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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싸돌아다니기

최서윤

187호

2020.09.24

소위 2.5단계라고 불리던 ‘강화된 거리두기 2단계’ 중 있었던 일이다. 공공도서관 운영이 중단되고 프렌차이즈 커피숍과 스터디카페의 영업이 제한되자 개인카페·만화카페에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族)’이 모인다는 기사를 봤다. 줄줄이 비난 댓글이 달려있었다. 외출 그 자체에 대한 비난부터, 카페에서 공부하는 의도를 함부로 추측하며 비하하는 내용까지 다양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 쉽게도 말한다 싶었다. 개인마다 처해있는 상황은 다르다. 집에 개인공간이 없다면? 자신의 방이 있다 해도 날마다 부모가 싸운다든지, 이웃의 개가 우렁차게 짖는다든지, 집중이 어려운 환경이라면? 해가 들지 않고 누수가 심하며 곰팡이가 슬어 건강을 악화시키는 자취집이라면? 공부하라고 만들어진 쾌적한 공간이 닫힌 상황에서, 빈틈을 찾아 무언가를 해야 했던 절박함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심지어 기사의 사진은 삼삼오오 모여 떠들며 비말을 공유하는 풍경도 아니었다. 마스크 쓰고 홀로 공부하고 있는 카페 고객들을 찍은 사진이었다. 즉, 방역 수칙에 크게 거스름이 없는 모양새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들이 저들을 비난할 필요도, 권리도 없는 것 아닌가?

당국은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 사람들의 접촉과 이동을 최소화하는 조치를 해야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해당 조치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본질적 목적은 코로나 확진자 수의 가파른 증식을 막는 것이며, 그것은 성실한 개인 생활 방역으로 가능하다는 사실. 즉,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외출’을 비판해야지, 외출과 활동 그 자체를 비난하는 일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견이다.
개인 방역 수칙인 마스크 착용을 강조하는 질병관리청 [코로나19 오늘의 한마디]
개인 방역 수칙인 마스크 착용을 강조하는 질병관리청 [코로나19 오늘의 한마디]
코로나19 관련된 여러 사례가 우리 사회에 축적됐다. 집단감염 사태에서도 항시 마스크 착용을 하고 있던 사람은 확진자에 포함되지 않은 일이 여러 차례. 마스크 잘 쓰고 손 잘 씻으면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음이 여러 번 증명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마스크 착용 여부와 상관없이 ‘이 시국’에 ‘싸돌아다니는’ 것을 비난하는 여론이 득세하고 있다. “모두 합심해서 빨리 이 상황을 끝내자”는 열정이 식지 않았나 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1~2년간 이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빨리 끝낼 수 없는 것이라면, 열정은 전환돼야 한다.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그리고 나는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 불안에 짓눌려 생존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삶은 싫다. 돈 되는 일은 아닐지라도 마음을 살찌우고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시간을 일상에 배치하고 싶다. 내겐 경쟁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환대의 공동체에서의 교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눈을 보고 의견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 흥분과 감동을 온몸으로 느끼고, 새로운 몸의 움직임을 배우는, 삶의 실감을 주는 순간도 되찾고 싶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은 방역수칙을 지키는 한에서 이뤄져야 한다. 매일 체온을 재고 있지만, 정상 체온이어도 ‘내가 혹시 무증상 확진자일지도?’라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려 한다. 타인과 공유하는 공간에서 항상 마스크를 쓰고,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틈만 나면 손을 씻는다. 누군가와의 겸상도 드문 일이 됐다. 마스크 없이 뚫린 입으로 같은 상에 앉아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며 비말을 교환하는 게 감염에 가장 취약한 행위임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인간을 ‘비말제조기’로 보게 된다) 팬데믹 이후, 겸상은 서로로 인해 병에 걸려도 원수 되지 않겠다 싶은 사람들과 어쩌다 한 번씩 한다. 규모도 작게, 5인 이하로. 만에 하나 집단감염이 발생할지라도 그 규모가 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심조심, ‘코로나 시국’이 끝날 거라 생각하고 참거나 미루어두었던 것들을 재개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이들이 삶을 되찾는 길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 뒤 젊은 연령층의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통계를 접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경제적 어려움 역시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내 주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인들이 많다. 주로 자영업자와 프리랜서 예술인들이다. 프리랜서인 나 역시 일이 줄었지만, 다행히 빚을 내어 일상을 버티는 상황은 아니다. 허나 많은 자영업자들은 대출에 기대어 버티고 있다. 매출이 큰 폭으로 줄었는데, 임대료, 설비 유지비, 인건비 등 고정 지출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끝날 것이라는 희망으로 대출받아 일상을 버티던 이들은, 상황이 장기화된다는 말에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삶의 의욕을 상실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영업이나 운영 ‘정지’를 강제하는 일은 최소화했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시민이 마스크를 ‘디폴트’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실천이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 ‘코스크’나 ‘턱스크’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협력하지 않는 이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공공시설에서 마스크 착용을 요청하는 공무원을 폭행한 빌런의 사례는 충격적이었다. 공권력도 따르지 않는 이런 사람들이 마스크 쓰라는 업장의 점원 말은 들을까? 삐뚤어진 소비자 의식이 결합해 더욱 저열하게 굴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자영업자가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는 손님을 말리다 “네가 뭔데”“내가 알아서 한다는데 왜” 같은 반발(또는 반말)에 부딪히는 일이 적잖게 발생한다고 증언한다. 안내를 따르지 않은 손님 때문에 지자체 단속에 적발되어 영업정지와 벌금 등의 손실을 떠안게 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방지할지, 업장이 소비자주의적 앙갚음을 당하지 않게 어떤 공적 도움과 권위를 제공할 수 있을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공공시설이 문을 닫는 지금의 기준 또한 검토해봤으면 한다. 공공시설 폐쇄는 최후의 일이여야 하지 않을까.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고 표준화된 방역 관리가 가능한 공공 공간을 여는 것이, 개인카페· 만화카페에 사람들이 과밀하게 몰리는 일보다 안심되지 않은가.

어쨌든, 방역의 핵심이 제대로 마스크를 착용해 비말을 공유하지 않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역의 핵심을 지키고 있다면, ‘싸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너무 비난하지 말자. 오히려 이 시국에 내수경제를 살리는 고마운 사람들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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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최서윤
말하고 싶은 것을 적시에, 효과적으로 전하는 법에 관심 많다. 그러다 보니 가지가지 하게 됐다. 2012년 창간한 잡지 <월간잉여>는 5년째 휴간 중이며, 대신 저서 『불만의 품격』, 공동 저서 『미운청년새끼』를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단편영화 <망치>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볼 수 있다. 가지가지 하는 창작자는 대충 작가라고 하는 게 룰인 것 같아 자기소개 때마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영 어색하다. 좀 더 적절한 직함을 제안하고 싶다면 facebook.com/monthlying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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