총선에 캄보디아 제1야당(캄보디아구국당)은 출마할 수 없었다. 지난해 훈센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켐 속하 캄보디아구국당 대표에게 정부 전복 혐의를 덮어씌워 체포했다. 캄보디아구국당은 해체되었고 무어 쏙 후어 부대표 등 야당 정치인들을 해외를 전전하며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
캄보디아 비자 제한을 검토하겠다는 미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이 불공정한 선거를 비난했다. 집권 연장을 위한 훈센의 무리수를 모두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외신은 총선 결과에 대한 국내외의 반발 움직임도 주의 깊게 포착한다.
우리 언론도 캄보디아 총선에 대해 보도는 한다. 그런데 영혼이 없다. 그냥 그런 나라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식이다. 불과 2년 전 우리가 통과했던 국정 농단 사태라는 터널은 까맣게 잊은 듯하다. 캄보디아의 민주주의 역주행에 대한 일말의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영혼 없는 보도 중 하나가 캄보디아 제1야당 대표는 구속되고 무어 쏙 후어 부대표가 선거 기간에 인도네시아에 체류했다는 보도였다. 틀렸다. 무어 쏙 후어 부대표는 그때 한국에 있었다. 7월 28일, 캄보디아 총선 하루 전날 해외 거주 캄보디아인들을 규합해 광주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함께 ‘님을 위한 행진곡’과 <레 미제라블>의 주제가 '민중의 노래'를 부르며 조국의 민주주의를 외쳤다.
캄보디아 야당 지도자들과 해외 교포들이 광주에서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외칠 수 있도록 도운 이들은 광주지역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이었다. 반면 광주광역시는 그들을 외면했다. 얼마 전에도 무어 쏙 후어 부대표가 광주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광주광역시장이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난민에 대한 최근의 공포증도 캄보디아 야당 지도자들에 대한 푸대접에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난민 문제는 세계적 난제다. 쉽게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책임지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이 조국에 돌아가는 길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망명 정당’의 지도자들이다. 여기에 남고 싶어서가 아니라 거기로 돌아가기 위해서 싸우는 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광주에 1조원 가까운 비용을 들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기획했고, 또 구 전남도청을 개보수해 민주평화원을 만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바람대로 광주가 민주 평화 인권도시가 될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든 것이다. 캄보디아가 내민 손을 광주가 그리고 대한민국이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