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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는 이름의 믿음

상상만발극장 <믿음의 기원2: 후쿠시마의 바람>

김나볏_공연칼럼니스트

제76호

2015.09.17

과학이라는 이름의 믿음

상상만발극장 <믿음의 기원2: 후쿠시마의 바람><믿음의 기원 1>, 2013

우리는 믿음으로 세계를 구성한다. 가장 믿을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수집해 추론을 하고 이를 토대로 각자의 세계관을 구축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때때로 언제, 어디에나 통용되는 절대 진리, 믿음의 기원이라 불릴 만한 것들을 찾아 나서곤 한다. 하지만 이내 실패한다. 모든 존재가 삶의 기반으로 삼을 만한 믿음이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믿음의 기원으로 삼을 만한 것이 발견된다 해도 세상의 수많은 오류들과 뒤섞이며 결국 진리가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을 구석은 필요하다. 세상에 대한 모든 해석과 이해, 대응은 모종의 믿음을 기반으로 삼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믿음을 구축해나가는데, 아마도 믿음의 종류 혹은 수는 세상에 존재하는 개체의 수와도 같을 것이다.

상상만발극장은 세상을 구성하는 이 ‘믿음’이란 것에 대해 수년간 탐구해온 연극단체다. 창단 초기에는 <코펜하겐>, <직소>, <아이에게 말하세요> 등을 통해 세계와 그 세계를 구성하는 믿음에 대해 언급하는 기존 희곡 혹은 텍스트로 연극을 만들어왔다. 지난 2011년부터는 아예 ‘믿음’이라는 키워드로 세계를 바라보는 창작 연작 시리즈를 진행해오고 있는데 오는 10월 초연하는 <믿음의 기원2: 후쿠시마의 바람>은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상상만발극장 <믿음의 기원2: 후쿠시마의 바람><믿음의 기원 1>, 2013

믿음은 과연 믿을 만한가

<믿음의 기원> 연작은 연출가 박해성이 창작한 대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잘 짜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일종의 연출대본과 같은 역할을 하는 텍스트가 공연의 밑 재료로 쓰인다. 공연 준비 초반에 찾은 연습실에서는 배우와 스태프들 사이에서 작품을 현실화하기 위한 기나긴 토론이 이어졌다. 이야기의 흐름이 아닌 구조의 윤곽을 드러내는 게 목표인 이 대본이 마치 매직아이처럼 떠오르는 순간을 이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부제에서 언급됐듯 이 작품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전 반대 메시지를 던진다거나 하려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극 중 직접 언급되지도 않는다. 다만 이 사고는 ‘과학이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믿음이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기 위한 일종의 계기로서 기능한다. 즉, 어떤 특정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게 아니라 극 중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각기 다른 세계관들의 충돌 혹은 만남을 뚜렷이 보여주는 게 이 극의 포인트다.

작품은 정체 모를 소녀와 과묵한 청년의 대화로 시작된다. 바닷가 놀이기구에 대해 이야기하던 둘은 그 놀이기구를 타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한 편에는 모종의 사고처리를 자임하고 시설로 투입된 기술자를 취재하려는 여자가 등장한다. 또 다른 편에는 우연히 만난 청년과 함께 바다를 응시하며 선문답을 나누는 남자가 있다. 여기에 아픈 과거를 공유하고 있지만 이별을 앞두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도 소개된다. 이 모든 이야기와 대화 사이사이에 어느 철학자의 수상소감 연설이 겹쳐진다.

각 인물 간 대화는 조각조각 흩어진 채 무대에서 떠돈다. 각 2명씩 짝지어져 이뤄지는 4가지 대화는 4명의 배우를 통해 교차돼 시연된다. 각각의 인물들이 어떤 구체적인 전사(前史)를 가지고 서로를 만나게 됐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저 뚜렷하게 감지되는 것은 각기 다른 입장들, 세계관들이다. 언제, 어디인지도 모를 nowhere의 시공간, 다양한 세계관이 부유하는 시공간에 관객들은 초대된다.

상상만발극장 <믿음의 기원2: 후쿠시마의 바람><믿음의 기원 1>, 2013

체험을 위한 극장

관객들은 이 세계관들의 충돌에 대한 목격자로서 객석에 앉게 된다. 특이한 것은 객석의 배치가 한 방향으로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고로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관극 체험을 하게 된다. 어느 자리에 앉더라도 전체를 볼 수는 없다. 또 배우들이 때때로 관객 옆자리에 앉기도 해 특정 관객에게 특정 배우들의 목소리나 움직임이 더 크게 감지되는 상황도 종종 벌어진다. 누군가가 목격하고 들은 것을 또 다른 누군가는 미처 감지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는 구조 속에서 관객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이 절대적인 진리 혹은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애매모호한 감각 공간에서 오로지 관객을 상대로 이야기 하는 철학자 역의 한 배우는 이 극을 이해하는 데 최소한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일본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를 표방해 만들어진 이 캐릭터는 과학의 실패를 기록의 대상이 아닌 사유의 대상으로 삼으며 관극의 단초를 제시한다. 결국 상상만발극장이 이 공연을 통해 의도하는 바는 관객이 시각과 청각이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갖는 이 공간에 머무는 동안 관찰로부터 비롯되는 과학은 과연 믿을만 한 것인가에 대해 감각적으로 사유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관객은 공연 안에서 과학이라는 믿음의 근간 혹은 기원이 흔들린 중대한 사건을 마주하게 되고, 이 근간을 잃어버린 우리는 앞으로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사유하도록 이끄는 계기로서 작동한다.

[사진: 상상만발극장 제공]

상상만발극장 <믿음의 기원2: 후쿠시마의 바람> 포스터

일시
10월 2일~10월 5일, 평일 8시, 토 3시 8시, 일 3시 7시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작·연출
박해성
출연
선명균, 신안진, 주혜원, 김훈만, 옥자연
문의
02-3668-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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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nabye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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