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연극] 워크숍 I 무대의 확장 - 공연예술의 새로운 기술사용
삼일로창고극장 2019 랩(LAB) 1차 ‘독일예술가 초청워크숍’
채민
제158호
2019.04.25
본 원고는 2019년 4월 16일과 17일,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열렸던 워크숍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연극’을 기록한 것이다. 워크숍은 두 종류로 진행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무대의 확장 - 공연예술의 새로운 기술사용’을, 워크숍 Ⅱ는 ‘무대의 게임화’를 주제로 하여 같은 시간에 진행되었다. 프로듀서, 연출, 드라마투르그, 작가, 게임프로그래머, 사운드 작가 등을 대상으로 한 본 워크숍은 오픈 하자마자 관심이 폭주하여, 조기에 신청 마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이 시간이 던진 질문, ‘무한한 미지의 가능성을 열어 줄 듯한 빠른 기술의 발전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지금. 현대 연극은 어떻게 자리를 잡을 것인가’에 대한 뜨거운 공감이자 무수한 답변의 요구일 것이다.
워크숍 I은 공연장에서 진행되었다. 첫 번째 강연자는 뮌헨 캄머슈필레 극장 소속의 드라마터그 ‘마틴 발데스-슈타우버(Martin Valdes-Stauber)’였다. 그는 목소리와 제스처가 큰 활달한 사람이었다. 네 시간 동안 이어지는 워크숍에 지쳐 점점 벽에 기대어 말하는 시간이 길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참가자들은 그의 에너지를 느끼며 간단한 자기소개와 워크숍에 지원한 이유에 관해 이야기 했다. 극장에는 작가, 연출가, 무대미술가, 조명 및 사운드 디자이너, 드라마터그 등 다양한 포지션의 창작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워크숍이 어떻게 참가자들의 기대와 만나고, 혹은 빗겨 갔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간략하게 참가자들의 지원 동기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기술로 인한 무대의 확장 가능성, 현대 연극 미학 탐구, 현대 연극에서 관객의 위치, 장애인의 문화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기술의 활용, 소규모 프로덕션에서 적은 자본으로 구현 가능한 기술 등이 그것이었다. 누군가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누군가는 과연 관객이 기술을 원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그저 첨단 기술을 활용한 세계의 연극 사례가 알고 싶다고 했는데, 한국에서 연극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틴은 세 가지 질문을 제시하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자신이 참여한 프로젝트인 ‘리미니 프로토콜’의 <언캐니 벨리(Uncanny Valley)>(2018)를 소개했다. 그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연극에서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기술을 사용하는가?
2. 연극에서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주제와 이슈가 제기되는가?
3. 연극에서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어떠한 연극적 언어가 생겨나는가?
마틴은 세 가지 질문을 제시하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자신이 참여한 프로젝트인 ‘리미니 프로토콜’의 <언캐니 벨리(Uncanny Valley)>(2018)를 소개했다. 그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연극에서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기술을 사용하는가?
2. 연극에서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주제와 이슈가 제기되는가?
3. 연극에서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어떠한 연극적 언어가 생겨나는가?
‘언캐니 벨리’는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森 政弘, Mori Masahiro)가 소개한 개념이다. ‘Uncanny’의 개념은 에른스트 옌치(Ernst Jentsch)의 1906년 논문 “On the Psychology of the Uncanny”에서 먼저 등장했다. 모리의 이론에 따르면 로봇이 사람의 모습과 점점 흡사해질수록 인간이 로봇에 대해 느끼는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정도에 도달하게 되면 갑자기 강한 거부감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로봇의 외모와 행동이 인간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면 호감도는 다시 증가하여 인간이 인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수준까지 접근하게 된다. 2018년 10월, 뮌헨 캄머슈필레에서 초연된 <언캐니 벨리>는 바로 이 지점을 서성이며 관객을 대상으로 실험을 감행한다.
렉처를 위한 스크린이 걸려 있는 블랙박스 극장에 로봇이 하나 앉아있다.(놓여있다.) 독일의 저명한 작가 ‘토마스 멜레(Thomas Melle)’의 외형을 그대로 복제한 로봇은 연기를 시작한다.(작동하기 시작한다.) 강연자 마틴은 공연의 내용에 대한 소개를 하기도 전에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먼저 보여준다. 우리는 관객의 박수를 받고 있는 로봇의 모습을 보았다. 박수를 치고 있는 관객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프로그래밍 된, 그러니까 환호하는 관객의 반응을 차분하게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로봇이 나는 불편했다. 몰입한 관객들과 (마지막 장면만 본) 그렇지 못한 나. 리미니 프로토콜은 연극으로 관객의 ‘언캐니 밸리’를 이동시킨 것이다.
토마스 멜레는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 양극단으로 치닫는 신체와 정신을 그는 문학을 통해 통제해왔다. 그는 그의 반복되는 일상 중 ‘강의’를 위한 로봇을 제작한다. 자신과 다르게 완벽하게 통제가 가능한 로봇. 그것을 통해 강의를 시작한다. 토마스 멜레의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그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모호한 경계를 건너 로봇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로봇은 묻는다. 이곳에 왜 왔느냐고. 내 몸을 보며, 사람을 연기하는 로봇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왔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에 관해 묻는다. 튜링테스트의 이미지와 문자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어려움을 느끼고 새로 고침을 여러 번 누르는 편이다.) 연극이 끝나면 블랙박스는 화이트 박스로 바뀌고, 관객은 로봇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언캐니 벨리>가 일으킨 질문을 상기한다.
마틴은 드라마터그로서 연출가와 함께 기술이 이제까지 무대 위에서 어떤 식으로 존재해 왔는지 살펴보았고, 그 결과 가장 급진적인 실험을 해보기로 한다. 연극에서 배우를 배제하고 로봇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관객이 공연 중에 소리를 지르더라도 로봇은 대사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한 알고리즘은 관객이다. 유일한 변수인 관객은 로봇에게 동화되어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는 이 작품이 일종의 인형극 같다고 이야기했다. 디지털 시대의 인형극. 기술은 복잡하지만 결국 블랙박스 무대 위에 올라간 인형이라는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그는 이것이 관객을 관찰하는 리서치와 같은 공연이라고 말했다.
- Q.
- 관객이 달라진다는 말이 애매하다. 연극의 최소단위는 배우와 관객인데, 배우가 없어지면 그것을 연극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다른 매체와 무엇이 다른가? 예를 들어 영화도 완벽하게 통제되어 관객 말고는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 않나? 이 작품을 어떤 맥락에서 연극으로 바라볼 수 있나?
- A.
- 우리가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것이다. 비주얼 아트와 퍼포밍 아트의 사이, 필름과 퍼포밍 아트의 사이. 우리는 오히려 그것들의 경계를 흐리고 싶었다. <언캐니 벨리>는 무대, 셋업과 같이 연극의 형태를 띠고 있고, 전통적인 프로시니엄 구조와 첨단 기술이 만나 효과가 극대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연극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오직 ‘연극이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지속적으로 연극의 경계와 인식을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워크숍을 마무리했다.
1. 무대는 항상 발전된 기술을 받아들여 왔다. 그것에서 표현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2. 역사적으로 기술은 무대를 다양한 의미와 공간으로 확장해 왔다.
3. 맥락에 따라 기술은 주제로서 혹은 상징으로서 새로운 질문을 제기해왔다.
4. 디지털 시대의 기술은 장르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이로써 동시대 연극에 대한 질문을 확장한다.
1. 무대는 항상 발전된 기술을 받아들여 왔다. 그것에서 표현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2. 역사적으로 기술은 무대를 다양한 의미와 공간으로 확장해 왔다.
3. 맥락에 따라 기술은 주제로서 혹은 상징으로서 새로운 질문을 제기해왔다.
4. 디지털 시대의 기술은 장르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이로써 동시대 연극에 대한 질문을 확장한다.

두 번째 강연자는 샤우슈필 도르트문트 극단(Schauspiel Dortmund)의 총감독이자 연출가인 카이 포게스(Kay Voges)였다. 그는 연극이 현재형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관객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 연극은 ‘지금 이 순간’에 벌어지고 사라진다. 따라서 연극은 과거가 아닌 우리의 현재를 다루어야 한다. ‘현재의 이슈를 지금의 관객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연극의 역할이다. 더하여 작품이 창작자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혹은 의미가 있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관계를 드러내지 못한 작품은 관객에게도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현대의 이슈를 난민 문제, 세계화, 디지털화로 꼽았다. 그리고 21세기의 연극을 앞서 말한 이슈들에 대한 리서치의 결과로서 바라보았다.
카이 포게스가 이끄는 샤우슈필 도르트문트 극단은 시의 산하에 있으며, 1년에 12~16편의 작품을 올린다. 극단에는 16명의 배우가 소속되어 있으며, 한 해 5만 명 정도의 관객이 극장을 찾는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현존하는 첨단의 기술을 이용하여 무대를 연출해왔다. 예를 들어, 프로그래머들과 협업을 통해 음악이나 신체의 변화를 데이터로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분석된 데이터를 비주얼 아트, 조명, 음향 등의 파트로 전달하여 무대 위에서 매번 재조합한다. 이와 같은 연출은 새로운 형식의 현장성을 제시한다 - /<4.48 Psychosis (4:48 사이코시스)>/. 뿐만 아니라 공연의 라이브를 전송하는 기술을 활용하여 두 개의 극장을 연결지어 무대와 객석을 확장했다 - .
그는 현대사회가 이미지의 시대이며, 극장은 이미지를 읽는 법을 배우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연극을 통해 이미지와 영상의 신(scene)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무대 위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영화와 비견될 만한 수준 높은 영상이 상영되지만, 그 아래에 배우들은 영상을 연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관객 앞에 촬영과 특수효과, 보정 등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환상을 걷어내고자 했다. 이것은 거리두기의 또 다른 방식처럼 느껴졌다 - . 혹은 반대로 극에 몰입을 돕기 위해 근접 촬영한 영상을 사용하기도 한다. 다각도로 관극이 가능한 무대를 설계하고, 관객 각자가 보기로 선택한 장면을 존중하며 주요 장면을 스크린에 영사한다 - /. 기술을 통하여 순수 예술과 연극의 접점을 만들고자 한 섬세한 작품도 있었다 - .
그의 작품은 보통 2개월 이상의 리서치와 5~6주가량의 리허설 기간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가능한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소개한 작품들은 모두 대형 공연이었다. 제작비는 예상대로 상당한 수준이었다. 리미니 프로토콜의 <언캐니 벨리> 또한 세트의 규모와 관계없이 로봇 배우의 등장을 위한 긴 리서치 기간과 많은 비용이 들었다. 자본의 규모가 큰 공연이었다. (7개의 단체가 협업했으며 각자 상당한 금액의 제작비를 부담했다고 한다.)
- Q.
- 강연자가 제시한 대로 한 명의 엔지니어가 오퍼레이션을 도맡는다면 효율성은 높아지겠지만 사고의 위험이 커지지 않나? 한 명에게 일이 몰려도 문제 아닌가? 각자 고유한 영역이 존재하는데 그걸 침범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이런 식이라면 엔지니어들의 사양화가 진행되며 생태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은 해봤나?
- A.
- 독일에서는 극장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이 새로 등장하는 기술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다. 디지털 시대에는 끊임없이 학습해야 한다. 모든 파트의 문제점이다. 그래서 재교육을 할 수 있는 아카데미가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는 연출, 배우,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테크니션, 엔지니어가 서로 존중하며 거리를 좁혀야 한다. 이 시대에는 다양한 파트와의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
카이 포거스는 그의 고민을 반영하여 설립한 아카데미와 그의 청사진을 공유하며 워크숍을 마무리했다. ‘AKADEMIE FUR THEATER UND DIGITALITAT(연극과 디지털을 위한 아카데미)’는 도르트문트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은 지원자를 모집 중이다.(4월 28일 마감) 3년 이내에 규모 있는 아카데미 건물이 완공될 예정이다. 홈페이지 주소는 다음과 같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 https://theater.digital/
*워크숍 Ⅱ 무대의 게임화는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 연극in 편집부
[사진제공: 주한독일문화원 ⓒ 주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