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생체공학적 뒤틀기

김원영_작가, 변호사

제157호

2019.04.11

로봇팔 로봇다리
휴 허(Hugh Herr)는 1982년 암벽등반을 하던 중 조난되어 심한 동상을 입고 양쪽 무릎 아래를 모두 절단한다. 사고 전까지 등반계의 어린 천재로 불렸던 10대의 휴는 스스로 의족을 개조해 다시 등반을 시작하고, 더 나은 의족을 개발하려 시도하다 아예 MIT 대학원에 진학해 생체공학 연구자가 된다. 현재 MIT 생체공학센터 교수인 그는 2014년 TED 강연에 직접 첨단 의족(bionic prosthetics)을 신고 나와 자신의 연구팀이 개발한 생체공학 기술의 현황과 잠재력을 소개했다.
이 강연에서 그는 기술을 이용해 “우리가 장애를 종식시킬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는 보스턴 마라톤 폭발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무용수에게 자신의 연구팀이 개발한 의족을 선물하고, 강연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그녀가 생체공학 의족을 차고 춤을 추는 무대로 채운다. 숭고한 자연 앞에서 마주한 인간의 역경, 최고의 과학기술을 통한 도전과 극복, 역경을 극복한 인간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퍼포먼스로 완결되는 이 강연의 서사는 지나친 감동 클리셰라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인다. 만약 공연이었다면 혹평을 받았을 것이다.

2014년 TED에서 강연하는 휴 허(사진출처 https://blog.ted.com/hugh-herr-talk-7-years-in-the-making
/ 관련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yJ9dLw0wpQA)

‘현대예술’은 이런 감동서사를 원하지 않으므로 아마 뒤틀기를 시도할 것이다. 영국의 무용수 데이비드 툴(David Toole)은 다리가 없고 양팔로 바닥에서 추는 춤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12년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공연했고, 영국의 전통적인 공연예술단체 캔두코(Candoco)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다. 유투브에서는 휠체어에서 내려와 길고 튼튼한 두 팔로 비장애인 무용수의 다리와 조응하며 마룻바닥 위에서 우아하게 움직이는 춤을 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춤은 어떤 면에서 ‘기이하다’. 나는 그의 영상을 처음 보았을 때 한편의 서커스 같아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관련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Le9ZSwU4aQ)

만약 휴 허가 개발한 생체공학적 의족을 착용하고 데이비드 툴이 무대 위에 오른다면, 현실에서 이 장면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현대예술’(내가 입에 담기에 너무 거창한 말이지만, 그냥 계속 사용해보자)에 가깝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데이비드에게 다리가 아니라 양팔을 선물하는 편이 더 ‘예술적’일지도 모른다. 그는 생체공학적 팔을 이용해 바닥에서 춤추다 훨씬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고, 더 먼 곳의 사물을 붙잡고 몸을 뒤집을 것이다. 기계공학, 역학, 전자공학 지식이 총동원된 이 생체공학 팔로 데이비드의 몸이 가진 기이함(freakiness)은 더 한 층 확대된다. 이 퍼포먼스는 TED와 같은 현실의 강연이 아니라, 공연장에서 주목을 받을 것이다.
MIT에서 메일을 받는다면
데이비드 툴의 몸은 내 몸과 닮았다. 내가 그의 영상을 보고 어떤 특별함 혹은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 것은 녹음된 자기 목소리를 난생처음 들었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충격과 유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분명 자유롭게, 그 전의 누구와도 다르게 춤추지만 놀랍게도 그의 움직임은 일상 속 나의 이미지에 가까웠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으면 휠체어를 이용하지 않고 바닥에서 구르고, 팔을 집고 돌고, (팔꿈치와 손목을 이용해) 펄쩍펄쩍 뛰고, 벽을 타고 천장에 붙는다(진짜다).

어느 날 휴 허가 MIT에서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 아래와 같은 제안을 한다면 어떨까?

“안녕하세요 김원영님. 이번 MIT 랩에서 발명한 최고 수준의 생체공학 다리와 팔이 있어 당신에게 지원해드리고 싶습니다. 예산 문제라 하나밖에 제작해드릴 수가 없네요. 무엇을 선택하시겠어요? 다리를 착용하면 당신은 내일부터 휠체어를 버리고 아침에 낙성대공원 앞을 산책하고 북한산에 등반하고 뜨거운 커피와 두꺼운 서류를 동시에 들고 버스를 타고 서초동에 들렀다가 바로 홍대 클럽에 갈 수도 있어요(물론 나이가...). 팔을 선택한다면.. 음. 현대예술가들이 기획한 변태적인 퍼포먼스의 배우가 되겠군요”

기술은 장애를 ‘종식’시키고 예술은 장애를 서커스로 만드는 걸까? 아니면 기술이 장애를 퍼포먼스화하고, 예술은 장애를 ‘인간화’하는 걸까? 아직은 MIT의 제안을 받으면 어느 쪽을 선택할지 알 수 없다. 정식 제안이 오기 전에, 서커스도 역경에 맞서는 영웅도 아닌 목소리로, 내 몸의 소리를 듣고 싶다.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김원영

김원영 작가, 변호사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희망 대신 욕망>을 쓴 저자이고, ‘법무법인 덕수’에 소속된 변호사다.
연극 프릭쇼(2014년 변방연극제) 등을 기획했다. 장애예술, 그 중에서도 공연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체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탄다. 한겨레신문, 비마이너, 시사인 등에 글을 썼고 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DisabilityTheoryAndAr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