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이라는 조용한 언어
[큐투큐] 시동(始動)
이윤진
제243호
2023.10.12
큐투큐(Cue-to-cue)는 극장에서 이뤄지는 리허설의 일종으로, 큐와 큐를 중심으로 연극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맞춰보는 작업입니다. 객석 오픈 시점, 조명 변화, 음향 타이밍, 무대 전환 포인트 등 모든 지점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큐로 존재하며, 공연 한 편은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큐로 구성됩니다. 큐투큐는 연극 제작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작업으로, 여기에는 프로덕션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합니다. 누군가는 큐를 지시하고, 누군가는 고 버튼을 누르며, 누군가는 타이밍에 맞춰 등장하고 흩어집니다. 웹진 연극in에서는 극장 리허설을 넘어, 연극 작업 전 과정에 존재하는 수많은 큐와 큐 속에 흐르는 각자의 관점과 생각을 들어보려 합니다. 하나의 큐가 주제로 던져지고,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필자들이 그 큐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예정입니다.
극장에서 펼쳐지는 세상 속 존재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옷을 만든다. 그 옷은 대부분은 사람의 옷이지만 때때로 동물이나 식물 또는 물건 그 외에 지칭하기 모호한 비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떤 물질이 자기 자신과 함께 데리고 다니는 가장 가깝고도 작은 공간이 옷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같이 다니려면 자신의 취향, 성향, 지향 등을 많이 반영하게 된다. 그래서 그 존재에 대해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 또는 그 존재가 가진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것, 그런 옷을 만들어보려고 시동을 건다. 그런데 그 시동의 순간이 초반에 한 번 와서 그 동력으로 쭉 갈 수 있는 선형적인 여정은 아닌 것 같다. 그 시동의 열쇠는 작업기간 중 언제 어떻게 몇 개가 주어질지 알 수 없다. 시동이 꺼졌다 다시 켜지고 뺑글뺑글 돌아가기도 한다. 이런저런 조사와 상상을 해서 제시해보기도 하고 기다리다 관찰하고 고민하다 질문한다. 때로는 목적지만 정해놓고 도착해서 무엇을 하고 뭘 먹을지 같은 세부적인 것은 그저 서로 믿어주고 실험해보면서 달려가 보기도 한다.
대본
배우가 누구인지 몇 명이서 역할을 어떻게 나누게 될지 모르고 글을 읽는다. 사전 정보가 주어지거나 배우를 만나보기 전에 대본부터 읽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일단은 독자가 되어 글 속 세상을 만난다.
그러면서 그 글에 존재하는 인물의 색채가 느껴지기도 하고, 캐릭터들 간의 관계에서 색상이나 질감을 어떻게 대립시키거나 일치시킬 것인지 그 구조가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클래스>라는 작품을 읽으면서는 선생님 역할의 인물에게서 선명한 빨간색이 느껴졌다.
그 인물은 극작과 학생의 글을 첨삭해주면서 계속해서 분명해질 것을 요구했고 스스로 확신에 차 강한 말들을 뱉는다.
반면에 그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는 학생은 자신과 세상에 대해서 복잡함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이렇게 모호함 속에 답답한 학생은 명확함을 동경한다.
그래서 붉은색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리저리 교차되어 있는 체크무늬나 줄무늬의 옷들을 겹쳐 입혔다.
나는 이 이야기가 확신에 찬 이에게 혼란을 선물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인극인 이 이야기에 두 인물의 관계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차이를 주고 대립시킬 것인지 집중했다.
이렇듯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에 평범한 모습의 인물들이어도 그 안에 몰아치는 감정이나 말이 가진 에너지와 닮은 색상과 무늬를 찾아본다.
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연습실
글이 캐릭터의 이미지와 의상을 떠올리는 데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대본 안에서는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거나 생각이 더 복잡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시동의 열쇠는 연습실에서 주워 보려고 애쓴다. 배우의 목소리 톤에서 열쇠가 떨어질 때도 있고, 연습 전후에 미술회의를 하다가 다른 디자이너님의 감상이나 연출님의 노트에서 열쇠가 날아올 때도 있다. 심지어는 이런 관찰과 회의의 과정 속에서 기존에 글을 읽으며 확실한 열쇠라고 생각했던 것을 버리고 다시 고민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내가 읽은 것과 연습을 통해서 달라지는 것들은 끊임없이 격차가 생긴다. 때문에 유심히 관찰하면서 손짓 하나 눈빛 한 번에 어떤 감정들이 지나가는지를 세세하게 느껴보려고 촉각을 곤두세운다. 장면에 필요한 의상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해서 일단 천을 하나 연습실에 넣어보면 그게 연습과정에서 다양하게 움직이면서 우아한 베일이 되기도 했다가 머플러가 되기도 했다가 생각지 못한 형태로 공연에 맞게 변화하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도 흥미롭다.
세상
글 속에 표현된 세상을 최대한 잘 이해하고 현실을 생동감 있게 반영하려는 과정에서 뜻밖에 걸리는 시동도 있다.
<오피스>라는 작품은 현재의 평범한 직장인들 이야기였다. 획일화된 회사원들의 평범성을 사실적으로 잘 살리고 싶어서 오피스 가를 오며 가며 자세히 봤다.
어떤 나이대의 어떤 성별의 사람은 어떻게 입는지 왜 그렇게 입을지 등등 개개인의 삶을 상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래서 정말 그 사람들이 갈 법한 곳에 가서 옷을 골라본다. 시장에 옷을 사러 온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판매하시는 분에게 인물에 대해 설명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그 인물이 돼서 혹은 그 인물의 가족이 돼서 쇼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입하는 의상을 구할 때 재밌는 부분이기도 하다.
시대가 요즘이 아니라면 자료조사를 하면서 사진자료를 많이 모은다. 50년대 한국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금조이야기>를 준비할 때는 그 시대 사진집을 꼼꼼히 봤다.
고증을 세밀하게 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슬픔이든 분노이든 환희이든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에서 그것을 읽고 함께 담긴 질감을 참고하는 것이다.
추후에 제작 단계에서 참고자료 속 그 질감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공을 많이 들인다.
그래야 그 시대의 슬픔이 혹은 절망이 관객에게도 닿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극장
극장에서 들어오는 빛이 혹은 모든 것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한두 가지 요소를 바꾸어 완성도를 높여줄 시동을 걸게 하기도 한다.
공연의 순간이 가깝더라도 마지막 영감의 열쇠가 떨어질 수도 있음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이전에 많은 과정을 거쳤으나 결론짓지 못했던 실마리가 극장에서 풀릴 수도 있고 몇 번을 봐도 발견하지 못했던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요소가
뒤늦게 라도 보일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극장에 와서는 현실적으로 바꾸거나 더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고 그간에 약속된 것이 더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할 수 있는 게 없는지 계속 스스로 질문한다.
리허설 순간에 붓을 놓지 못하고 좀 더 짙은 질감이 필요하지는 않은가 살펴보고 그 마지막 터치가 좀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해 줄 때,
그렇게 무사히 첫 공연이 올라가면 비로소 언제든지 시동을 걸려고 계속 움츠리고 있던 승모근의 긴장이 풀린다.
이제는 다소 추상적인 이 미술로 이루어진 언어가 공연에 스며들어 관객에게 가서 다채롭게 느껴질 차례다.
[사진: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