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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의 재난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거리예술 온라인 긴급총회 <어쩌지 코로나>

김승언_배우

제178호

2020.04.16

바이러스의 변이는 백신과 치료약이 없는 신종바이러스를 등장시켰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인간사회는 감염이라는 직접적인 위협을 피하고자 필연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선택했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인간사회는 크게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공공연하게 묻어두었던 취약한 안전장치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지금 인간사회는 바이러스의 직접적인 위협과 경제적 고립에 의한 생계불안에 휩싸인 채 아직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거대한 공포에 직면하고 있다.
교류가 금지되고 축제가 멈추었다.
교류가 금지되자 거리의 축제도 멈췄다. 국내외의 유수한 거리예술축제들이 이미 연기나 취소를 발표했고 몇몇 축제들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본 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일 것이다. 그런데 8월 예정이었던 ‘에든버러페스티벌 프린지’는 이미 공식적으로 취소를 발표한 반면, 6월에 예정된 ‘제주해비치 아트페스티벌’은 현재까지 취소를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4월10일 기준). 무엇이 옳은 결정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상황을 살피고 자의적으로 결정을 내려야하는 행정기관과 주최자로서는 어떤 결정이든 그 판단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거나 사후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해나가는 ‘과정’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거리예술 온라인 긴급총회 모습
불가항력
4월 3일, 거리예술가들의 온라인 컨퍼런스가 열렸다. 코로나19 이후 현재까지 취소되거나 연기된 축제들의 현황, 계약서의 ‘불가항력’ 조항에 대한 문제제기, 현재 국내외 축제들의 재난 대응 방식과 문화예술긴급지원책 등에 대한 발제에 이어 각자가 느끼는 문제의식들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거리예술은 공공예술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독자적인 기획보다 축제를 통한 시민들과의 교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것이 사실이다. 전국의 수많은 자치단체와 문화재단들이 지역의 거리예술축제를 개최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거리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기상상태의 급격한 악화나 긴급 재난상황으로 인해 축제의 취소를 결정하는 과정은 거리예술에 대한 높은 기대치가 무색할 정도로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사후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축제의 주최자나 담당자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러한 불가항력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면 문제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예를 들어 축제가 취소되는 경우 사후 절차에서 중요한 것은 축제가 취소된 시점이다. 보통은 계약서의 불가항력에 대한 조항에 따라 공연 당일부터 2~3일 전까지는 계약서에 명시된 각 취소시점별 비율에 따라 계약금(공연료)의 일부를 지급하게 된다. 뒤집어 말하자면 계약서에 명시된 시점 이전에 축제가 취소되면 공연단체가 지급받을 수 있는 공연료는 ‘합법적으로’ 0원이 된다. 물론 ‘공연료’는 공연에 대한 사례비 명목이기 때문에, 공연이 취소된 경우에는 공연료를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공연이라는 결과물에만 가치를 두고 공연의 준비과정은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결과중심주의식 발상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공연단체가 받는 공연료는 공연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인건비와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 소요되는 제작비로 지급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연 준비를 공연 2~3일 전부터 시작하는 공연단체는 단언컨대 없다.
거리예술 분야 피해 실태조사에 나타난 거리예술가들의 상황
면역력과 방역시스템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결과중심주의가 모든 지원제도와 선별시스템에 깊이 뿌리박힌 문제라는 점이다. 특히 지원금 교부의 과정이 그러하다. 지원금 역시 공연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인건비가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재난상황에서는 일부를 우선 지급하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방법이 없다. 공연단체의 ‘먹튀’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사례를 보면 일부 정직하지 않은 공연단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세금이 투명하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적절한 예산심사를 거쳐서 지원금액이 결정된 것이라면 공연단체가 공연을 제작하는 과정에 적절하게 예산을 투입할 것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공연단체의 정직함에 대한 의심이 크다는 것은 지원 대상 공연을 선정하고 예산을 심사하는 모든 과정을 부정하는 것이고, 선별시스템의 자기기만이나 자기불신에 가깝다.
모든 책임이 공연단체에만 전가되는 시스템은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고 무책임하다. 계약 당사자 쌍방에게는 각자의 책임과 권리가 있고, 양측 모두 공연(사업)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서로 간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책임과 권리와 의무의 밑바탕에는 ‘존중’이 필요하다. 그것은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과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재난상황은 방역체계를 갖추지 못한 시스템이 공연단체에게 스스로 면역력을 키우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반적으로 긴급 재난 발생으로 축제가 취소되거나 연기되었을 경우 주최 측의 재량에 따라 공연단체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사후 대책들이 마련되고 시행되기는 한다. 2014년의 안산국제거리극축제, 2019년의 고양호수예술축제가 그러했고, 2020년 현재 국내 각지에서 취소되거나 연기된 수많은 축제들 또한 사후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긴급 재난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공연단체와 예술인의 생존 문제를 주최 측의 재량에만 의존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계약서를 작성할 때부터 ‘과정’으로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호 협의 하에 공연단체의 준비과정을 이해하고 그에 상응하는 내용을 명시하는 것이 올바른 과정일 것이라는 얘기다.
삶은 예술의 근간이다.
인간사회의 교류가 금지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사회의 교류가 금지되자 지구가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반갑고도 뼈아픈 소식이다. 어쨌거나 지구가 살아야 인간도 살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살아야 예술도 존재할 수 있다.
지금의 변종바이러스는 언젠가는 극복되겠지만, 언제든 더욱 강력한 변종이 되어 나타날 것이고 인간사회가 삶의 태도와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지금의 재난 이상으로 강력한 혼란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중심을 잡고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매뉴얼이 있다면 재난을 대하는 마음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재난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재난상황이 인간사회에 던진 질문은 ‘삶의 태도와 방식의 변화’에 대한 요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삶은 예술의 근간이다. 삶이 먼저다. 그리고 삶을 지키기 위해 거리예술가들이 거리가 아닌 곳에 모였다. 삶의 터전인 거리를 변화시키고 거리예술을 변화시키고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한 ‘과정’이 시작되었다.
*지난 4월 3일(금) 진행되었던 거리예술 긴급포럼 [어쩌지 코로나]의 기록은 다음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운로드 https://bit.ly/2JQGUtF
**한국거리예술협회의 거리예술 긴급총회 두번째 모임 #어쩌자코로나는 2020년 4월 24일 오후 2시에 개최된다고 한다. (세부 사항은 SNS 추후 공지) www.facebook.com/streetarts.kr
[사진제공_(사)한국거리예술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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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언

김승언 배우
거리예술과 연극의 언저리에서 연극의 탈극장화와 거리의 극장화를 꿈꾸며 가내수공업적인 연극을 지향하는 창작자. eoni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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