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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포용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2020 기조강연

고주영_공연예술 독립 프로듀서

제177호

2020.03.26

“지금 사회에서는 ‘정상인’들이 장애인들을 포용, 관용하겠다고 하는데, 저희의 답은 ‘노(no)’입니다”
지난 2월 11일부터 16일까지 열린 국제적인 공연예술 플랫폼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2020(TPAM, Performing Arts Meeting in Yokohama) 공식 오프닝 다음날 아침, ‘지금, 공연예술의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에 나선 김만리 대표의 일갈은 ‘정상인’의 관점에서 장애인을 ‘정상인’의 세계에 ‘포용, 관용’하겠다는 언어가 일종의 시대요구인 양 생각하는 ‘정상인’의 착각을 향한 것이었다.

김만리 대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자본주의적 가치 생산과 소유를 목표로 하는 경제지상주의, ‘생산성’ 여부에 따라 생명에 우위, 존재의 필요성을 판단하는 우생주의, ‘우월’하지 않은, ‘정상적이지’ 않은 생명을 선별해 보이지 않도록 격리시키는 차별과 배타주의의 시대로 분석했다. 그리고 이런 시대에 기로에 선 예술이 할 일은 이런 주류의 가치관과는 다른 가치관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37년에 이르는 극단 타이헨의 활동과 지향을 소개했다.

김 대표는 1983년, 일본을 대표할 뿐 아니라 90년대부터 해외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중증장애인 극단 타이헨(, Theater Troup Taihen)을 창단해 37년째 이끌고 있는 중증 지체장애인 당사자이다. 이들의 무대에는 휠체어나 목발 등의 보장구가 등장하지 않으며, 중증의 신체적 장애가 있는 몸을 그대로 드러내는 레오타드 의상을 입고 언어에 기대지 않는 표현을 위해 대사 없이 이루어진다. 팔과 다리가 없는 선천성 사지절단 장애인의 몸, 누운 채 거동을 할 수 없는 장애인의 몸도 그대로 무대에서 표현의 매개가 되며, 관객들은 이들의 표현을 읽어내고자 ‘어쩌면 이상한’ 몸을 주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몸들의 움직임은 장애인 단체, 장애인 돌봄 노동을 하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일반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눈에는 단 한 번도 목격된 적이 없다. 김만리 씨는 그 이유를 “이러한 움직임이 ‘정상인’이 인정하는 가치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조강연_극단 타이헨 김만리 대표 ⓒHideto Maezawa, TPAM 2020
장애인 자립을 위한 예술활동
김 대표는 장애인 당사자로서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극단의 방향성이나 작업에 담는다고 말한다. 일곱 살 때부터 열일곱 살 때까지 장애인 집단거주시설에서 살다가 탈시설하여 장애인해방운동에 뛰어들었고, 그 후 타이헨을 창단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 관객을 주 타깃으로 하는 타이헨의 작품들은 장애인들의 탈시설과 자립생활, 주체성 확보에 대한 필요성을 주지시키기 위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김만리 대표는 중증장애인 시설을 돌며 연극 작업에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은 일화를 이야기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퇴장을 거부하는 배우가 있었어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시설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평생을 시설에서 보내는 중증장애인에게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몸으로 이를 표현하고 관객을 만나는 시간은 세계를 다시 만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장애인)시설에서 사회로 나오는 것 자체가 예술이며, 시설에서 ‘기어 나오는’ 데서 예술은 시작된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2016년 7월 26일, 요코하마와 같은 가나가와현에 있는 사가미하라시에 소재한 중증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츠쿠이 야마유리원’에서 입소자 19명이 흉기로 살해당하고 26명이 넘게 중상을 입는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해당 시설의 전(前) 직원이었던 20대 남성이었다. 범행 전에 그는 “장애인은 불행만 만들 뿐”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중의원 의장 앞으로 보냈으며, 또 시설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의사소통이 안 되는 중증 장애인은 (국익을 위해) 안락사 시켜야 한다”고 말하는1) 등, 철저한 우생사상과 장애인 혐오, 배제를 체화한 사람이었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 전체, 특히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장애인당사자들의 탈시설 운동을 사회적으로 환기했다. 김만리 대표 역시 기조 강연에서 여러차례 ‘야마유리원’ 사건을 언급하며, 모든 장애인들은 “내가 희생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샌드박스 벤토 ⓒHideto Maezawa, TPAM 2020
이번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의 메인 프로그램인 TPAM Direction에 오구라 유카코 디렉터의 선정으로 공연된 극단 타이헨의 최신작 <샌드박스 벤토>(, Sandbox Bento)는 이 사건으로 희생된 19명의 중증 지적장애인을 일본을 상징하는 도시락(벤토) 문화에 빗대어 만든 작품으로, 열아홉 가지의 반찬이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선택/비선택의 기로에 서고, 쉽게 버려지지만 그들은 쓰레기통에서 다시 ‘기어 나와’ 서로를 위한 만찬상에 오른다는 내용이었다.

“땅바닥과 가장 가까운 존재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고 장애인 주체로서 생각하며, 완성을 목표로 하되 살아가는 것 자체에 가치를 두는 예술”을 내걸고, 지금 사회의 우생사상에 도전하고 사회가 ‘장애인에게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가치관을 전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결기 어린 말로 김만리 대표는 강연을 마무리했다.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TPAM) 웹페이지 https://www.tpam.or.jp
  1. 지적장애인 집단살상 이후 시설에 남겨진 사람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2019.10.12., http://ildaro.com/8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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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영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내 얘기 좀 들어봐>를 포함한 플랜Q 프로젝트, 연극연습 프로젝트 등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연극과 연극 아닌 것, 극장과 극장 아닌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에 있고자 한다.
페이스북 @jooyoung.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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