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보이지 않지만 보이고, 만질 수 없지만 만질 수 있는 세계

어린이·청소년극 창작자 에세이

서현제_무대 디자이너

제202호

2021.06.10

생각하는 사람 마냥 앉아서 6월의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며 흘러가는 중랑천을 바라보았다. ‘아 예술은 무엇이던가?’ 이 쓸데없는 생각이 나를 괴롭게 했다. 참 좋은 날씨 안에서 애써 팔을 흔들며 생각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혹시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누군가 볼까 주변을 살피니 다행히 생각은 날아갔다. 어린이청소년극 창작자로서 글을 써야 하는데, 예술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야 하다니!
본문이미지1
어린이극은 스스로 극장에 찾아오지 못하는 어린이 관객들을 위해 그들의 공간으로 찾아가는 순회공연을 할 때가 많다. 2018년의 초가을, 갑자기 만난 소나기로 급하게 박물관 로비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소리가 울리는 로비와 싸우고, 온몸의 땀구멍이 열린 듯 땀을 쏟아낼 때 쯤 공연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휴~ 숨을 겨우 돌리며 나가는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래로부터 소리가 들렸다.
“와, 정말 예술이네요.”
가끔 매표소 앞에서 스윽 폰을 내밀며 ‘나도 예술가입니다!’를 증명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예술가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심지어 예술 활동만으로 발생하는 벌이로만 먹고 살고 있으니 예술을 업으로 하는 예술가라고 봐도 될 것인데, 예술은 돈 버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래로부터 들리는 저 말에 고맙게도 나의 의심이 그 순간만큼은 사라진다. 한껏 가벼운 마음에 어깨를 덩실덩실 엉덩이를 실룩실룩 거리며 춤이라도 추고 싶어진다.
공연이 끝나야만 들을 수 있을까? 어린이들은 공연을 보는 와중에도 거침없이 자신 느끼는 것을 발화하는데, 그 말들을 들으면 죽비를 맞은 듯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한다. 엄숙한 관람문화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성인관객의 발화는 ‘관크(관람을 방해하는 일련의 행위)’가 되기도 하지만, 어린이의 말은 그 공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인식시켜준다.
코로나19 이후 친구들과 신나게 몸으로 놀아야 할 수많은 만남은 단절되었고, 그러니 당연히 죽비소리는 마스크 너머로 새어 나오면 안 되는 것이 되었다. 마스크로 부족한지 페이스실드까지 착용하고 관람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일부의 감각이 차단된 극장은 조금 조용해졌고, 어린이 관객과 만남을 좋아했던 창작자도 조금 덜 신이 났다. 하지만 이를 계속 참을 수 없었던 몇몇 어린이들은 극장에서 그 옛날 선배 어린이들이 그랬듯이 혁명(?)을 준비했다. 2021년 여름에 가까운 봄 서울의 한 초등학교 강당, ‘친구와 거리를 둬’라는 선생님의 따뜻한 매의 눈을 피해, 다른 반 친구의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인사하는 어린이의 모습은 오늘 무언가 벌어지겠구나, 하고 한껏 기대하게 만들었다.
본문이미지2
사진촬영_김하영
연극은 본디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상상하는 예술이 아니던가? 페이스 실드와 마스크 너머로 함께 그린 연극적 상상은 혁명가들의 입을 근질근질하게 만들었고, 본인이 세상을 말하면서 함께 연극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어디 말뿐일까? 어떤 이는 엉덩이를 들썩들썩, 입술을 삐쭉삐죽 거리며 공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이 그린 세상을 무시하지 않고, 무대 위 창작자는 자신이 그린 세상을 기꺼이 열고, 함께함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연습실에서 보지 못했던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감각할 수 있는 허구의 세계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허구는 거짓이 아니다. 볼 수 없지만 보이는 것이며, 만질 수 없지만 만져지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19로 변한 세상에서 신나게 자신의 세계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걸 혼자만 즐기는 것도 아니고, 함께 상상했으니 이 경험이 어떤 세계의 문을 열지 궁금해진다.
어느 날 식당에 갔는데 부모는 말없이 밥을 먹고 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는 어린이를 봤다. 시선을 땔 수 없는 화려한 영상 앞에 어린이는 눈만 깜빡깜빡하고 있었다. 가끔 어린이의 웃음소리에 폰은 대답 없이 자기 말뿐이다. 이 모습을 어제도 보았고, 내일도 볼 예정이다.
예술이 꼭 쓸모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굶주린 작년을 지나 내가 하는 이 예술이 우리 삶에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 이따금 고민을 한다. 그럴 때 팔을 다시 흔들기도 하지만, 어린이 관객과 함께 만든 연극 세계를 상상해본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 살 것이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명확한 상상에 내 몸을 의지하기 보단, 함께 세상을 상상하면 어떨까?
아! 혁명은 아래로부터 시작된다.

[사진제공_필자]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서현제

서현제 무대디자이너
과정이 아름다운 예술을 꿈꾸며 어린이청소년극을 공부하고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믿으며 산들도 움직이는 연극을 만들기 위해 놀고 있습니다. <사물함>, <죽고 싶지 않아>, <자전거도둑헬멧을쓴소년>에서 예술교육, <성실로 28길>, <토끼 깡충>, <굴러간다, 살아난다!>의 무대디자인, <이야기 비단길> <얼었다 꽁! 풀려라 호!>의 배우로 참여했습니다.
sansmove19@gmail.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