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칼칼했다. 어제 미세먼지 지수가 최악이었으니 목이 아팠나 싶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코로나 증상’을 검색했다. 발열과 인후통. 열이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인후통이라는 글귀는 찜찜했다. 만약에라도 확진자로 판명 났을 때 내 동선 밑으로 달릴 수많은 댓글이 이미 읽히는 듯했다. 뒤숭숭한 와중에 울리는 명랑한 카톡 알람은 나를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김은빈 고객님 관람일이 바로 내일이에요!’

그 공연은 코로나의 기세에도 취소 결정이 나지 않은, 몇 안 되는 공연인데다 내가 너무나 기대하던 작품이기도 했다. 고민에 빠졌다. 가야 할지 쉬어야 할지. 마음은 이미 공연장에 가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확진 판정을 받게 된다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에 주게 될 피해가 무엇보다 걱정스러웠다. 결국엔 가지 않는 쪽을 택했고, SNS에 올라온 그 공연의 후기를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줄 서서 공연장 입장을 기다리던 내 일상은 마스크 구매를 위해 줄 서는 일상으로 대체 되었다. 관람을 못 해 아쉬웠지만 1월 동안은 잠시 쉰다 생각하고 보고픈 공연들을 다 2월로 미뤄 놓았다.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 같던 2월 중순, 간만에 방문한 공연장에서는 열화상 카메라가 관객들을 맞이했다. 처음엔 신기한 마음에 카메라 앞에서 장난도 치고 했지만, 안내원분이 관객들 한 명 한 명 열을 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브이한 손이 민망해져 왔다. 다행히 나는 정상체온이었고, 무사히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극장 측에서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관객들의 연락처도 수집했다. 체온 OK! 마스크 OK! 비상연락망 OK! 몇 관문을 거쳐 드디어 입장하는데, 공연 중에도 마스크를 꼭 써 달라는 안내를 들었다. 어셔의 안내 멘트까지 달라지게 한 이놈의 코로나가 정말 정말 미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혹시나 해서 쓴 저 연락처로 연락이 오지 않기를, 모두가 무사하기를 빌었다.

3월이 되자 상황은 더 심각해져 예매해 둔 공연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극단 측에서 보낸 문자와 전화를 몇 번 받으니 허탈했다. 앱을 켜서 취소된 공연 일정을 지우고 나니 이제껏 본 적 없는 허여멀건한 캘린더가 어색하게 나를 반겼다. 바로 전 달만 해도 빼곡한 공연 일정들로 단풍 같던 캘린더가 이젠 빙판이 됐다. 취소된 공연들과 더불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약속도 안 잡는 통에 물 빠진 캘린더에는 삼일절만 빨갛게 남아 빛났다.

처음 연극을 보던 때에는 어쩌다 한 번씩 관람하러 갔기 때문에 공연 하나하나가 설레고 특별했다. 몇 년쯤 지나자 거의 매일같이 공연을 보러 다니게 돼 관람 횟수 자체는 늘었지만 오히려 소중하다는 마음은 줄어들었었다. 지금은 연이은 공연 취소에 강제로 관극을 멈추게 되니 미칠 것 같다. 책장의 희곡을 꺼내 읽어도 성에 차지 않았다. 결국 책을 덮고 SNS에 접속했는데 연기됐던 공연이 재개한다는 소식이 떠 있었다! 괴성을 지르며 공연을 예매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수많은 공연들을 언제 보러 갈지 빈 곳을 찾아 테트리스처럼 일정을 짜 맞춰야 했는데, 지금은 빈 빙고판의 첫 동그라미를 그리는 듯했다. 그 하나가 새삼 특별하게 느껴졌다. 다시금 명랑한 관람일 D-1 안내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