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인스타그램 팬계정이 8개인 건에 관하여

성다인

제259호

2024.08.08

공연 홍보 계정에 로그인한다.
게시물을 올린다.
어제는 공연에 대한 게시물을 올렸으니 오늘은 좀 더 일상과 가까워 보이는 짧은 영상을 올릴 순서다.
적당한 문구를 단다.
너무 길지 않고 조금 웃기거나 쿨해 보이는 문구로 하기로 한다. (어제는 진중한 문구였으니까.)
게시물을 링크한 스토리를 올리면서 창작진들을 모두 태그한다.
창작진들이 ‘스토리에 추가’를 눌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A FEW MOMENTS LATER-
게시물 인사이트를 누른다.
재생 수가 나쁘지 않다.
좋아요도 눌러주지 왜 다들 몰래 보냐 하고 생각한다.
혼자 조금 좋아한다.
이전에 반응이 좋았던 게시물을 한 번 더 눌러본다.
의외로 반응이 없었던 게시물의 인사이트도 다시 눌러본다.

직업이 호사가

저는 주로 공연기획자로 일하지만, 저의 일에는 대체로 홍보 업무가 동반됩니다. 제가 기획자로 함께 하는 작업들은 소규모 프로덕션인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기획, 행정, 홍보, 때로는 접근성 기획까지 제가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사실 이 업무들이 기획의 업무에 다 연결되어 있기도 하고요. 기획자로서의 저는 작품과 작품 밖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작품이 시작될 수 있게 하는 지점, 관객과 만날 수 있게 하는 지점, 작품을 일단락하는 지점에 저의 업무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제 일이 호사가1)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작비를 위해 제안서를 쓰고, 공연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거나 제안하고, 이 공연에 관객들이 오게 만드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인데, 아주 단선적으로 저의 업을 설명하자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창작자와 작품을 가리키며 “참 멋지지 않습니까? 아, 왜 멋지냐면…” 같은 말을 대상을 바꿔가며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요.

기획자 성다인의 인스타그램 프로필 화면을 검은 선으로 그린 일러스트. 상단 중앙에 gooddying이라는 아이디가 적혀있고 그 우측에 알람 버튼과 더 보기 버튼이 있다. 이름 아래 동그란 프로필 사진 영역에는 손으로 그린 강아지 그림이, 그 옆에는 게시물과 팔로워, 팔로잉 수를 알려주는 영역이 있는데, 구체적인 숫자가 적히는 부분을 점으로 그려넣었다. 그 아래 ‘함께 아는 연극인 친구 nnn명’이라는 문구에 노란색 하이라이트가 쳐져 있다. 그림의 가장 아래 팔로잉, 메시지 버튼이 있다.
그림 제공: 필자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이유는…

이 글을 써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받은 질문은 ‘왜 젊은 창작자들, 소규모의 창작자들이 인스타그램을 이용하게 되는지’였습니다.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니 젊고 소규모 창작자로서의 제가 인스타그램을 이용하게 된 이유는 (무책임한 이유이지만)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홍보가 사람이 모이는 광장에서 뭘 외치는 행위라고 한다면, 혜화역 2번 출구 계단 올라가기 전 전광판에서 외치는 건 돈이 많이 들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스타그램에서 외치는 것뿐입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는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들어줄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인데요. 그런 특성 안에서 소규모 창작자이기 때문에 유효한 홍보 방법들도 있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좋아하기

저에게는 연극 관련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 않지만 일 년에 연극을 삼백 편 가까이 보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의 관극 대부분은 이 친구의 추천으로부터 이뤄집니다. 제가 왜 이 친구의 추천에 속절없이 당하는지 생각해보면 제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추천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거 좋으니까 너도 잡숴봐” 류의 추천에 저는 매번 설득당해 버립니다.
왜 뜬금없이 친구 소개를 하냐면 제가 공연 홍보를 위해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면서 취하는 태도가 이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공연 홍보 계정이라 함은 왜인지 공식적인 느낌이 들어야 할 것 같지만 소규모 창작자로서 제가 택한 전략은 오히려 비공식적인 태도를 취하며 대놓고 좋아하기에 가깝습니다. ‘너도 잡숴봐…’ 를 마음에 품은 채로요.

동료이자 팬이 돼

최근에는 공연 별로 계정을 새로 만드는 팀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저도 공연 별로 계정을 새로 만드는 편인데 그 과정에서 인스타그램 계정이 작품의 맥락에 포함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최근에는 <박인선쇼>라는 작품에 참여하면서 박인선 팬계정을 표방하는 계정을 운영했는데요, <박인선쇼>의 창작진은 젊은 여성 탈꾼인 ‘박인선’이라는 실제 인물이자 캐릭터가 위치하고 있는 지점을 중요하게 여기며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박인선 팬계정은 그런 맥락에서 ‘박인선’을 끊임없이 외치며 영업하는 홍보 채널입니다.
<박인선쇼>처럼 대놓고 팬계정을 표방하지는 않지만 다른 공연 계정들도 사실 팬계정에 가깝습니다. 창작 과정에 함께 하다 보면 이 공연과 팀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 매번 다르게 생깁니다. 어떤 팀에서는 함께 공부하는 개념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마음이 갈 때도 있, 대부분의 경우에 창작진들이 각자의 전문성으로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좋아하고 때로는 그 팀이 가진 시끌벅적함 자체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들은 어느 정도 작품에도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저는 직업이 호사가이기 때문에 이 지점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욕망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제가 좋아하는 부분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 주기를 바라며, 그리고 공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인스타 계정에 게시글을 업로드합니다.

<박인선쇼>의 홍보 계정 프로필 화면을 캡처한 사진. 프로필 정보에는 공연 개요가 적혀 있고 그 아래 *공연 계정을 빙자한 팬계정*이라는 문구와 박인선의 계정, 국립극장 예매 사이트 링크가 연결되어 있다. ‘연습실 아카이브’라는 이름의 스토리 하이라이트가 있고 그 아래 피드에는 공연 시놉시스와 포스터, 공연 사진들이 게시되어 있다.

그러나 한줌단

연극계의 사람들은 특히나 연극 장르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줌단’이라는 표현을 좋게도 나쁘게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소규모 창작자들이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같은 SNS를 많이 이용하는 이유에는 이런 ‘계’의 특성에서 느껴지는 가까운 거리감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특정되고, 실제로 아는 사이인지 아닌지를 떠나 ‘아는 사람’을 겨냥한 말 걸기가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진짜로 아는 사람들에게만 말을 걸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작은 홍보들이 결국 입소문의 영역에서 이뤄진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전에 누가 저에게 소규모 창작자들의 좋은 공연을 보려면 어떻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요. 한참 고민하다가 좋은 공연을 많이 기획하는 PD님의 인스타그램 계정과 공연을 많이 보러 다니면서, 저와도 취향이 겹치는 어느 창작자님의 계정을 알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 계정들을 잘 보며 공연을 보고 또 취향에 따라 창작자들을 팔로우하다 보면 더 좋은 공연을 만날 수 있다고요. 오픈된 온라인 세상이지만 폐쇄적인 성격을 가진 홍보가 진행되는 것입니다. 관객들이 홍보에 노출되기 위해서는 관객 스스로 이 열리고 닫힌 공동체에 들어오는 방법밖에는 없을까요? 이 공동체와 외부를 연결하는 매개자가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무리하며

기획이나 홍보의 일은 좋아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전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첫 번째 팬이 될 수밖에 없는 역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홍보 담당자로서도 계속해서 제가 좋아하는 것을 크게 말하기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개의 팬 계정을 더 운영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부디 계속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일에 동참해줄 사람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성다인

성다인
주로 기획자와 접근성매니저로 일합니다. 월장석친구들, 공탁친구들과 함께 놀고 공부하며 살고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