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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엄마 예술가가 전하는 반디돌봄센터

예술인자녀돌봄센터 반디돌봄센터

황재희_배우

제182호

2020.07.09

이년 전 어느 가을날,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참여자들이 모여서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극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뮤지션이 말하였다. “지금 세상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 자체가 폭력이죠.” 앞뒤 상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오로지 그 한 문장만이 또렷하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헬조선에서 무의미하다는 걸 역설하고 싶었으리라. 혹은 자신의 비혼주의를 윤리의식에 비추어 타당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가족의 가치관이 달라졌고 아이의 필요성 혹은 부모의 역할 등등 오늘날 여러 현상에 비추어보았을 때 아이가 불행할까봐 자녀를 낳지 않는 무자녀 가구가 늘어가는 건 나 역시 매우 당연하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여겼으니까.

당시 네 살배기와 두 살배기 아이를 가진 엄마 예술가로서 꽤나 당당하게 살았던 나는 임신 초기에도 만삭일 때에도 늘 배우와 연출가로서 일을 하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때 그 말의 흔적은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같은 여자 사람이고 예술가인 그가 내뱉은 말의 온도. 순간 냉랭한 기운에 몸 둘 바를 몰랐고, 가장 원시적이고 싸구려 같은 나의 몸뚱어리를 저 하늘에 올라 스스로 내려다보는 기분에 휩싸였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세상에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바야흐로 2020년 ‘코로나19’ 시대가 왔다. 대재앙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만 같은 지금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가족과 환경의 의미를 생각한다. 친정엄마와 남편의 도움으로 비교적 어려움 없이 일과 육아를 병행해왔고, 자유직업인으로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자부해온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딸들과(6세/4세) 3개월 꼬박 보육시설의 도움 없이 가정보육과 홈스쿨링을 하며 느낀 바가 많다. 양육과 교육 그리고 놀이, 교사와 부모의 존재와 가치, 아이들의 미세한 감정과 생각의 자라남. 순간순간 아이들의 육체적 정서적 확장을 함께하면서 분명 고되지만 빤짝빤짝 빛이 났다. 그렇게 2020년도 절반이 다 지났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을 선택했을 때도 그랬다. 동네 근처 괜찮다 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마다 모두 발품 팔아 돌아다니며 불시 방문해 원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건물 곳곳을 둘러보며 아이들의 표정과 먹거리를 살피는 등 정당한 유난을 떨었더랬다. 공간과 사람에 대해 애착을 갖고 관찰하면 아이들과의 그리고 나와의 궁합까지도 바로 알아볼 수가 있다. (그 직관은 대개 틀리는 법이 없다) 작은 숲에 둘러싸인 아이들의 보금자리는 사찰 경내에 자리한 한옥이어서 숨을 쉴 때부터 벌써 달랐다(나는 천주교신자다). 선생님, 친구들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함께 한 발 한 발 기도로 내딛는다. 이처럼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지 깐깐하게 따져보아도 늘 편치 않은 게 부모 마음이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 전부터 아이들을 믿고 맡기는 돌봄 시설 하나가 있어서,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반디돌봄센터 마당에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는 나의 딸들 (자세한 내부 사진은 반디 다음카페 이용자 가입이 되거나 혹은 전화상담을 통하여 아이들이 없는 시간대에 직접 방문하여 둘러볼 수 있다)
반디돌봄센터는 예술인의 안정적인 예술활동 지원을 위하여 평일 저녁, 주말 동안에도 안심하고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예술인 자녀들만을 돌보아주는 시설이다. 연습, 작품회의, 공연 등등 단 몇 시간만이라도 아이들을 정성스레 돌봐줄 공간이 있다는 건 예술가들에게 구원과도 같을 것이다. 예술활동증명을 완료한 예술인의 자녀(24개월~10세, 긴급한 경우나 형제자매가 함께 이용하는 경우 11세~13세 이용 가능)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이용료는 시간당 500원이며 식사비와 간식비는 무료다. 월요일은 쉰다. 현재 예술인 자녀돌봄지원센터는 서울에 두 곳이 있다. 대학로에 위치한 반디돌봄센터와 마포에 위치한 예봄센터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아늑한 공간은 나이 차가 있는 어린이들도 모두 함께 어울려 놀기에 큰 부족함이 없다. 간혹 예술 워크숍을 통하여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해주기도 한다.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진행되지 않지만 요리 교실도 있다. 나는 지금껏 작품연구와 회의를 하기 위해서 몇 번의 토요일 3-4시간 센터를 이용하였고, 7월부터 9월까지 공연 준비를 위해서 앞으로도 종종 애용할 예정이다. 안전 수칙이 준수되고 있고, 선생님들이 다정하며, 먹거리 또한 믿을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나이를 허물고 마을 놀이터처럼 놀 수 있는 센터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얼마 전 만난 선배 연출가에게 물었다. “선배, 반디돌봄센터 이용해보니 어때요? 불만 사항은 없어요?” “없어. 너무 좋아. 월요일에도 열어달라!” “하하하하!”
5월 워크샵. 그림책을 읽고, 선생님과 함께 풍선에 헬륨가스를 주입해 하나씩 나눠가지며 놀았다.
반디돌봄센터 운영위탁과 관련하여 2018년에는 진통의 시기1)도 있었다. 그 시기를 슬기롭게 잘 극복하고 연대하여 방향성을 함께 고민하여준 선배들이 고맙다. 그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므로.

올해 3월부터 어린이집 입소 시 예술인활동증명서가 재직증명서로 인정이 되었다시피, 앞으로도 계속해서 예술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예술인뿐만 아니라 부모의 직업의 특성에 맞게끔 여러 유형의 돌봄시설을 더욱 많이 생기도록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아동학대가 판을 친다. 아동학대는 본디 계부와 계모가 저지르는 우화 속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아니다. 친부 친모의 ‘경제상황’과 ‘부모교육의 정도’ 그리고 그들의 ‘교육철학’과 ‘부모 인성’이 근본이 되는 매우 현실적이고 냉철한 통계다. 저출산을 사회적 문제로 운운하면서 정작 낳아놓은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복지 구조를 보살피는 일에 게으르면 안 될 말이다.

큰 아이가 네 살이었던 시절, 어느 날 옥상에서 멀리 마을 풍경을 내려다 보며 말하였다. “엄마는 멋있어.”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되묻자, “엄마는 배우니까. 배우는 정말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이야. 씩씩한 사람!” 나는 먹먹해져서 한참 동안 아이를 바라보았다. 깨달았다. 내가 세상에 낳은 것이 바로 희망이라는 것을! 코로나19로 침체된 사회 속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재잘재잘 웃고 떠들고 달리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공을 차고 자전거를 탄다. 마스크를 쓴 채로 말이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약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또다시 힘을 낸다. 아이들은 우리가 낳은 희망이다.
*반디돌봄센터 다음카페 바로가기_http://cafe.daum.net/bandicare
**반디돌봄센터 소개 기사_예술인복지재단 웹진 예술인
http://news.kawf.kr/?searchVol=5&subPage=02&searchCate=04&idx=75
  1. 관련기사 https://www.news1.kr/articles/?3284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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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희

황재희 배우
시의적時宜的 사건들을 고찰하고 비판하며 소통하기를 좋아한다. “정의 사랑 혁명”의 세상을 꿈꾼다. 두 딸아이의 엄마다. 최근 독립운동가, 노동자, 사회주의 운동가 등으로 분하여 무대에 올랐다. 2008년 극단미추 입단. <정의의 사람들> <아름다운 낯선 여인> <자매> 외 다수 작품에 출연/연출하였으며 TV드라마까지 범위를 넓힌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9월에 있을 쇼케이스를 준비중이다. 가까운 연극 동지와 남편 그리고 딸 ‘조인’이 함께 출연한다.
@jaehee_sophiahwang
https://www.facebook.com/jaehee.hwang.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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