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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배우가 되고 싶다

희비쌍곡선: 판소리 배우의 연기실험실 ‘송백간(頌白間)’

이해원

제184호

2020.08.06

판소리 배우를 위한 워크숍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때, 바로 신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아마도 창작집단 ‘희비쌍곡선’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그분들을 알게 된 건 2018년 가을이었다. 운이 좋게도 판소리 2인극 <두 여자의 집>에 함께 할 기회가 생겼고, 그때 처음으로 일상적인 ‘연기’를 제대로 접하게 되었다.
판소리는 혼자서 여러 캐릭터를 표현해야 하는 1인 예술이기 때문에 노래를 하면서 계속 인물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내가 표현하는 캐릭터를 구축하고 분석하는 것에 대해 큰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성별에 따라 목소리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런 부분들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와중에 판소리 2인극 준비를 하면서 ‘아, 판소리극이지만 쉬운 대사를 사용하고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상적인 연기가 이루어질 수 있겠구나’ 라는 가능성을 느꼈다. 그 가능성을 명확히 확인하기 위해 지난 7월 22일부터 28일까지 열린 판소리 배우를 위한 워크숍 ‘송백간’에 참여했다.

‘송백간’에서 우리는 크게 세 가지 활동을 했다.

1. 사물 없는 행동
5일 내내 했던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웠던 활동.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내 감각을 총동원해서 행동을 만들어 내는 활동이었다. 물통에서 물 마시기, 껍질 있는 과일 깎아 먹고 껍질 버리기, 재질이 독특한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 입기, 한증막에 들어가기의 과제를 수행했다. 연출가는 대상을 명확히 찾아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활동 내내 아주 강도 높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더욱 집중력이 높아지는 모습이 서로에게서 보였다. 평소에 많이 인지하지 못하는 내 감각들(등, 팔꿈치, 무릎 등)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고, 그 감각들 위에 또 다른 활동을 입혔을 때 오는 쾌감들이 날 즐겁게 했다.
2. 대본 읽기
각자 선택한 대본을 읽었다. 처음엔 그냥 읽어보고, 그 다음엔 ‘상대방을 ○○하게 한다’라는 목표를 넣어서 읽어 보기도 하고, ‘어떤 분위기를 입고’ 읽어보기도 했다. 나는 대사를 읽을 때 당연히 감정을 넣은 ‘연기’를 해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배제하고 오로지 분위기를 입는 것(예를 들면 아주 무거운 공기가 나를 짓누른다), 혹은 대사에 맞는 심리적 제스처를 사용하여 거기서 느낀 감각을 유지한 채로 대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변화가 신기했다.
3. 전통판소리 하기
가장 부담스러운 활동이었지만 하고 나니 오히려 즐거웠던 활동! 전통판소리의 3가지 공간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첫 번째는 관객과의 공간, 두 번째는 극 중에서의 공간, 그리고 마지막은 소리 그 자체와의 공간. 관객과의 공간에서 소리를 할 때도, 앞선 활동들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미지로 만들어 오롯이 관객들에게 ‘집어넣는 것’을 수행했다. 나는 흥보가 中 박 타는 대목을 했는데, 처음엔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그냥 소리를 집어넣는 것을 해보았고, 두 번째는 ‘지금은 이 장면이 슬프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행복해질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똑같이 관객들에게 소리를 집어넣었다. 똑같은 소리였지만 두 소리는 완전히 다른 소리였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심청가中 ‘봉사들 눈뜨는 대목(자진모리)’을 부를 때는 ‘트램폴린’ 이미지를 떠올렸고, ‘관객들의 의자가 노래에 맞춰서 하나씩 튀어 오른다’를 목표로 수행을 해보았다.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까지는 잘 됐는데, 이를 집중력 있게 끝까지 가지고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금 더 트램폴린에 집중하라는 피드백을 받고 통통 튀는 감각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감각이 명확해지자 보는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었다는 말을 듣고, 내심 뿌듯했고 짜릿함도 느껴졌다.
이번 5일 동안 워크숍을 하면서 스스로 감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집중하는 힘이 많이 길러졌다고 생각한다. 연출가는 우리가 찾은 이 감각들을 몸 안에 저장시켰다가 무대에서 필요할 때 언제든 바로 꺼낼 수 있게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분위기를 내가 만들 수 있다.’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항상 무대에서 노래하기 바빴고, 연기와 노래를 함께 가져가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아주 감각적으로 나만의 분위기를 잘 만들 수 있고, 그 안에서 노래와 연기 모두 잘 수행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연기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마음 편히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워크숍이 시작하는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참여자들이 서로에게 호의를 갖고, 경험을 주고받는 모습이 정말 편안했다.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수행을 평가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세심하게 그 모습을 열심히 지켜봐 주고 목표한 바를 찾을 수 있도록 더 많이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 앞에서 마침내 판소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참여자는 마지막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악계 안에서, 특히 판소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생각도 못 했다.”
판소리 배우란 뭘까. 단순히 극 안에서 판소리를 하는 사람, 그 이상으로 더 깊이 있는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앞으로도 스스로 계속 고민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판소리 배우’이고 싶다.

* 판소리 배우의 연기실험실 ‘송백간’ (주최/주관 창작집단 희비쌍곡선)
https://www.facebook.com/HeebieJeebieJuice/posts/2762145787342706

[사진 제공 : 창작집단 희비쌍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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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원

이해원 판소리 배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을 졸업했다. 판소리 2인극 <두 여자의 집>에 출연했고, 최근에는 정동극장 청년국악인큐베이팅 사업 청춘만발과 아트홀 가얏고을 제3회 2인 전통음악축제에 선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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