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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바라보고 다시 생각하기

‘새-시대 비평클럽’ 나경민 배우편

최희진_배우

제182호

2020.07.09

코로나 시대에 다들 안녕히 잘 지내고 계신가요? 지난 6월 21일,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재미난 모임이 있다고 해서 다녀왔습니다. ‘새-시대 비평클럽’의 나경민 배우편입니다.

‘새-시대 비평클럽’(기획 김주원)은 비평의 세계에서 배제됐던 배우들이 모여 ‘배우의 언어가 비평의 언어로 유효한가, 배우의 언어는 어떤 유형의 방식으로 기록될 수 있는가, 배우와 관객은 어떻게 더 만날 수 있는가’를 묻는 프로그램입니다.
나경민 배우
나경민 배우가 발제한 <공동창작 공연에 대한 배우의 텍스트/연기 저작권 - 극단 크레에이티브 VaQi의 작업을 중심으로>이라는 제목을 읽고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저는 바로 ‘이거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기 저작권, 그간의 작업에서 느꼈던 답답함, 배우로서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어떤 비굴함(?) 이런 것들을 단박에 쓸어줄 말이 바로 이거 아닐까? 그동안 나는 연기저작권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저작권이라는 말의 의미도 잘 모르면서 저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삼일로창고극장, 스튜디오에서 ‘새-시대 비평 클럽’의 첫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주원 배우가 진행을 맡고, 발제자인 극단 크리에이티브 VaQi(이하 바키)의 나경민 배우 그리고 이경성 연출, 법률사무소 율다함의 이성규 변호사가 패널로 참석했고요. 사전 신청을 통해 오신 10명의 창작자분들도 함께 했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참석하게 된 이유를 짧게 말씀해주셨는데요. 창작집단에 소속되어 공동창작의 방식으로 작업하는 분들이 반수 정도 되었고 저와 비슷한 느낌으로다가 그간의 작업 속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궁금함을 함께 나눠보고자 오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성규 변호사, 이경성 연출가, 나경민 배우, 김주원 배우 (왼쪽부터)
나경민 배우가 발제를 읽는 것으로 모임은 시작되었습니다. 12페이지나 되는 긴 발제문이었기에 제가 곡해없이 전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제가 이해한 정도만을 이야기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확실한 전문을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삼일로창고극장으로 문의를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08년 창단되어 지금까지 활발하게 공동창작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극단 바키에서 지난2018년 창단 10주년을 맞아 『1도씨 추적선 - 연극의 연습』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합니다. 책의 발간 이후, 바키에서 창작자로 활동했던 구성원 중 일부가 책의 발간에 문제가 있음을 제기했고, 논의 끝에 판매를 중단했다고 하는데요. 문제의 요지는 책에 공동창작으로 완성된 5편의 공연 대본이 실렸지만 각 작품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점, 지난 작품에 참여한 창작자 모두의 크레딧 리스트(credit list)가 실려 있으나 역할은 없고 이름들만 나열되어 있다는 점, 판권 면에 기재된 지은이는 연출가와 극단 크레에이티브 VaQi라는 점, 저자의 복수성은 삭제되고 창작자들의 권리와 인격이 침해되었다는 점, 결국 이것은 연극계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2019년 4월 월간 <한국연극>에 실린 기고문 ‘누가 쓴 글인가’1)와 같은 해 8월 같은 잡지에 실린 또 다른 기고문 ‘공동창작에 있어서 크레딧의 문제’로 이 문제는 표상됩니다)

그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과 고민으로 나경민 배우는 기준이 모호하고 복잡하더라고 토론과 논의를 통해 이 논의를 다시 출발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공동창작을 정의하고, 공동창작이 늘어나게 된 이유들을 살펴보고, 공동창작의 방식들도 찾아봅니다(collective creation, collavorative creation, devising theater). 그를 통해 극단의 작업 방식을 되돌아보고 공동창작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의 분리-불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공동창작물로서의 가치를 갖는 결과물이 연출자나 대표자, 극단에로 수렴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시켜나갈 것인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식을 제안하는데요.

  • >  누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창작했는지를 상세히 기술하는 서술형 크레딧을 만든다.
  • >  계약서를 작성할 때 꼼꼼하게 읽어보고 상세히 작성한다.
  • >  최종 공연 대본에 주석의 형태로 과정을 기록하는 ‘아카이빙 스크립트(acrhving script)'를 만든다.

이 제안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를 판단해주실 이성규 변호사님께서 마이크를 이어받았습니다. 변호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저작권이라는 것은 결국 권리의 다발이라고 합니다. 창작물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저작권이 생기는데, 그 창작물에 대해 저작자 또는 실연자로서의 자격을 획득한다면 그 저작권을 갖게 되는 것이죠. 또 그 저작권은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나눠집니다. 크레딧은 그중 저작인격권 중 성명표시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저작물이 어디서 사용될 때 내가 관여했음을 표시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하네요. 크레딧은 창작자의 권리입니다. 이 말이 좀 새롭게 다가오지 않나요?

단어들이 복잡해지고 있죠. 하지만 간단한 검색을 통해서도 저작권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찾으실 수 있습니다. 좀 더 관심을 갖고 우리에게 주어진 실연자 혹는 저작자로서의 권리를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질문이 이제 시작되었으니까요. 그리고 계약서도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계약서 앞에서는 항상 왜 그렇게 작아지는지. 항상 ‘꼼꼼하게 살펴보세요’ 라는 말은 들어왔었는데요. 막상 계약의 순간에는 계약금과 입금시기, 주소 정도가 제대로 나왔는지만 확인한 뒤 사인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안에 창작자로서 나의 권리가 주어져 있는데 말이죠. 앞으론 하나하나 잘 살펴보고 또 질문하고 수정도 필요하다면 요구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권리니까요.

혹시 이런 것들도 가능할까요? 초연 배우인 누군가가(내가) 어떤 이유로 재연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극 스타일이 전체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재연되는 공연에도 초연 멤버의 연기저작권(여기서 연기저작권을 갖고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요)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니 프로그램이나 전단지에 초연 멤버가 누구였음을 밝혀야 한다. 물론 이렇게 문서화하지 않아도 요즘 많은 프로덕션에서 이런 부분들을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를 권리로도 주장할 수 있는 걸까요?

나경민 배우가 제안한 ‘아카이빙 스크립트’도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일회성으로 사라지는 공연이, 공연이 끝난 후 최종 대본 위 연습의 기록들이 덧붙는 식으로 정리가 된다면 어문저작물로서 (물론 이것 또한 계약서에 명시를 해야겠지만) 권리를 갖게 되는 동시에 배우의 연기 역시 활자화 되어 기록 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연 연습에 들어가면 실연자로서, 공동창작의 경우 실연자이면서 저작자로서 우리는 모두 저작권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을 갖고 작업에 임하면 아무래도 서로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작업을 해나갈 수 있겠죠?
새-시대비평클럽 모임의 모습
자유토론 시간에 나온 이야기들은 거의 다루지 못했지만 지금의 저처럼 작은 깨달음과 용기로 각자의 자리에서 이 질문들이 이어져 나가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의 이야기를 이렇게 중심에서 듣고 또 그 생각을 나누는 것이 배우로서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마스크의 답답함을 잠시 잊을 정도로요.

다음번 ‘새-시대 비평클럽’은 <배우는 어떤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배우 정원조 편)라고 합니다. 모임 3주전 삼일로창고극장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고 해요. ‘새-시대 비평클럽’은 11월까지 이어집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사진 제공: 삼일로창고극장]

  1. “새로운 창작 방식은 그 창작의 공적을 드러내는 방식도 새로워야 한다” 장수진, ‘누가 쓴 글인가’, 『월간 한국연극』, 2019년 4월호,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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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진

최희진 배우, 창작자
이번 생은 계속 연기하고 싶은 사람. 마스크 없이 어디론가 훌쩍 떠날 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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