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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바람, 내일의 상식

KTS 워킹그룹 - 표준규약집 만들기 일곱 번째 모임

김지연

제176호

2020.02.20

KTS1) 워킹그룹의 모임은 2019년에 시작되었다.
2018년 미투운동으로 성폭력과 위계폭력 문제가 제기된 이후 그것들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관례'라는 상식이 통용되는 작업 현장 전반에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들이 모였다. 안전한 작업 환경을 위한 규약 만들기는 작업 현장에서 통용되길 바라는 '새로운 상식'을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2019년 2월, 로라 피셔(Laura T. Fisher)와 함께 한 CTS2) 워크숍을 시작으로 한국 실정에 맞는 규약 논의를 위한 그룹이 5월에 꾸려졌다. 이후 격주로 자료를 수집해 공유하고 토론하는 모임이 이어졌다. 성폭력과 위계폭력을 시작으로 '안전'이라는 개념을 확장하여, 작업 전반에 걸쳐 공유하고 합의해야 하는 문제들을 함께 다루었다. 12월부터 매주 금요일에 모여 구체적인 규약(문구)을 만들기 위해 주제별 토론을 하고 있다. 2월 7일, 워킹그룹의 열아홉 번째 모임이자 규약 만들기 일곱 번째 모임에서 논의할 내용은 '리허설 중에 지켜야 할 규약'이었다.
모임은 언제나 그날의 컨디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어떤지,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일들이 있었는지, 최근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등을 말한다. 그러다 보면 오랜만에 참석한 사람도, 처음 모임에 참석한 사람도 비슷한 온도로 데워진다. 예정된 주제와 다른 새로운 논제가 던져지기도 한다. 필요하다면 과감히 그날의 주제를 내려놓고 던져진 주제로 논의를 시작한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나눴으면 좋겠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슈가 던져졌다.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이때, 사람이 모여야 일이 시작되고 진행되는 '우리의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안전한 작업을 지향하면서 이런 상황에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된다는 것이다. 생계가 달려있어 전면 중단할 수도 없고, 강행하자니 지향과 반대되는 것 같고, 조심스럽게 진행해 보지만 안전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지방의 문예회관 등의 공공극장들은 폐쇄되었고,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극단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소식도 들렸다. 공연과 축제가 줄줄이 취소되었던 메르스 사태를 떠올리기도 했다. 혼란과 걱정을 나누다가 우리는 하나의 질문에 도착했다.
“안전을 확보하면서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어떤 제안을 할 수 있을까?”
공간(연습실, 공연장)의 소독 정보 공유, 필요 물품(마스크, 손 소독제 등) 비치와 사용 의무화, 감염 경로 확인을 위한 비상 연락망 가동 등의 제안이 나왔다. 최대한 명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수칙을 제안하는 것이 불안을 줄이고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논의는 예정되었던 ‘리허설 중에 지켜야 할 규약’(공연장 편)으로 이어졌다. 논의한 내용 중 일부를 전해보려 한다. 전체 공간 인식을 위한 ‘극장(공연장) 안전 투어’와 좁은 공간을 공유하게 되는 ‘분장실’에 관한 내용이다.
공연장 안전 교육은 ‘공간 특성과 운영체계를 이해하고 위험 요소를 확인하는,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라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하지만 셋업과 리허설을 진행하기에도 빠듯한 상황에서 이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래서 영상 교육으로 대체하기도 하는데, 이것으로 실질적인 안전교육이 이뤄진다고 할 수 있는가에 긍정적인 답을 할 수는 없었다. 내용을 숙지하지 않거나 대리 이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한 현실을 감안하고, 안전교육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제안을 할 수 있을까?”
안전에 대한 인식 공유, 셋업과 리허설 진행 일정 공유, 타임 테이블 내에 ‘전체 안전 투어’ 시간 확보, 안전 담당자(팀 내에서 지정)를 통해 변경 사항 업데이트 및 공유 등의 제안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안전에 투자하는 시간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과 부족한 시간 내에 진행하기 위한 구성원들의 협조와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
분장실은 출연자 각자가 공연을 준비하는 개별 공간이면서 모두가 공유하는 공간이다. 공유 공간과 개별 공간이 따로 확보되면 좋겠지만 그런 공연장은 많지 않다. 소극장의 경우 하나의 공간을 사용하게 되는데, 공연 전 필요로 하는 컨디션이 각자 다르니(이것은 가치의 문제가 아닌 다름의 문제이다) 크고 작은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스텝들 역시 휴식과 대기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지만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각자의 필요를 이야기하다 보니 너무나도 좁은 분장실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래도 질문해 본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간에서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까?”
대안이 될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살피고, 각자의 필요를 이해하고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오갔다. 공간을 마련할 수 없다면 휴식시간을 휴식시간으로 확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 KTS 워킹그룹의 논의는 미완의 진행형이다. 작업 도중 발생하는 문제를 공유하고, 가능한 제안을 찾아 한 걸음씩 딛는 과정에 있고, 적용 집단에 따라 수정 보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모임 구성원도 원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페이스북과 이메일을 통해 의견을 더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의 생각이 모여 만드는 오늘의 제안이, 수정을 거쳐 함께 지키는 내일의 상식이 되길 기대해 본다.
  1. KTS(가칭, Korea Theatre Standard): 현재 작업 중인 한국공연예술 자치규약은 보편적 인권의 개념을 바탕으로 따돌림과 차별, 성희롱 성폭력 없는 성적으로 평등하고 안전한 공연창작 환경 조성을 위해 극단, 극장, 창작자, 예술행정가, 공연예술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가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창작 과정, 나아가 예술교육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 중인 자율적 규약이다.
  2. CTS(Chicago Theatre Standard): 시카고 씨어터 스탠다드. 로라 피셔와 시카고에 있는 극단 대표, 예술가, 행정가들이 2년간 자신의 시간, 경험, 전문성을 자발적으로 보태 저술했다. 의사소통, 안전, 존중, 의무를 주요 원칙으로 프리 프로덕션부터 오디션, 연습, 공연 종료 시점까지의 공연 제작 환경에서 일어날 만한 모든 상황에 대한 대처, 예방책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예술계 내 자치규약이다.
<워킹그룹 참여안내>
페이스북:
https://facebook.com/koreatheatrestandards
메일:
KTSwg2019@gmail.com
매주 금요일 10시 30분~2시, 대학로 예술극장 리딩룸(변경될 경우 따로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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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김지연
크리에이터스 4者.
창작자로의 고민을 하며 부유하고 있는 이다. saza-lion1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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