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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예술인들이 코로나를 견뎌내는 방법

[특집이슈] 코로나 시대의 일상 에세이 - 홍콩

박세준

제178호

2020.04.16

2003년 '사스(SARS)'로 인해 큰 곤란을 겪었던 홍콩은 철저한 개인 위생 관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현재 홍콩에서는 유럽이나 미국 같은 '대확산'이나 이로 인한 사회 시스템 붕괴는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1월 초부터 수많은 전시회와 공연은 물론이고 매년 개최되는 예술 관련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 또는 연기됐다. 더구나 이번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예술계에서는 오히려 '사스 때보다 더한 빙하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소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적막에 휩싸인 란콰이퐁 거리. 평소와는 다르게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다. (사진제공_필자)
'사스 악몽' 반복하지 않으려는 홍콩 정부
2003년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인 '사스(SARS)'의 대유행으로 큰 타격을 받았던 홍콩인들은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당시 참담했던 상황에 대한 플래시백을 느끼고 있다. 홍콩 정부는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자 1월 초 중국과의 체크포인트 대다수를 봉쇄했고, 감염 지역 국민 및 외국인 방문자에 대한 입국 금지를 실시했으며, 최근 유럽발 귀국자들에 의한 확진 사례가 늘자 강경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봄마다 다양한 예술행사를 개최해 오던 홍콩 예술계는 그야말로 '된서리'를 맞았다. 홍콩정부는 지난 1월부터 박물관, 도서관 및 모든 공연장의 문을 닫았다. 해마다 열리는 대형 예술행사인 홍콩 예술 페스티벌(Hong Kong Art Festival), 아트 바젤(Art Basel) 역시 취소됐으며, 3월 말로 예정돼 있던 홍콩 국제 영화제(Hong Kong International Film Festival)는 8월 말로 연기됐다. 또한 지난 3월 말 홍콩의 대표적 유흥가인 란콰이퐁(蘭桂坊)에서 공연을 하던 라이브 밴드 멤버들이 잇따라 확진 판정을 받자 주류를 판매하는 바와 펍, 클럽들은 4월 3일부터 2주간 영업 중지 명령을 받았으며, 9일 홍콩 정부가 영업 정지를 다시 2주 연장한다고 발표하면서 말 그대로 문화와 관련된 거의 모든 활동이 정지된 상황이다.
전시, 공연 취소에 수업 취소까지 '설상가상'
홍콩의 센트럴에 위치해 있는 공연·전시 공간 프린지 클럽(Fringe Club)의 행정부문 책임자인 캐서린 라우(Catherine Lau) 씨는 "매주 열리던 재즈 공연은 모두 취소됐고, 회화나 사진 전시의 경우 미리 예약을 받거나 관람객의 체온을 먼저 체크한 후 전시실로 입장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라우 씨는 또한 "초, 증등학교 및 대학교의 개학이 연기되면서 예술 관련 특별활동 수업들이 취소돼 강연 활동을 겸직으로 하던 홍콩의 많은 예술가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홍콩 예술계의 현 상황을 설명했다.
미술계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현재 홍콩 중심부에 위치한 예술 공간인 PMQ에서 ‘불면(Insomnia)’을 주제로 작품 전시회를 하고 있는 설치예술가 레이몬드 팡(Raymond Pang) 씨는 "미술계는 예정됐던 전시가 취소되거나 연기된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도 "현재 진행 중인 전시 외에도 정부와 관련된 설치미술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공연예술계의 상황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홍콩 신문인 문회보(文匯報)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만 60여 개의 공연이 취소돼 현재 진행 중인 공연은 '0'에 가까운 상태라고 전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2003년 사스 유행 당시와 비교해 보았을 때,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올해 상반기까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며, 8, 9월이 되어서야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예측했다.
홍콩 정부, "예술인들에게 인당 120만 원 지급하겠다"... 효용성은 '글쎄'
홍콩의 예술계 인사들은 이미 2월 초에 서명 운동을 통해 생계가 막힌 예술가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이에 홍콩예술발전국(Hong Kong Arts Development Council)은 3월 5일 공연이나 전시가 취소된 기관과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550만 홍콩달러(약 8억 6천만 원)에 달하는 문화예술지원금을 편성했다. 발전국은 이 계획에 따라 개인 예술가들에게 최대 7,500홍콩달러(약 117만 원)의 금액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지원 대상을 '정부 시설 또는 법적으로 인정되는 예술 공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된 경우'로 한정해, 많은 예술가들로부터 신청 문턱도 넘지 못하는 '그림의 떡'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비영리예술단체인 '아트 투게더(Art Together)'에서 일하는 페기 찬(Peggy Chan) 씨는 "개인적으로 2월부터 4월까지 전혀 일거리가 없는 상황인데, 정부 지원금을 신청하려면 우선 취소, 연기된 전시나 공연이 우선 정부 주관 행사이거나 정부의 후원을 받는 행사여야 해서 예술가들에게는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극장을 잊지 말아 주세요'...온라인에서 계속되는 새로운 시도들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홍콩의 예술계는 온라인을 통한 여러 가지 새로운 방식으로 현 상황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맞아 대만, 홍콩, 마카오 등 중화권 온라인에서는 '예술가 지원 서약(#artistsupportpledge)' 운동이 한창이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이 운동은 한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SNS에 올려 9,500홍콩달러(약 15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을 때 활동에 참여한 다른 작가의 작품을 하나 구입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현재 영국과 홍콩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의 많은 예술가들과 일반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무대를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기려는 공연예술계의 시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충잉극단(中英劇團)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취소된 공연을 극본 리딩 형식으로 공개했고, 홍콩연극단(香港話劇團)은 <명극 다시보기>라는 이름으로 3월 28일부터 4월 18일까지 매주 연극 네 편의 녹화본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라인에 공개된 극본 리딩 형식의 연극 <파파 매지션(Papa Magician)>. 해당 연극은 원래 3월 말 공연 예정이었다.
(출처: 충잉극단 페이스북 페이지)
또한 국제연극평론가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Theatre Critics) 홍콩지회는 3월 26일부터 중화권 지역에서 연출됐던 극본을 매주 2편씩 온라인에서 대중들에게 공개한다고 밝혔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연극의 극본을 공개해 관객들이 극을 더욱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는 취지다. 협회 측은 "극본을 읽는 이들이 문자를 통해서라도 극장을 상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이를 통해 극장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09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온라인 플랫폼 무대극 웹사이트'인 'Stage TV'의 활동 역시 이번 사태를 맞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Stage TV'는 홈페이지를 통해 대학생들의 연극 공연 영상, 8~90년대 유명 연극, 극작가 및 배우와의 인터뷰 등을 무료로 공개해 놓고 있다.

이처럼 홍콩 예술계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 무대와 전시장이라는 고정된 장소를 벗어나려는 여러 가지 시도가 시공간상의 제약을 뛰어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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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준

박세준
2012년부터 홍콩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 관련 현지 주간지의 편집 담당과 <아주경제>의 홍콩 현지 통신원으로 재직한 경험이 있으며, 현재는 홍콩대학교 전업진수학원(HKU SPACE)에서 한국어 전임 강사로 근무하고 있다. passionate@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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