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나, 연극인을 누가 대표하는가?

대학로X포럼 <연극현장의 대의구조와 예술지원기관의 문제>

김기일_연출가

제147호

2018.09.06

지난 6월 22일, (사)한국연극협회의 주최로 대전에서 열린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한 젊은 연극팀의 공연이 경선 심사에서 배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강원연극협회 속초지부 소속 극단 소울씨어터의 <만주전선> 공연은, 당시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이었던 정대경 이사장의 개인 연락을 통해 공연 일주일전 심사 배제를 통보받았고, 이후 <만주전선> 팀은 협회의 사과를 요구하며 대응하였다. 해당 사건이 진행되며 같은 문제가 앞선 연극제에서도 발생했다는 것 외에, 협회의 운영이 파행에 가깝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 지원금 운용이 불투명하고 2년째 정산이 되지 않은 사업들이 있다는 점 등이 밝혀지며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져갔다. 현재 사태는 진행 중이며, 해당 팀에 대한 협회의 공식적 사과 및 보상은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연극협회를 둘러싼 여러 의혹과 함께, 과연 한국연극협회를 비롯한 연극계의 다양한 ‘협회’들이 현장 연극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지, 또한 예술지원기관은 현장의 목소리를 어떤 대의구조를 통해 수용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연극계 대표성’에 대한 대안을 토론하기 위한 공론화 자리가 지난 8월 27일 월요일, 제7차 대학로X포럼 토론회 <연극현장의 대의구조와 예술지원기관의 문제>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다섯 시간 가까이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현장 연극인 및 예술지원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존 협회 및 협회 체제에 대한 날선 비판과 함께 대안 마련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회는 발의자인 필자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필자는 <만주전선> 비대위 활동을 통해 갖게 된 문제의식을 이야기하며, 현재의 한국연극협회는 협회원의 목소리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며, 비협회원의 대표성 또한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술지원기관과의 소통에 있어서 대표임을 자임하며, 연극계 어떤 사안에 대해 제대로 발언도, 대응도 하지 못하는 현재의 협회에 대해 ‘누군가 나의 대표성을 도용하고 있다’라고 비판하며 연극 현장의 목소리가 왜곡되지 않게 외부 및 기관으로 전달되는 방법을 연극인들이 모색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뒤이어 윤한솔 연출은, 협회에 소속된 협회원으로서 한국연극협회 및 서울연극협회에 갖는 문제의식을 발언하였다. 해당 협회가 블랙리스트 사태 및 연극계 성폭력 이슈에 대해 보인 미온적 태도를 지적하며, ‘협회’라는 이름이 연극계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왜곡 및 착시현상을 지적하였다.

뒤이어 김미도 평론가와 이진아 평론가의 5분 발언이 이어졌다. 먼저 김미도 평론가는 ‘대한민국연극제’의 명칭 변경이 1977년 관제 연극제로 시작된 이전의 ‘대한민국연극제’의 역사적 맥락 및 전 정권의 화이트리스트적 사업 성격과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며, ‘서울연극제’와 함께 ‘대한민국연극제’가 그들만의 축제에 머무르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뒤이어 이진아 평론가는 현재 한국연극협회가 소속되어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및 그 전신인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문총)’의 역사를 살피며, 두 단체 모두 남북분단 및 군사정변을 통해 ‘관 주도’로 설립된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현재의 ‘한국연극협회’가 그러한 관 주도적 성격에서 변화하였는지, 지금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단체인지 질문을 던졌다.

협회 소속 연극인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한국연극협회 강원도지회 춘천지부 소속 프리랜서 정은경, 변유정 연극인은 대독을 통해 자신들의 협회원으로서의 연극 경험을 밝혔다. 협회가 ‘대의’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협회 소속의 극단, 개인을 제대로 ‘대의’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며, 협회의 불투명하고 비합리적인 운영 방식을 지적하였다. 특히 협회원이 지회와 본회에 이중으로 회비를 납입하고, 심지어 현재 고인이 된 협회원도 회비를 내는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실소와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어 협회, 대표자, 대표기관, 문화지원기관이 ‘대표성’을 갖고 ‘기본과 책임감’을 다 해줄 것을 촉구하며 대독은 마무리되었다.

협회 소속 강원연극인의 발언에 이어 근래 연극제에서 피해를 입은 두 젊은 연출가의 발언이 이어졌다. 지난 7월, 거창국제연극제 경연 취소 사태의 당사자인 극단 불의전차의 변영진 연출은 해당 사태에서 겪은 젊은 연극인으로서의 소회를 밝혔다.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연극제에 참가하는 젊은 창작자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현장에 침묵이 흘렀다. 뒤이어 변영진 연출은 젊은 연극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극제를 비롯한 사업들의 구조가 바뀌어야 하며, 더 이상 젊은 창작자의 예술노동을 착취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해당 토론회의 시발점이 된 <만주전선> 사태의 당사자인 최귀웅 연출은 해당 사태를 겪으며 느낀 한국연극협회의 태도에 대해 발언하였다. 한국연극협회뿐만 아니라 협회 주도의 사업이 비공개적이고, 자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체감에 대해 이야기하며, 문제가 발생할 경우 ‘좋게좋게, 연극인끼리’ 등의 태도로 암묵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침묵하는 협회 관계자들의 태도를 지적하였다.

2부의 시작은 김소연 평론가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김소연 평론가는 발제를 통해 예술위(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베스트 앤 퍼스트’ 연출 선정 문제를 들며 여전히 연극계가 블랙리스트 사태 속에 놓여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현재 예술위가 현장과 맺고 있는 파트너쉽이 각종 협회에 사업을 배분하는 것에 불과한 점을 지적하며, 예술위의 독립적인 민간위원회 위상을 절차와 과장의 공공성 회복을 통해 회복할 것을 제언하였다.

뒤이어 이어진 5분 발언을 통해 이소연 작가는, 예술위, 한국극작가협회, 한국연극연출과협회 공동주최의 2018 <봄 작가 겨울 무대> 연출 선정과정에서의 문제를 밝히며, 해당 연출 선정이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진행되었고, 연출을 협회원으로 한정 짓고 지원공고 또한 비공개에 가깝게 이루어지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작가와 연출가 모두에게 ‘다분히 편협한 조건’에서 선정기회가 주어지는 실태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을 촉구하였다.

이어진 자유토론에선 앞으로 연극 현장이 어떻게 예술지원기관과 만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예술위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이어진 토론에서는 해당 기관들도 지금까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연극인들이 함께 고민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또한 현재 서울연극협회의 협회장이 예술위원을 겸임하는 형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한국연극협회를 비롯한 ‘협회 구조’에 대한 근본적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추후 연극인과 기관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청회 및 토론회를 개최하자는 결론으로 토론회는 마무리되었다. ‘연극계 대표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첫 토론회이니만큼, 구체적인 대안 모색보다는 기존 체제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가 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해당 토론회에서 모두가 공유한 것은, 현재의 체제가 현장 연극인들을 더 이상 ‘대표’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재의 연극 현장에서 앞으로 어떻게 ‘나의 목소리’, ‘현장의 목소리’를 대의하고 대표할 방법을 찾아낼 것인지, 실질적인 모색과 구체화 단계가 앞으로 현장 연극인과 기관의 협력을 통해 반드시 이어져야 함을 확인하며 ‘연극계 대표성’을 이야기하는 현장의 첫 토론회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사진: 필자 제공]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김기일

김기일 연출가
엘리펀트룸. 주로 연출. 혜화동1번지 7기 동인 및 극장장. 2015년 연출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주로 젊은 창작자들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을 오가거나, 기획해가며 작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연극과 극장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