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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된다는 것

이행성 극장 연기워크숍 아카이빙 - 사유하는 감각적 존재-괴물되기

정가영

제201호

2021.05.27

우연히 이행성 극장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연기 워크숍을 연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연기/신체 워크숍이라는 사실은 둘째 치고, 괴물되기라. 설명에는 “특정한 감각을 확장시켜 신체를 낯설게 인식해보고 다시 일상의 몸으로 돌아와 낯선 감각을 느껴보는 작업을 통해 일상에 가려진 원초적인 힘과 야수성을 찾으며 감각을 증폭시켜보면서 신체를 재배치/확장하여 새로운 연결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신체메소드 작업을 할 것”이라 적혀 있었다. 연기 워크숍이지만 연기자뿐만 아니라 일반인 또한 참여할 수 있다고 했고, 고심하던 나는 워크숍 전날에서야 참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나중에 ‘괴물되기’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다들 제목에 호기심을 느꼈다는 걸 알았을 때, 난 왠지 모르게 괴물에서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난 그저 관객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다고 분명히 적혀있었지만, 어딘가 전문적이어야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나의 고정관념 때문에 이런 호기심만으로 참여한다는 것에 대해 망설임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워크숍을 진행하는 내내 나는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괴물이 된다는 것’에 대해 사유해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 보았다.
2주 정도는 개인으로 감각하는 시간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며 감각해보는 시간들이 있었다. 워크숍 내내 중요하게 다뤘던 것 중 하나는 ‘포커스’에 관한 것이었는데, 눈의 초점을 단 방향에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야를 풀어 더 넓게 씀으로써 서로를 감각하며 움직이는 것이 목적이었다. 나는 시야를 넓게 써보기도 하고, 평소와는 다르게 그러니까 ‘괴물’같이 사용해보면서 다른 신체적 언어 없이도 상호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야를 낯설게 사용하는 동시에, 걸으면서 다른 신체들 또한 낯설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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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시작하기 전에도, 작업들 중간에도, 작업이 끝난 후에도. 그러한 교류를 통해 움직임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닌, 정말로 신체로부터 시작하여 감각적으로 ‘사유’하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때론 작업에 참고할 수 있을 만한 자료나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는데, 나는 그러한 교류 속에서 괴물이 되었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였다.
이상(異狀).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 괴물 같다고 느끼는 것을 ‘이상’이라 칭하기로 했다. 계기는 이러했다. 그 날도 우리는 시작 전에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고, 그때 참여자 중 한 분이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코로나 때문에 일상이 이상해졌다고 다들 그러더라고요. 근데 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이게 이상한가? 저는 별로 안 이상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질문들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일상의 기준은 무엇인지, 이상함의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던 끝에 ‘이상’하다고, ‘괴물’같다고 느끼는 것들에 ‘이상’이란 단어를 지칭하기로 했다.
우리는 이후로 계속 작업하면서 서로의 일상에서 ‘이상’을 발견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고, 워크숍 속에서 일상적인/추상적인 움직임을 해볼 때도, 꼬리뼈부터 의식하여 몸을 낯설게 다뤄볼 때도, 신체의 각 부위가 이상하게 변형된다고 생각하며 움직여볼 때도, ‘이상’을 발견해보려 했다. 그 과정 속에 제시된 텍스트들을 각자 골라 외웠고, 마지막 2주에는 워크숍의 목적이었던 신체 메소드 작업을 하기 위해, 자신이 만든 움직임에 대사를 연결해서 시퀀스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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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해온 것들을 토대 삼아 시퀀스를 만들어보는 동안 - 다른 분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 나는 사실 막막했다. 움직임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괴물이 되어보는 게 즐거웠음에도 막상 대사와 연결하려니 내가 ‘이상‘해 보일까 봐, 그러니까 ‘괴물’처럼 보일까봐 두려움을 느꼈다. 굉장히 모순적인 감정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하려는 작업의 제목이 ‘괴물되기’였다는 것을 상기하자 나는 ‘이상’할 수 있다는, ‘이상’해도 된다는 용기가 생겼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러려고 만난 거니까. 그렇게 각자 만든 시퀀스들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또 보았다.
우리는 ‘이상’했다. 우리가 만든 움직임 자체에 집중하면서, 말 자체에 감정을 싣기보단 자신이 하는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감각하고 사유하며 말 하나하나를 전달하려 했을 뿐인데 우리는 그 대사와 움직임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경험하고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가 괴물이 되기로 함을 통해서, ‘이상’해지기로 함을 통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경험을 한 것이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우리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6주간의 여섯 번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이제껏 작업을 하며 어땠는지, 이제껏 해온 연기 방식을 생각해 보며 이 워크숍을 통해 앞으로의 연기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지, 또 워크숍이 앞으로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줄 지에 대한 다양한 말을 나누었다. 나는 “우리가 괴물이 됨으로써 궁극적으로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한 작업을 한 것 같다”고 말했고, 모두들 그 말에 공감을 해주었다.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이 공감을 해주니 괴물이 되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괴물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개념이니까. 스스로의 선택에 몰두하여 감각하고 사유한다면 괴물로 살아가는 것 또한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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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괴물이 되고, 그 주변도 괴물이 되어간다면 그건 다시 일상에서 ‘이상’을 거쳐 일상으로 회귀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가 마스크를 쓰는 것,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해도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이젠 더 이상 ‘이상’이 아닌 일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코로나의 경우는 자신의 선택이 아닌 괴물 되기였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일상의 많은 부분, 우리가 타의적으로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자의적으로 괴물이 되기를 선택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괴물이 되고 그것에 영향을 받은 주변 모두가 하나 둘 괴물이 되어 그것이 다시 일상으로 뒤바뀌는 순간을 만난다면, 그래도 조금은 더 살아갈만하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 이런 생각들을 감각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워크숍을 열어주신 극단 두의 동이향 연출과 같이 참여하고 움직였던 다섯 명의 ‘괴물’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사진출처 : 이행성극장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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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영

정가영
뮤지컬을 전공 중이지만 연극을 더 동경하는 사람이다. 이제까지 관람한 작품들도 경력이라 칠 수 있다면 모를까, 크고 작은 –특히 돈벌이- 경험 외엔 내세울 수 있는 경력이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내가 뭐라도 할 것이라는, 뭐라도 할 사람이라는 건 안다. 그래서 난 경력 대신 자신할 수 있는 포부를 적어본다.
gayong08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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