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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공연은 올라간다

극회출신 관객의 학공관극기

이정환

190호

2020.11.05

힘든 시기였다. 코로나19로 인해 각 대학의 연극 동아리 공연(이하 학공)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애써 준비한 공연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그래도 여름이 되면서 상황이 조금 호전되자 각 연극 동아리들은 가을 공연을 준비했다. 하지만 광복절 직후 다시 상황이 나빠지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회적 위기에 학공들도 숨을 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보통 학공이 올라가는 3월이나 9월에는 수도권 소재의 대학에서만 연극과 뮤지컬을 합해서 30여 개의 학공이 올라간다. 하지만 지난봄에는 단 하나도 볼 수 없었고, 이번 가을에도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학공을 못 보겠구나 생각하던 찰나에 몇몇 연극 동아리에서 공연 소식을 알렸다. 온라인으로 생중계를 하거나 현장 관람에서도 객석 간의 거리를 두는 등 평소와는 다른 모습들이었지만, 어쨌든 해를 거르지 않고 학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연세대학교 연상극우회의 <유리동물원>, 서울시립대학교 극예술연구회의 <수업>을 온라인 생중계로 감상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대학교 연극 동아리들은 항상 일손이 모자라기에 공연 당시 온라인 중계를 위한 카메라 세팅과 화면 송출 등을 담당할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연상극우회의 <유리동물원>은 배우들의 연기 구역이 흩어져있는 만큼 장면마다 카메라를 배우들에게 클로즈업하는 수고를 들였다. 한 대의 카메라만 가지고 생중계를 하다 보니 카메라가 줌인, 줌아웃 하는 것과 각도를 바꾸는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다소 아쉽긴 했으나 제한된 환경에서 관객들에게 공연을 전달하기 위한 최선이었다고 보인다. 시립대극회의 <수업>에서는 카메라가 장면마다 움직이지 않고 한 각도로 고정되어 있긴 했으나, 배우들이 주로 연기하는 구역이 한정되어 있었고 전체 무대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관람하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
  • 건국대학교 건대극장 <덕수삼촌>포스터
  • 서울대학교 미대극회 <집에서 동물원에서> 포스터
다행히도 건국대학교 건대극장의 <덕수삼촌>, 서울대학교 미대극회의 <집에서 동물원에서>는 현장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극장에 가서 체온을 재고, 이름을 적고, 관객들끼리 떨어져 앉아야 했지만 어쨌든 현장에서 관람할 수 있었기에 오랜만에 연극 공연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시종일관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기에 공연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한국으로 옮겨온 건대극장의 <덕수삼촌>은 무대가 간소해서 배우들의 연기에 좀 더 집중되었고 각 인물의 성격이나 특징이 잘 부각됐다. <집에서 동물원에서>를 올린 미대극회의 공연은 등장인물이 세 명으로 적은 만큼, 인물들 간에 생각과 행동이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갈등과 그것을 표현하는 배우들 간의 합이 돋보였다.

관람한 학공들의 완성도는 코로나 이전에 봤던 여느 다른 학공들과 큰 차이는 없었다. 발성이나 발음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배우도 있었고, 무대나 조명·음향적인 측면에서 허점을 드러낸 공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연진끼리의 합이 잘 맞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코로나로 인한 공연 공백기가 길어진 만큼 연습하고 준비할 시간이 늘어났고, 그만큼 서로 얘기할 시간도, 맞춰볼 시간도 더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배우와 스태프를 포함한 공연진들의 손발이 잘 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길게는 200일 넘게 준비하면서 언제 공연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공연을 올린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서울연극센터의 웹진 연극in에서 칼럼을 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을 때, 학공들을 관람하고 그 공연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이번 시기 학공들의 경향성 등을 분석해보고 싶었다. 이번 2020년 가을에는 관람한 공연이 네 개뿐이라서 전체 학공의 경향을 조망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적게나마 올라간 공연들을 짚어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날이 쌀쌀해지고 어느새 2020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다시 찾아올 봄을 기다리며 공연 준비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학공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며, 내년에는 학공이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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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이정환 블로거
서강연극회 출신. 연극반에서 <쥐덫> 배우, <지평선 너머> 기획, <어느 계단의 이야기> 연출, <사쿠라가든> 조연출, <루나자에서 춤을> 음향감독, 기획팀 등 총 14번의 공연에 참여함. 지금은 단지 학공을 좋아하는 인터넷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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