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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전

[박해성의 무대와 객석 사이]

박해성_연출가

제152호

2018.11.22

초가을에 일찌감치 작업셔터 내리고 이른 농한기를 맞다 보니 이런저런 덕질거리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처음엔 소박하게 이런저런 유튜브 채널부터 시작해서 늦배운 아이유 덕질로 이어지다 급기야는 덕질의 화수분, 마블 TV드라마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어버렸다. 그전까지 영화에서 보던 마블캐릭들은 방패고 망치고 막 던져서 어디든 쑥대밭 만들고 손바닥 펼쳐서 우주를 날아댕기고 심지어는 반지 모아서 우주를 동강내기도 했는데, TV판 캐릭들은 그런 우주영웅들이 박살내고 난 도시에서 수퍼파워라기엔 애매한 특기 정도를 가지고 그 흔한 히어로 슈트도 없이 악당들한테 쥐어터져가면서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보통"사람이었다. 언뜻 보면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찾아가서 괴롭히는 게 이들의 미션인데, 걸핏하면 악당들한테 '네가 나랑 다를 게 뭐니'라는 비아냥을 듣고 고뇌하기 일쑤이다.

"감독님, 아파서 못 찍겠어요." -데어데블(출처:netflix.com)

전통적으로 1, 2월은 공연계의 비수기로 창작자들의 농한기이자 보릿고개였는데, 몇 년 동안 이 시기가 각종 신진육성프로그램의 발표 시즌으로 자리 잡아 왔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 시기에 막상 볼 공연들도 별로 없겠다, 이런저런 기관에서 이런저런 경쟁 과정을 거쳐 최종 선택을 받았다는 타이틀도 있겠다 하니 이모저모로 신진들의 작업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진창작자 입장에서는 이런 주목에 지원까지 받쳐주니 자신의 히어로 수트를 뽐낼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응원과 기대 속에 여러 신진들이 등장했고, 그 중에는 수퍼파워를 인정받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소수의 선택받은 창작자들에게만 주어졌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은 아마 신진이라는 슈트를 얻을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막상 슈트를 얻은 이들도 수퍼파워를 인정받을 때까지 끊임없이 리그를 바꿔가며 경쟁을 이어가야 했을 것이다.
그러다 지원정책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경쟁을 통해 다액소건으로 지원되는 기존의 신진육성프로그램 이외에도 문턱이 다소 낮아져 소액다건으로 지원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생겨나, 결국 신진 시즌이란 게 따로 없이 연중 계속되는 현상이 생겨났다. 절대적으로 공연 편수가 늘어난 데다 따로 기대나 주목을 얻을만한 시즌도, 권위도 약화됐기 때문에 많은 창작자는 처음부터 각자의 힘으로 모객을 해야 하고, '신진'이라는 칭호로 얻을 수 있는 용인과 응원의 과정 없이 심드렁한 관객과 바로 대면해야 한다. 결국엔 그 흔한 히어로 슈트도, 수퍼파워도 없이 애매한 특기 정도 가지고 군데군데 비어있는 객석 앞에서,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보통창작자로서 안간힘을 써야 한다. 뭔가 특별하고 새로운 작업을 해내는 게 미션인데, 걸핏하면 다를 게 뭐냐는 비아냥을 듣고 고뇌하기 일쑤이다. 그 와중에 기존의 어벤져스 프로그램도 공존해, 뭔가 부익부 빈익빈인 것도 같다.
그런 고뇌를 이고 지고 어떻게든 지구를 구하겠다고 버틴다고 싸움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신진'이라는 단어가 '중견'으로 바뀔 뿐 고뇌는 반복된다. 수퍼파워가 없다는 건 그나마 참을 만한데, 애저녁에 깨부숴야 할 분명한 적이란 것도 없다는 게 창작자를 늘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걸 악당삼아 쥐어터져가면서 악으로 깡으로 버텨볼 수는 있겠으나, 그러다 보면 내가 누구하고 싸우는지, 내가 그 적하고 다를 게 뭔지 끊임없이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엔 시종일관 열심히 싸우는데, 싸울 적은 어디에도 없다. 간혹 누군가에게 주어진 히어로수트의 간지가 부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싸울 적도, 수퍼파워도 없이 입고 있는 히어로슈트를 두고 코스프레라고 부른다. 왜 이런 고뇌와 혼란이 이어질까.
신과 운명의 절대성에 대해 예술이 으름장을 놓으며 이야기하던 시대가 있었다. 예술가의 재능으로 재탄생된 세계를 경외하던 시대가 있었다. 세계가 향해야 할 방향과 당위를 예술이 제시하던 시대가 있었다. 이런 시대에는 예술이 지구를 바른길로 인도하고 지켜야 했기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영웅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에 우리 모두 슬쩍 빈정상할 정도로 지금의 세계는 더 이상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니 영웅이 되어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창작자의 미션이 이제는 어쩌면 유통기한이 지난 건 아닐까. 그게 주제나 메시지가 됐건, 미적 형식의 제시가 됐건, 창작자가 뭔가를 특별하게 만들어내야 한다는 미션과 시스템 자체가 어쩌면 토르가 열심히 허공에 망치질하는 격 아닐까. 시민들 각자가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그런 개별적 시민 중의 한 명인 창작자가 다른 동등한 시민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창작이고 예술이라면,
창작자 각자의 인생은 길고 그 예술도 길 것이다. 모험은 시작됐다.

"이 만화에서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아." -마미손(출처: Mommyson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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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박해성 연출가
상상만발극장에서 연출
트위터 @theatreimag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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