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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그 유일한 희망에 대해

304낭독회

김태희_연극평론가

제178호

2020.04.16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던 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원 구조에 성공했다는 오보를 들으며 같이 있던 사람들과 ‘그러면 그렇지, 2014년인데 배가 침몰해도 금방 구조할 수 있는 시스템은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지’ 이런 종류의 대화를 나누었었다. 약간은 안도를 했던 것도 같고 또 한편으로는 국가와 시스템이 나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안정감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조금 전 그 사람들과 세월호가 침몰하는 광경을 언론을 통해 목격해야만 했다.
참사로부터 6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진상은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고 승객들의 대다수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이렇다 할 사과도 없었다. 우리가 여전히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개최되고 있는 304낭독회는,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모임 가운데 하나이다.
예순일곱번째 304낭독회 포스터
삼백사 번의 여정
304낭독회의 시작은 2014년 9월 2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촛불 집회가 열리던 광화문 광장에서, 작가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돌아오지 못하는 304명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낭독회를 기획했다. 뜻을 모은 작가들과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세월호에 대한 문장들을 함께 읽었고,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하나로 모았다. 그렇게 시작된 낭독회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마다 개최되어 2020년 3월까지 67번 개최되었고, 304회를 달성하는 2040년 1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사실 낭독회를 2040년까지 이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매달 낭독회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낭독회 장소와 낭독자 섭외에서부터 낭독 원고를 취합한 소책자 제작, 낭독회 홍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들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해결책은 간단했다. 304낭독회는 특정한 운영진이나 대표자 없이 그저 ‘자발적인 일꾼’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두 달씩 두 명의 담당 일꾼을 지원받아 행사를 진행하는데, 이를 위해 ‘일꾼 매뉴얼’도 만들어 두었다. 강요나 의무감은 결코 자발성을 이길 수 없다.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을 기억하는 것, 그 언어를 되찾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긴 여정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되어 주고 있다.
낭독회 운영이 일꾼들의 자유로운 참여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낭독하는 글들 역시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선정한다. 그것은 때로는 세월호 희생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야기들일 때도 있고, 때로는 참사 이후 우리의 일상과 사회를 다루는 글들도 있다. 또 시간이 흐르고 여러 가지 사회적 여건이 달라지면서 낭독회의 분위기나 참가자들의 마음이 달라진 지점도 있다. 이런 자연스러운 변화들이 앞으로의 여정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게 될지 지켜보는 일도 매우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어려움에 있어서 304낭독회도 예외는 아니다. 낭독회 진행에 필요한 비용은 후원 계좌를 통해 모금하고 있고 장소의 문제 역시 후원을 통해 해결하기도 한다. 2019년에는 연말 후원물품 바자회나 작가 애장품 기증 경매를 진행하기도 했다. 일꾼들은 2040년까지 낭독회가 무사히 순항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만, 자신의 언어를 나눠줄 더 많은 목소리들이 필요하다.
  • 쉰여섯 번째(2019.4.26) 제주 무명서점
  • 쉰여덟 번째(2019.5.25) 서울 레드북
서로의 언어가 만날 때
처음 이들은 어떻게 낭독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세월호에 대한 말들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누군가는 세월호를 정치적 프레임으로 재단하려 했고, 또 누군가는 사태를 덮으려는 데 급급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정작 희생자들에 대한 말을 잃어갔다. 최초의 낭독회는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말, 그 말을 지키려는 움직임이었다.
여기에 더해, 열 한 번 째 낭독회에 참여했던 문학평론가 이만영은 기억을 간직하는 도구로서 언어의 가치를 이야기 한 바 있다. 1993년 서해 페리호 사건으로 부모님을 잃은 그는, 낭독문에서 1993년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을 담담히 털어놓는 한편 2014년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그와 나란히 위치시킨다. 어린 소년에게도 1993년 갑작스럽게 닥친 사고는 불가사의한 것이었지만, 성인이 되고 난 뒤 마주한 세월호 참사 역시 다른 의미에서 불가사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누구 하나 사과하지 않았고 누구 하나 속 시원히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세월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유년 시절 기억을 경유하여 세월호에 도달한 그의 언어들은 묵직한 슬픔이 배어 있었고 그래서 더 강한 울림으로 우리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지적하고,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함을 역설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의 눈물은 메마를 것이고 우리의 감정은 소실될 테지만, 그들에 대한 기억만큼은 언어를 통해서 영원히 간직될 수 있”다고 했고 “언어를 통해 기억의 마모에 끝까지 저항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라고도 했다.1) 맞는 말이다. 언어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낭독이 더 의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기억을 담고 있는 언어를 나누는 것, 그것은 기억의 마모에 끝까지 저항할 수 있도록, 희망을 잃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는 일이 아닐까.
  • 쉰아홉 번째(2019.6.29) 전주 L의서재
  • 예순 번째(2019.7.27) 서울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304낭독회는 앞으로도 긴 여정을 남겨두고 있다. 언어가 기억의 소실로부터 얼마만큼 저항할 수 있을지, 그것이 어떻게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304낭독회의 긴 여정 한 자락에 살짝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난 3월 에 있었던 67번째 낭독회는 28일 토요일 오후 4시 16분에 온라인(유튜브)으로 진행되었다. (낭독 참여자_한연희, 천희란, 지지, 조정빈, 장류진, 임지은, 윤경희, 서정국, 김은지, 김보미, 숙희, 강혜빈, 강성은)
**304 낭독회 홈페이지(https://304recital.tumblr.com/)를 통해 낭독회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진제공 : 304낭독회]
  1. 이만영, 「두 가지 통증에 관한 이야기 - 1993년의 10월과 2014년의 4월」, 『열한번째 304낭독회, 멀리, 아주 멀리 있다고 해도 소책자』,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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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김태희
한국연극사를 공부하고 있고 연극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shykt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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