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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자세

2020 신춘문예 당선희곡집, 신춘문예 단막극전

김태희_연극평론가

제179호

2020.05.14

평론가가 되고 봄마다 의례처럼 하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신춘문예 당선희곡을 읽고 신춘문예단막극전을 보러 가는 일이다. 하루에 7, 8시간씩 내리 공연을 보는 강행군은 힘든 일이지만, 그럼에도 극작가로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이들을 만나러 가는 설렘은 매년 극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신춘문예단막극전이 취소되었고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는데, 이렇게나마 새로운 극작가들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춘문예와 신춘문예 단막극전의 역사
신춘문예는 근대부터 이어져 온 가장 오래된 등단 제도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수의 극작가들이 신춘문예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문예지 추천이나 극단의 희곡 공모, 대학극을 통한 데뷔 등 다양한 경로가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작가들이 등단제도로 신춘문예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편 신춘문예 단막극전은 신춘문예 희곡 공모보다 훨씬 뒤인, 1965년 시작되었다. 본래 희곡은 상연을 전제로 하는 문학 갈래이지만, 처음 등단한 극작가의 작품이 공연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등단을 해도 공연될 수 없는 현실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에 이르렀고 1965년 드라마센터와 동랑레퍼토리 극단이 정식으로 신춘문예 연극제를 개최하게 되었다.1) 이어 민중극단(1978~1988), 서울연출가그룹(1989~1990)을 거쳐 한국연출가협회가 1991년부터 신춘문예 단막극전을 담당하고 있다.
신춘문예 단막극전은 대개 3월 말에 이루어지는데, 일곱 편의 작품이 매일 관객을 만난다. 한 작품당 50분 내외로 구성되기 때문에 공연은 대략 오후 3시쯤 시작되어서, 10시에 끝나는 일정으로 진행되어왔다. 관객들은 하루에 전체 공연을 다 볼 수도 있고 개별 작품을 선택해서 관람할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자를 선택하는 편이었다. 물론 짧은 시간 동안 일곱 작품을 공연하다 보니 진행에 어려움도 따르고, 관객들 역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어서, 올해는 네 작품씩 나누어 공연할 예정이었다.
운영 주체나 방식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신춘문예 단막극전의 등장으로 신춘문예 당선이 곧 공연으로 이어지게 된 것은 분명했다. 신춘문예 단막극전은 기존 창작자들에게는 좋은 작가의 작품을 먼저 공연으로 올릴 기회를, 이제 막 연극계에 발을 내디딘 작가들에게는 신춘문예 단막극전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고 자신들의 작품이 무대화되는 과정을 지켜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제29회 신춘문예단막극전은 코로나19에 따른 극장 운영시설 지침에 따라 전 공연 취소되었다. (29회 포스터 이미지)
희곡을 읽는 즐거움 : 『2020 신춘문예 희곡 당선 작품집』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작품집을 미리 읽어보길 추천한다. 희곡을 먼저 읽고 공연을 보러 가게 되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또 새삼 희곡 역시 문학의 한 갈래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여덟 편의 작품이 저마다 개성이 뚜렷해서 금방 읽어 내려가게 되었다.
여덟 작품을 이 짧은 지면을 통해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를 무릅쓰고 거칠게 정리해보려고 한다. 올해 당선작들은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결핍을 저마다의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옷장 속 남자>(김미령 작)는 반지하 원룸에 살고 있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고독한 상황에 처해 있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담아냈고, <절벽 끝에 선 사람들>(김준현 작)은 자살을 위해 ‘날씨 좋은 끝내주는 절벽’에 모여든 사람들을 통해 현실적인 고민을 담아냈다.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들은 경제적 양극화, 비정규직, 감정노동을 비롯해 세대 갈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한편 <선인장 키우기>(조지민 작)와 <길>(김지우 작), <마지막 헹굼 시 유연제를 사용할 것>(연지아 작)은 해당 심사위원의 표현처럼 “불확실한 시대를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서정”으로 다가온다.2) 주인공들은 시험지를 훔쳤다는 누명을 써도 코피노라는 자신의 상황 때문에 해명조차 포기해야 하거나(<선인장 키우기>), 미국에 있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몰래 국경을 넘어야 한다(<길>). 혹은 스스로를 소통의 부재, 단절된 일상에 몰아넣으려 한다.(<마지막 헹굼 시 유연제를 사용할 것>) 그럼에도 각 작품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불가능해 보였던 소통과 연대를 이루어 낸다.
그 외에 <저 나무 하나>(임지수 작)와 <32일의 식탁>(정승애 작)은 한정된 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면에서 단막극의 매력을 십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고, <컬럼비아대 기숙사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동양인 임산부와 현장에서 도주한 동양인 남성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지나치게 짧은 보도기사>(이홍도 작)은 과감한 메타연극적 형식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다. 동시에 이런 이유로 무대화가 기대되는 작품들이기도 했다. 신춘문예 단막극전이 취소되어 아쉬운 관객이라면, 『2020 신춘문예 희곡 당선 작품집』을 통해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볼 수 있지 않을까.
2020 신춘문예 희곡 당선 작품집 (월인출판사)
어쩌면 이 마지막 문단을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여덟 편의 작품에는 여덟 명의 작가들이 지나온 여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막막하고 외롭고 불안했을 시간을 이겨내고 새롭게 극작가의 세계에 들어선 이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반갑다고, 앞으로도 자주 마주치자는 말도 함께 말이다.
  1. 「3개 신문사 신춘문예 입선희곡 드라마센터서 공연」, 『동아일보』, 1965.01.19.
  2. 김철리·장우재, 「<선인장 키우기> 심사평」, 『2020 신춘문예 희곡 당선 작품집』, 월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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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김태희
한국연극사를 공부하고 있고 연극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shykt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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