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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제56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이리_배우

제181호

2020.06.18

후보가 되어 본 입장에서 간단히 말하면 연극인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확실히 그러한 것 같다. 티비, 영화 부문과 같이 시상을 하고 생중계가 되기 때문에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도 잦고 (문화, 예술 면뿐 아니라 연예 면에 다른 수상 종목과 함께 등장)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지인들에게 축하 연락도 많이 받았다. 연극 부문을 비중 있게 다루는 동아연극상이나 연강예술상 후보에 올라본 적이 없어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여하튼 그렇다. 수상하지 못했는데도, 후보가 된 것만으로도 영광이지 않느냐는 인사를 퍽 많이 받았다. 실제로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 후보가 되어서 퍽 영광이라 느꼈다. 그리고 시상식 당일인 6월 5일,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대학로에서는 공연이 올라갔는데, 매표소 안에서도 앞에서도 모두 핸드폰으로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고 하더라. (대학로에 없었기 때문에 당시 대학로에 있었던 연극인 동료에게 전해 들음) 연극인들에게도 두 해 만에 꽤 크고 재밌는 행사가 되었다.

후보가 된 입장에서는 기쁘기도 했으나, 퍽 까다로운 일이었다. 일단 6월 11일부터 시작하는 공연(<세 그루의 숲>) 연습에 참여 중이었는데 미안하게도 시상식 당일 연습이 취소되었고, 옷을 뭘 입고 갈 거냐는 질문도 꽤나 받았다. 작년 2월에 작업 때문에 구매했으나 기회가 없어서 입지 못했던 남성 정장을 입고 갈 것이었기에, 덩달아 헤어 메이크업 장신구 문제까지 해결되었지만, 다른 후보와 시상자들은 의상-헤어-메이크업-신발-장신구 등을 해결하느라 꽤나 애를 먹은 것 같았다. 백상 측에서는 현장에서의 간단한 메이크업 외에는 지원해주는 사항이 전혀 없었다. 나는 의상이 그렇다보니 굳이 필요 없을 거 같아서 완전 노메이크업으로 갔는데 현장 진행 스텝들에게 두어 번 메이크업이 필요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괜찮다고 하니 굳이 강제하지는 않았다.

코엑스에서 열렸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일산 킨텍스에서 시상식이 열려, 교통수단도 애매했다. 지하철을 타거나, 광역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남성 정장을 입고 갈 예정이다 보니 시선이 신경 쓰였고, 그 정장은 2월에 샀는데 날씨가 더워서, 동료의 제안에 따라 광역 콜택시를 불러서 타고 가는 사치를 부렸다. (상 못 받을 줄 알았으면 안탔겠지 싶다.) 가서 보니 연예인들은 주로 매니저가 운전하는 밴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듯했다. 진행에 대한 안내 메일에서도, 레드카펫 사진촬영 전에는 가능한 차량에 머물러 달라고 적혀있었다. 차가 있는지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안내 메일에 2인 동반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거리두기 시상식을 진행하는 탓에 관객석이 따로 없어서 대기실에서 모니터로 시상식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아무도 동반하지 않았다. 그 2인은 아마 소속 매니지먼트에서 지원하는 메이크업 코디 스탭을 염두에 둔 것 같았다. 실제로 광활하게 거리를 둔 시상식 안과는 달리, 중간 광고 시간에 시상식장을 빠져나올 때, 입구에 수많은 스탭들이 소속 연예인을 기다리느라 와글와글 몰려있어서 거리두기가 전혀 되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을 가려고 시상식장을 나서다가 마치 공항에서 비행기에 내리는 사람을 기다리는 듯한 인파의 시선을 느끼고, ‘저 사람들은 누구지? 누구를 찾는 거지?’라고 의아했었다.
제 56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연극부문 후보작
작년 백상 예술대상에서는 18년 만에 연극 부문이 부활하였고, 젊은 연극인상이 단독으로 시상되었다. 올해는 젊은 연극인상 외에도 남, 여 최우수 연기상과 백상 연극상 부문이 신설되어 총 네 부문의 상이 연극 부문에서 시상되었다. 작년에는 젊은 연극인상에 함께 작업하는 연출가가 후보로 지명되어 생중계를 보았다. 지인이었던 배우가 수상하여 소감을 전할 때, 반응 샷으로 한 영화배우의 눈빛을 잡는 카메라의 프레임이 연극인을 대할 때의 미디어가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 느껴져 기분이 나빴던 기억이 났다.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이어나가는 연극인에 대한 동료로서의 안타까움이겠으나, ‘왜 그런 눈빛을 연출하지?’라고 문득 기분이 나빠졌던 셈이다. 피해의식일 수도 있겠지만 동등한 작업자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감각이었던 것 같다. (올해 시상식의 중계 클립을 후에 찾아보았는데, 김정 배우가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여 수상 소감을 할 때도 어느 유명 영화, 드라마 남자배우의 반응 샷을 카메라가 잡아주었다. 작년만큼 연민에 찬 표정이 아니어서 좀 기분이 덜 나빴다)

현장에서는 방송에 어떻게 나가는지 알 수도 없었고, 넓게 자리한 좌석 사이로 시상 직전 현장에 참석한 후보의 긴장된 모습을 찍기 위한 카메라와 그 카메라의 라인을 잡는 수많은 스탭들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기에 다소 정신이 없었다. 그 카메라들과 카메라를 지원하기 위한 스탭들은 생중계되고 있는 카메라의 사각에서 후보들을 찾아 시상식장을 누비고 있었다. 숨겨진 노동의 존재를 다시금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상을 하러 나온 연예인들은 전년도 수상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곧 개봉을 앞두었거나 방송을 앞둔 영화나 드라마에서 상대역 역할을 하는 한 쌍으로 구성되었고, 그 차기작에 대한 언급을 적극적으로 하였기에 연극을 제외한 영화, 드라마 부문에서 이 시상식은 거대한 비즈니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상자들의 멘트는 백상 측에서 대본으로 주는 것이니 백상에서도 의도한 비즈니스의 장이었다.) 백상 예술상을 받은 신유청 연출이 수상 소감에서 자신의 공연이 재공연 되는 것에 대해 언급했을 때, 연극도 잠시 그러한 비즈니스의 한 부분이 되었다가 금세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듯했다.

공연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전미도 배우의 이름이 호명되거나, 강말금 배우가 영화 작업으로 수상했을 때에도, 참여한 연극인들의 자리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언젠가 한성대 앞 어느 맥주집에선가 인사를 나눈 적 있었던 이재명 배우가 나를 알아보고 악수를 청하였을 때나, 앞서 언급한 배우들이 상을 받을 때에도 잠시 연극이 다른 장르들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시상식이 끝나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잡지에서 튀어나온 듯한 유명인들이 각각 밴에 올라타고, 방향이 같은 동료들끼리 택시를 잡아야 하나 상의를 하며, ‘연예인 누구누구 봤어?’라는 둥의 대화를 나눌 때는 다시 그들과 나는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강말금
  • 김정
  • 백석광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들의 모습(영상 캡처)
반농담으로 ‘이제 연극 안 할 거냐, 티비나 영화 쪽 매체에 도전할거냐’라는 말을 요즘 가끔 듣는다. 연극이 아니어도 지금처럼 연기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서, 시기상조라 생각하고 나중에는 다른 매체에서 작업할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연극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장르이고, 제작 기간도 비교적 짧아서, 그렇기에 현재 한국사회의 쟁점에 가장 빨리 반응하고 발언해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어쩌면 연극의 높아진 위상은 티비 중계와 시상 부문의 증가가 아니라 바로 그 지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백상이 새롭게 연극계 안에서 핫해지고 조명되고 있지만, 나는 연극계 유수의 상들보다는 또 다른 연극상에 대해 생각한다. 작년에 김보은 배우가 만들고 시상한 ‘김보은 연극상’이 그것이다. 김보은 배우가 생각하기에 일 년간 연극계에서 중요한 업적을 이뤄낸 연극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며, 작년 초대 수상자는 ‘페미니즘 연극제’의 나희경 피디였다. 나희경 피디는 두 해 걸쳐 백상 수상자를 낸 연극 <로테르담>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백상을 알고 싶으면 ‘김보은 연극상’의 향방에 관심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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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이리 배우
비건 지향 퀴어 페미니스트 이리는 극장과 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배우이자, 개인 작업을 궁리하고 있으며, 커밍아웃했고, 현재 유산소 운동을 한 달째 열심히 하고 있다. 이리는 본명이 아니며 페이스북 페이지 주소는 https://www.facebook.com/IriQueerFeminist 이다. 트위터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아이디를 절대 밝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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