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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about us without us 우리 없이 우리에 대한 것은 없다

무장애예술주간 탭톡 세션3_‘영국의 장애 운동과 장애 예술의 역사, 그리고 희곡’

강보름_연출가

192호

2020.12.03

지난 11월 9일부터 19일까지 매일매일 핸드폰으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제1회 무장애예술주간:No limits in Seoul’ 행사 안내 문자가 도착했다. 상대적으로 익숙했던 ‘배리어프리(Barrier-free)’가 아닌 ‘무장애’라는 단어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유튜브에 접속했다.
필자가 관람한 행사는 영국의 극작가 케이트 오라일리Kaite O’Reilly(이하 케이트)가 발제한 탭톡 세션3 ‘영국의 장애운동과 장애예술의 역사, 그리고 희곡’이다. 이날 케이트는 ‘장애(disabled)’의 반대로 ‘비장애(abled)’가 아니라 ‘가능하게 하는’(Enabled)’라는 단어를 제안하며 관점의 전환을 제시했는데, 필자에게는 ‘무장애’라는 행사 키워드와 연결되어 한국의 장애예술 접근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유튜브 화면은 웨일즈의 집에서 이른 아침 시간에 접속한 케이트의 모습과 한글 자막, 수어통역사의 삼분할 화면으로 디자인되었고, 한-영 동시통역이 이루어졌다. 통역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하여 케이트의 말을 2명의 한-영 동시통역사와 2명의 수어통역사가 교대하며 통역했는데, 한 사람의 말을 네 명의 통역사가 통역하고 있다는 사실이 연극적인 감각으로 다가왔다.
케이트 오라일리의 발제화면 (유튜브 캡쳐)
케이트 오라일리의 발제화면 (유튜브 캡쳐)
아일랜드 출신의 50대 백인 여성, 파란 눈에 곱슬머리, 까만 셔츠를 입고 서재에 있다며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자기소개를 마친 그녀는 “장애예술은 마지막 남은 위대한 아방가르드 운동”이라는 잉카 쇼니바레의 말을 인용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영국 장애운동의 정치적 흐름 안에서 ‘장애의 사회적 모델’1)이 대두되었고, 장애예술운동 또한 급진적으로 전개되었다. 케이트는 80년대부터 장애 시민권 운동과 문화운동에 참여하면서 인간의 다양성과 포용성과 관련된 자신의 창작 방법론과 미학을 발전시켰다. 그녀는 ‘장애예술은 장애가 있는 이 세상에서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가 있는 참여자들이 창작을 주도’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장애인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제작수단을 찾고 소유하며, 억압의 경험으로서 장애 경험에 대한 폭로와 성찰을 포함하고, 옳음/적절함/정상성에 대한 사회의 관습적 판단을 거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각장애 문화와 주류 문화 사이에 위치한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 관점에 의한 대안적 드라마투르기’가 개발되었다. 이때 대안적이라는 용어는 주류, 장애인차별주의, 청인 중심 관점에 대한 대안을 뜻하며, 전통적, 관습적 표현 혹은 경로를 전복하거나 비평하는 내용, 과정, 구조, 형태를 의미한다.
연극의 역사에서 주변화된 ‘우리’들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은 ‘악당, 희생자, 약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제정신이 아닌 사악한 천재들, 혹은 불굴의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하여 타인에게 영감을 주는 슈퍼불구자(super crip), 선택의 의지가 없는 수동적인 자선 수혜자’ 등 관습적으로 재현되는 매체 이미지를 갖고 있다. 관객이 삶의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형적 신체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오랜 문화 언어적 관습을 학습하게 되는 현상을 경계하면서 케이트는 새로운 주인공과 서사를 주창한다. 이 새로운 서사는 내용과 표현뿐만 아니라 누가 어떻게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가라는 질문을 생성함으로써 미학과 형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현장성 기반의 공연예술 언어에 도전하고 이를 확장하여 장애를 다시 상상하도록 하는 것이 극작가 케이트 오라일리의 목표이다.
희곡<필링> 낭독의 장면 (유튜브 캡쳐)
희곡<나는 물속에서 무게가 없어> 낭독 장면 (유튜브 캡쳐)
그녀의 희곡 <필링>(2002)에는 “장애인 분장은 21세기형 흑인 분장”이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흑인 배역을 백인 배우가 연기하는 ‘화이트워싱’처럼 장애인 배역을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하는 현상을 풍자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당사자성을 고려할 때 주의해야 할 지점이 있다. 장애인이 무대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반드시 급진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정형적인 신체가 신체의 실재성을 넘어 배우의 의식이나 참여 없이 연출가나 안무가에 의해 극적으로 표현되어 결국 통제에 의존하게 되는 것을 배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녀와 작업하는 배우들은 작가가 작성한 독백에서 본인이 공연할 내용을 선택하고, 그들 스스로 무대에서 어떻게 배치되고 표현되는지에 대해 관여한다. 케이트는 접근 도구(access tool)를 공연 과정의 중심에 배치하여 관객이 의사소통의 다양성과 그 방식을 예술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접근성의 미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장애로 구분되는 특정 관객층을 위한 부가 서비스가 아니라 공연 안에 자막과 음성해설을 내장하거나 수어통역을 통합적으로 포함하는 것이 그 예이다.
“즐거움을 제공하는 극장이라는 장소에서 연기하고 디자인하고 공연하고 창조하는 몸을 바꿀 때, 우리가 사용하는 연극 언어를 바꿀 때 과정과 실행 또한 본질적으로 변화가 됩니다.”
발제의 마무리에 희곡 <나인 프리다>와 <나는 물속에서 무게가 없어>를 낭독공연화한 안경모 연출가와 안정민 연출가, 사회자 김소연 평론가의 대담이 이어졌다. 함께 공연을 만든 장애인 배우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해 아쉬웠지만, 케이트의 발제 내용을 공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는 시간이었다.
<나는 물속에서 무게가 없어> 홍보물
<나는 물속에서 무게가 없어> 홍보물
우리 연극에서 우리는 있어왔다!
세션이 모두 끝나고 한국 공연예술계에는 장애운동과 장애예술운동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축적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한국의 장애예술운동 또한 장애운동과 분리하여 사유하기 어렵다. 일례로 1998년 중증장애여성 3명이 시작한 ‘장애여성공감’의 설립은 남성 중심적 한국 장애인 운동사에서 독자적인 장애여성 운동의 첫걸음을 연 획기적인 사건으로, 활동지원사 제도 도입 등 수많은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냈다.2)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 장애여성공감 춤추는 허리, 극단 다빈나오, 극단 애인, 장애인문화예술 판,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 0set 프로젝트, 핸드스피크 등 현재 한국 공연예술의 경계를 확장하며 활동하는 단체들이 적지 않다. 이들 공연의 지향성,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 그래서 조금 더 거창하게는 다음번에 열릴 ‘제2회 무장애예술주간’에서 ‘한국의 장애운동과 장애예술운동, 그리고 연극’이라는 테마의 발제를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케이트의 말처럼 “Nothing about us without us” 우리 없이 우리에 대한 것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어떤 사회적 관계와 조건 속에서 인간은 존엄해질 수 있는가?” 3)라는 질문은 공연예술 창작 현장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창작 과정에서 이러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질 수 있을 때 한국의 모든 극장에 장애/비장애의 구분을 넘어선 무장애(No limits)로의 감각이 새겨질 수 있지 않을까.
무장애예술주간 (No Limits in Seoul) 소개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2020년 11월‘무장애예술주간: No Limits in Seoul’을 통해 장애와 컨템퍼러리를 주제로 국내외 공연예술 단체들이 장애를 동시대의 맥락에서 다루는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 첫 해인 2020년은 활발한 작업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내외 장애‧비장애 공연예술 단체들을 온라인으로 초청하여 장애라는 주제를 접근해 온 방식과 창작과정을 공유합니다. 우수 작품 상영 및 아티스트 토크, 온라인 포럼, 피칭세션과 낭독극 발표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는 장애예술의 예술성을 알리고, 국내 장애/비장애 예술가들에게는 정보 공유 및 국제교류와 협업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국내 장애예술단체들의 예술적 성장, 장기적으로는 장애예술의 예술적 정체성 확립 및 우수 창작작품 개발로 국내 장애예술의 진흥을 이루고자 합니다.

*무장애예술주간 웹페이지 http://nolimits.kr/2020/
  1.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장애를 사회의 가치, 편견 및 두려움을 반영하는 사회적인 구조로 바라본다. 장애를 치료, 인내, 극복해야 한다는 기존의 의학적 관점을 거부하며, 장애 요인이 되는 것은 장애인의 신체가 아니라 제한적 정상성 개념에 갇혀 있는 사회의 태도와 물리적 장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 <세상 모든 차별에 공감하는 장애여성들>, 2018.01.29. 한겨레21 참조.
  3.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2019)에서 발췌.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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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름

강보름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연출가
연출작으로 <레디메이드 인생>, <우리가 고아였을 때>,<모던걸타임즈> 등이 있다.
rkdekdzh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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