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우리에게 극장이란

극회출신 관객의 학공관극기

이정환

186호

2020.09.10

극장에는 설렘이 있다. 공연을 올리기 위해 텅 빈 극장에 들어서면, 앞으로 만들어 갈 연극 공연에 대한 기대로 두근거린다. 이 공간에 무대를 세우고, 공연을 하고, 철거를 반복하면서 공연팀과 부대끼다 보면 어느새 공연장이 내 집처럼 느껴진다.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를 하면서 누릴 수 있었던 큰 행운은 바로 ‘좋은 극장’이었다. 프로 연극 공연이 올라가고 가수들이 콘서트를 열 정도의 극장이니 시설이 얼마나 좋은지 가늠할 수 있다. 넓고 높은 무대 공간, 약 300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중규모 극장과 100명가량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소규모 극장,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조명의 종류와 개수 등 아마추어 연극 동아리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좋은 극장이 학교에 있었다.

하지만, 다른 대학의 극장들이 우리와 같지는 않았다. 학생공연(이하 학공)을 많이 보러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학교의 극장에도 관심이 갔다. 그중에는 규모가 작은 극장이 대부분이었고 시설이 빈약해서 과연 여기서 제대로 된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 하는 곳도 있었다.

몇 해 전 한 사립대학의 학공을 보러 갔을 때, 학생회관 안에 위치한 극장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학교의 명성에 비해 극장은 너무나 규모가 작았고 제대로 된 객석 의자조차 없었다. 게다가 공연을 보던 중 조명이 단조로워 천장을 봤더니 7대의 조명기가 전부였다. 공연진이 일부러 조명을 적게 설치한 것이 아니라 조명기를 설치할 수 있는 채널 수 자체가 적어서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수십 개의 작품 속 장면들을 7대의 고정된 조명기로 해결하려고 하니 당연히 배우들의 동선이 제한되고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연기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한창 공연이 진행되어 관객의 집중력이 최고에 다다랐을 즈음, 밖에서 음악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건물 옆 광장에서 축제 리허설이라도 하고 있었던지 전자 기타 소리가 극장 안을 가득 채웠다.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바로 앞에서 듣는 배우들의 목소리 보다 새어 들어오는 음악 소리가 더 클 정도였다. 자연스레 관객들의 몰입도 떨어졌다. 공연팀이 공연을 중단시키고 다시 시작한다 해도 납득할 수 있을 만큼, 무대 위의 배우와 공연진들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의 대학 극장은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극장 입구와 객석이 너무 가까워 추가 입장이 불가능한 극장, 일반 강의실을 개조해서 만든 극장 등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 많았다. 이렇다 보니 대관료가 비싸더라도 학교 밖의 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동아리도 있다.
극장은 단순한 공연 장소인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지닌다. 극장의 환경과 시설은 동아리의 실력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공간이 넓다면 그 공간에 맞게 무대를 디자인해야 하고, 여러 조명기를 설계하면서 다양한 장면 연출도 가능하다. 물론 그만큼 공연진이 채워야 할 부분이 더 많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아마추어 대학생 연극인에게는 이런 극장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넓은 극장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생기게 된다. 다양한 형태의 무대를 제작하고 설치하면서 극장을 보다 다채롭게 채울 수 있게 되고, 수십 개에 달하는 조명을 설치하면서 조명 기술뿐 아니라 다양한 장면 연출을 상상하고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배우들 역시 더 넓은 공간에서 대사를 전달하기 위해 더 많은 발성 훈련을 하게 되고, 공간을 넓게 사용하는 연습을 한다. 이처럼 넓은 극장을 채우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동아리원 개개인의 역량, 나아가 연극 동아리 전체의 역량이 올라간다.

반면에, 극장이 협소하고 시설이 열악하다면 이런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 특히, 무대와 조명 등 스태프 측면에서 그렇다. 극장 시설의 제약이 커서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의 폭도 좁아지고, 공연을 올릴 때도 무대와 동선, 조명 등 모든 측면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스태프 분야가 작품 표현에 미치는 영향만큼 극장의 환경은 공연의 질과 재미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우리나라 모든 대학에 각각 괜찮은 극장이 하나씩 있는 것이다. 그렇게 웅장할 필요는 없다. 100석 정도 규모에, 배우 등퇴장로가 무대 양옆으로 나 있고, 방음이 되며 천장은 높고 사용할 수 있는 조명의 채널이 많으면 된다. 그리고 무대 바닥이 나사를 박을 수 있는 재질이어야 한다. 극장 밖에 티켓 부스가 마련되어 있으면 더욱 좋다.

학교의 좋은 극장은 학생들이 공연을 만드는 재미를 느끼며 역량을 기를 수 있게 한다. 나아가 그 대학의 문화적 수준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학가에서 이런 조건의 극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대학이 괜찮은 극장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 시설의 제약 없이 연극 동아리가 역량을 성장시키면서 뽐내고, 대학 간에 연극 공연으로 경쟁을 하는 것이 정말 꿈같은 이야기일까. 언젠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이정환

이정환 블로거
서강연극회 출신. 연극반에서 <쥐덫> 배우, <지평선 너머> 기획, <어느 계단의 이야기> 연출, <사쿠라가든> 조연출, <루나자에서 춤을> 음향감독, 기획팀 등 총 14번의 공연에 참여함. 지금은 단지 학공을 좋아하는 인터넷 블로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