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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와 함께 장애/젠더 관점으로 바꾸는 성평등한 세상

박은선_리슨투더시티 디렉터

188호

2020.10.08

올해 5월부터 필자는 장애여성 공감에서 “모두와 함께 장애/젠더 관점으로 바꾸는 성평등한 세상, 시민감시단 <새로고침> 모니터링”을 함께하며 우리나라 행정부의 공보물을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공보물을 검토하면서 2019년에 직접 기획한 행사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2019년에 필자는 여성문화예술연합 회원 자격으로 여성신문과 ‘문화예술이 젠더를 말하다’라는 행사를 기획한 적이 있다. 평소 페미니즘, 여성 예술인 성폭력 관련 일을 해온 여성 그룹들과 함께 대학로에서 하루 동안 인식개선을 위한 워크숍 및 전시 프로그램들을 준비했다.

필자는 “SF와 허리”라는 소책자를 만들었는데, SF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 20여 사람의 허리 굵기를 조사했더니 착한 외계인도, 악당 외계인도, 그들과 맞서 싸우는 인간 여전사도 모두 24~26인치 였다. 결국 지구를 떠난 우주에 대한 이미지마저도 결국 남성의 상상력에서 기반 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 결과물을 전시할 때 여성 배우들의 이미지 자체가 성적 이미지로 소비되는 여성들의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냈고 결과적으로 그 여성들의 성적 표상을 재생산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 후 여성에 대한 차별에 항의한다는 의미를 가진 이미지나 언표들도 차별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고, 그렇다면 여성을 혐오하는 이미지들을 관찰하고 비판하는 행동은 어떤 이미지와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올해 장애여성 공감에서 함께 했던 공보물 모니터링 사업은 너무나 훌륭한 공동작업이었다. 공공기관의 홍보물은 시민들에게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젠더 측면에서 더욱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 시간이 더 많아서 자주 모이고 더 많은 공공 홍보물을 모았다면 좋았겠으나, 공보물에 나타난 여성 혐오의 유형을 알아내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양이 모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여러 사람의 교차하는 시각을 통해 여러 관점을 배울 수도 있었다.
  • 국무조정실 신문고 이미지
  •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 홍보물
보통 여성은 남성에 비해 현저하게 작게 표현된다. 남성은 의사이지만 여성은 간호사로 표현 되어있다
압도적으로 성별 고정관념을 부각한 홍보물들은 첫 번째, 여성을 “분홍색”, 남성은 “파란색” 계열로 표현한 점이었다. 두 번째 여성은 남성 뒤에 위치하고 늘 작게 표현되었다. 마치 세상의 주인은 남성이고 여성은 보조 역할이 되는 듯 말이다. 이런 현상을 여성 깍두기 현상이라고 이름을 붙여 보았다.

세 번째, 여성은 머리가 길고 치마를 입었다. 이러한 구시대적 젠더 이분법을 공공연하게 문제의식 없이 쓰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정상가족” 모델이었다. 거의 모든 공보물에서 가족을 표현할 때 아들, 딸, 엄마, 아빠 4인 가족으로 표현한 점은 그 외의 가족 형태를 “비정상”으로 만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더군다나 엄마는 치마를 아빠는 남방을 입어 정상 가족이 순종적인 여성, 화이트칼라 남성으로 표준화된다는 듯한 인상을 심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관광재단 홍보물
장애에 관해서는, 공보물에 등장하는 장애인은 모두 수동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는 장애인=지체장애인이라는 단순한 고정관념을 생산한다. 장애는 복합적, 중복적 형태로 나타날 때가 많고, 시각, 청각, 신장, 발달 장애 등 여러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공보물에서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슬프게도 작업을 지시한 사람도, 일러스트를 그리는 사람도 다양한 종류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이럴 바에야 일러스트 이미지나 사진을 넣지 않는 게 낫겠다는 의견도 종종 나왔다. 하지만 이미지를 없애는 것보다는 성차별이나 혐오가 없는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적극적으로 지적하여 공론화하는 집단행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힙합에서 여성 혐오 가사가 넘쳐나지만,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여성혐오는 아니다.

앞으로 장애여성공감에서 대중문화에 나타난 여성 혐오, 장애 혐오도 모니터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가장 심각한 분야는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아닐까? 남성 가수들의 가사에 나타난 여성 혐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여성 혐오도 문제지만 귀엽고 청순한 동시에 섹시한 여성의 이미지를 생산하는 연예사업은 우리나라 젊은 세대의 젠더 관념을 왜곡시키는 주원인이라고 본다. 장애여성공감이 모니터링 사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의 지지와 참여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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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선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
리슨투더시티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미술과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환경공간정보 및 재난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listentothecity.or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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