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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이 있습니다
-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큐투큐] ㅋㅌㅋ

류혜영

제216호

2022.04.14

큐투큐(Cue-to-cue)는 극장에서 이뤄지는 리허설의 일종으로, 큐와 큐를 중심으로 연극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맞춰보는 작업입니다. 객석 오픈 시점, 조명 변화, 음향 타이밍, 무대 전환 포인트 등 모든 지점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큐로 존재하며, 공연 한 편은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큐로 구성됩니다. 큐투큐는 연극 제작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작업으로, 여기에는 프로덕션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합니다. 누군가는 큐를 지시하고, 누군가는 고 버튼을 누르며, 누군가는 타이밍에 맞춰 등장하고 흩어집니다. 웹진 연극in에서는 극장 리허설을 넘어, 연극 작업 전 과정에 존재하는 수많은 큐와 큐 속에 흐르는 각자의 관점과 생각을 들어보려 합니다. 하나의 큐가 주제로 던져지고,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필자들이 그 큐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예정입니다.

심장이 같이 쿵쿵 울릴 정도로 큰 소리의 커튼콜 음악을 들었다. 내가 버튼을 누르면 그 음악이 나왔고, 이 공연에서 이 음악을 트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던 공연이 있었다. 매번 눈물이 났기에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문장을 떠올리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는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군가 내게 극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묻는다면, 아마도 오퍼레이터의 자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자리의 역할과 기능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오퍼레이터로서 공연의 시간을 보내는 일을 좋아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정해진 시점에 음향이나 조명, 자막, 영상 등의 큐를 진행시키는 일, 그 일을 하는 동안 공연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일. 오퍼레이터로 일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로 좋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공연을 몇 번이나 오래도록 보고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고,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오퍼레이팅이라는 행위와 과정을 통해 공연에 대한 생각들을 짚어나가곤 했던 것 같다.

그동안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도록, 감독님들이 셋팅해주신 공연의 오퍼레이팅을 주로 했었는데, 내가 버튼을 누르는 순간 여러 사람이 함께 빚어낸 무엇이 극장 공간에 발생한다는 것이 참 좋았던 것 같다. 버튼을 누를 뿐인데 그런 일이 일어난다니. 내게 그것이 너무 특별해서, 어쩌면 과한 의미 부여를 하는 만큼 큐 하나하나를 마주할 때의 긴장도 컸다. 지금 생각하면 자의식이 좀 과하다 싶지만, 큐 하나를 갈 때마다 다행스러워하거나 아쉬워하기 일쑤고, 내 마음대로 나의 오퍼레이팅을 평가하곤 했다. 그러잖아도 오퍼레이팅을 하면서 긴장할 일은 많았을 텐데.

오퍼레이팅과 관련해 꽤 자주 상상했던, 좋지 않은 상황들…

- 큐를 잘 맞추지 못하는 상황
예) 전화벨이 울려서 전화를 받는데, 전화 받는 동작과 벨소리 끊기는 타이밍이 잘 맞지 않음
예) 다른 파트와 두 호흡을 세고 함께 가는 큐에서 호흡이 어긋남

- 큐를 놓치는 상황
예) 큐를 갔(다고 생각했)는데 진행이 되지 않아 큐를 놓침
예) 장면을 보다가 큐를 놓침

- 큐보다 앞서가는(?) 상황
예) 큐를 놓쳤다고 생각해서 황급히 큐를 진행했는데 그제야 큐 포인트가 됨
예) 비슷한 대사나 같은 대사로 큐 포인트를 착각해서 큐를 미리 감
예) 큐를 가기 위해 미리 준비하다가 손이 미끄러짐
예) 손가락이 떨려서 더블 고를 감

-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
예) 백업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프로그램이 멈춤
예) 큐를 갔는데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고, 원인을 파악할 수 없음

- 안전과 관련한 상황
예) 공연 중에 내가 쓰러짐
예) 화재 발생

- 그 외?
예) 큐 대사가 없어짐
예) 공연 중에 이상한 충동이 생겨서 고 버튼을 누르고 누르고 눌러서 큐를 끝까지 감

대부분은 이 중 단 하나의 상황도 발생하지 않고 공연이 끝나지만, 그것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렇게 그 일을 좋아한다면서도, 커튼콜 때가 되어서야 마음놓고 숨을 쉴 수 있었다. 오늘도 무사히 끝났구나. 커튼콜은 특별한 다른 게 아니라 공연의 끝이었다. 관객이 모두 퇴장하기 전까지는 다 끝난 게 아니지만, 그래도 공연이 끝나는 시간. 이만큼의 긴장은 필요하지 않은 시간. 이제는 작게나마 박수를 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몇 번의 커튼콜을 보내고 나면 공연이 정말 끝났다. 마음 졸이던 공연의 시간이 지나고 커튼콜이 찾아왔듯, 한 작품의 끝도 언젠가는 찾아왔다. 끝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은 때로 아쉬운 일이지만 때로 큰 위안이기도 했다. 그 무엇도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애초에 한 번도 같을 수 없었으니 어떻게 해도 영원할 수 없을 공연들이 유한한 시간 동안에 올라가고 막을 내린다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이치처럼 여겨졌다. 어차피 이걸 묶어둘 수는 없구나. 매일매일을 붙잡을 수 없듯이 그 공연은 그 공연이었던 것으로 지나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 원하든 원하지 않든 끝이 온다는 것. 정확하게는, 내가 원하더라도 끝이 온다는 것. 그 어쩔 수 없음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곤 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나 관객으로서, 때로 공연이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아니면 공연은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는데 내가 힘든 거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아니면 공연은 모르겠고 그냥 힘들 때가 있다. 아니면 마음이 아파서 아플 때가, 좋아서 아플 때가, 싫어서 아플 때가 있다. 그럴 때 모두, 커튼콜이라는 끝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본다. (물론 커튼콜이 없는 공연도 있지만…) 좋든 싫든 공연은 끝이 난다. 어떤 방식으로든 끝나지 않은 공연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만나는 공연에도 어떤 끝이든 끝이 있다는 것, 그것은 아쉬우면서도 때로 어떤 동력이 되는 사실이다. 공연의 하루와 그 모든 시간들을, 그 끝들을 받아들이고 겪어갈 수 있게 하는 무엇이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지내는 일에도, 이 모든 것에 언젠가 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어떤 끝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끝은 있을 것이라는 것.

본문사진01
<꿈깸꿈깸꿈>(2021) 대본 마지막 페이지

내가 생각하는 커튼콜. 그래도 그 모든 것에 끝이 있음에 안도하였던 감각을 되새기며 순간과 하루, 그 불안한 시간들을 지낼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커튼콜. 눈물이 마르는 마음에 절망할 때에도 겨울과 여름 어떤 공연과 어떤 공연의 커튼콜들을 떠올려 그때의 마음조각을 빌려올 수 있다.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질문해본다.
당신에게는 어떤 커튼콜들이 있는지.

다시 어떤 커튼콜, 모두가 각자의 역할로 아직 머물고 있다. 또 한순간의 일. 끝이지만 또한 끝이 아닌 일이다. 이 또한 어떤 순간이라는 의미부여가 아니라, 소리도 빛도, 스태프도 배우도, 관객도 모두 아직은 다 끝나지 않은 일이라서. 또 관객이 모두 퇴장한 극장에 아직 남아 있는 일들도, 그리고 또 시작될 다음 시간의 준비도. 우리 모두의 시간들이 어딘가 쯤에서 잠시 만났다 헤어진다. 어떤 의미부여를 할 필요 없이, 어딘가에 당신이 살아있었고, 내가 살아있었다. 그것이 당연하지 않게, 당연한 듯 만났다 헤어진다. 끝이면서 끝이 아닌 것으로, 끝이 아니면서 끝인 것으로.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번 떠올려본다. 그냥, 커튼콜을 기대해봐야겠다. 조금 이상하지만, 다음 공연이 아니라 다음 커튼콜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의미와 순간이 아닌, 그냥 끝들을 기대해봐야겠다. 마주쳤다 헤어지는 끝. 어떤 힘이 필요한 순간에, 그 끝을 생각하면 그냥 조금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다음 커튼콜을, 또 다음 커튼콜을 기다려보려 한다. 그리고 그냥 언젠가에, 이 커튼콜이 당신에게도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오늘 하루가 무사히 끝나기를. 그렇게 각자의 끝을 보내다가, 또 어딘가에서 다른 끝을 함께해볼 수 있기를.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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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영

류혜영
오래 누워 있는 사람
여기는 당연히, 극장
2021년에는 다음의 작업들에 참여했다. 음향오퍼레이터 <물고기로 죽기>, 조연출 <좋은 괴물>, <로드킬 인 더 씨어터>,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DRAGx 남장신사>, 작/연출 <꿈깸꿈깸꿈> ryuhyey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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