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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고 기록되는 순간들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장례식

윤미희

제202호

2021.06.10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물론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만남이었다.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버티고 버티다가 여기까지 온 것을 알기에 웃으며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으로 5월 22일 ‘행화장례 삼일장’ 마지막 날 행화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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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화장례 삼일장 첫째날_
    포스터 디자인 김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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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화장례 삼일장 둘째날_
    포스터 디자인 이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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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화장례 삼일장 셋째날_
    포스터 디자인 하지훈

상주(喪主)인 서상혁 기획자는 처음 행화탕을 시작할 때부터 이곳의 운명을 시한부라 표현했다. 실제로 행화탕이 지난 몇 년 동안 보내온 시간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남은 삶을 인식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행화탕은 예견된 죽음을 기다리며 가만히 주저앉아 있지 않고 힘내서 남은 시간들을 보내는 일을 해왔다. 목욕탕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후 오래되어 버려졌던 공간들을 마주하고 더 이상 방치하지 않으며 들여다보고 가꾸는 일에 힘썼다. 언젠가 죽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남은 하루가 찬란하게 존재하기를 바라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행화탕 초기에 이곳을 답사한 적이 있다. 막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 때였고 곳곳에 온기를 불어넣기 전이었다. 여기에서 뭘 하려는 거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상주는 이게 되나 싶은 것들을 정말 되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지난 5년 동안 행화탕이 보여준 행보가 그것을 증명한다. 폐허 같았던 곳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흔적 그리고 방문으로 아주 늠름하고 의젓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더 이상 이곳은 버려진 목욕탕이 아니라 때로는 누군가의 작업실로, 때로는 공연과 전시가 펼쳐지는 공간으로, 때로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보존되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하나의 박물관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상주를 비롯하여 정말 많은 이들의 손길과 애정 그리고 이곳을 찾은 예술가들과 문화 향유자들의 열정과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니 행화탕이 없어진다는 것은 우리 도시에 자리 잡았던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이 없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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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화장례 삼일장 2일차_사진촬영 Chad Park

행화탕의 마지막 모습은 말 그대로 찬란했다. 상주는 슬픈 이별의 순간을 하나의 축제로 만들었다. 장례식장은 붐볐다. 다들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을 함께 하고 마지막 모습을 기념하고 기억하고자 시간을 내어 이곳을 찾은 듯했다. 상주에게 조문을 하고 얼마의 조의금으로 성의를 표시했다. 누구는 눈에 담고 누구는 카메라에 담았다. 아는 얼굴을 만나 잠시 모여 대화를 나누고 이곳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목욕탕 타일 벽에 조문객들이 써두고 간 글귀들을 읽어보니 상주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와 자주 못 찾아와서 미안하다는 글이 많았다. 어느 정도 짐작만 했지, 이렇게 빨리 이별이 찾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느닷없이 찾아온 마지막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저마다의 섭섭함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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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화장례 삼일장 2일차_사진촬영 Chad Park

개인적으로 건물 뒤에 있는 집과 작은 창고 공간을 좋아했다. 그곳은 정말 과거에 누군가 살던 곳이다. 오가며 사람들이 들렀던 목욕탕과는 달리, 그 곳은 아주 개인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어느 순간에 누군가는 그곳에서 오지 않는 잠을 청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나누고 누군가는 밥을 먹고 누군가는 밤새 어떤 고민들을 하고 누군가는 피곤한 몸을 뉘였을 그런 공간이다. 조문을 하고 나서 구석구석에 있는 방들과 창고들을 구경했다. 카페가 있는 공간에 비해 비교적 사람 손이 덜 갔던 곳들이지만 가끔 이곳들을 전부 활용한 전시나 공연들도 있었다.
한참을 빙빙 돌며 곳곳에 피어있는 곰팡이들을 마주하고 이제는 정말 사라질 공간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올해 꼭 이곳에서 올리고 싶었던 작품을 끝내 올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을 때까지. 언젠가는 이곳에서의 작업을 꿈꾸며 정말 진하게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도 매번 미뤄왔다. 계속 거기 있을 것만 같아서, 항상 ‘나중에’를 말해왔는데, 이제 다시는 가볼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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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화장례 삼일장 3일차_사진촬영 Chad Park

행화탕이 우리에게서 찬란히 떠나가는 것처럼 나 또한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행화탕을 빠져나왔다. 돌아와서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 기간 동안 이곳을 다녀갔고, 사진과 함께 SNS에 글을 올리며 자신의 추억을 기록해두었다. 이번 장례식은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이곳과 만나고 이곳을 오가며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가꾸고 향유해온 이들에게 충분히 마지막을 기념할 만했다. 상주가 초대했던 네트워킹 파티나 축제를 떠올려보면 항상 그는 사진과 영상으로 모든 것을 열심히 기록했다. 조금 유난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장례식을 통해 그가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쪽에 마련된 아카이브 영상을 보며 나를 포함한 여러 조문객들이 한참을 거기에 서 있었다. 잠시 존재했다가 이내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들 속에서 아카이빙은 얼마나 중요한가. 모든 것은 만나면서부터 시작되고 이루어진다. 우리 모두 유한한 존재이지만 함께 모여 하나의 공간을 점유하고 향유하며 벌어지는 일들과 그곳에서의 시간들을 부여잡기 위해 기록하고 남겨둔다는 것은 어쩌면 허무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행화탕 주변에는 크고 높은 건물들이 많다. 맞은편 빌딩에는 올리브영과 스타벅스가 입점 되어 있고 조금만 걸어 나오면 유명한 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2009년 철거된 홍대 두리반이 떠오른다. 당시 수많은 인디 밴드들이 모여 파티를 혁명으로 만들자고 외치며 시위도 했었다. 지금 그곳에는 크고 웅장한 복합상영관 건물이 들어서있다. 도시 곳곳에 있는 많은 빌딩들과 높은 아파트들은 모두 어떤 공간을, 작고 오래된 집들을 부수고 딛고 서 있는 것이다. 앞으로 오년 뒤, 십년 뒤에 이곳에는 어떤 건물이 들어와 있을까. 아마도 그곳은 다시 누군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갈 수 있는 카페이거나, 어쩌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어떤 공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 그곳을 지나가며 아, 여기 예전에 목욕탕이 있었지, 그리고 예술인가 뭔가를 한다며 사람들이 북적이던 때도 있었지, 그렇게 추억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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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화장례 삼일장 3일차_사진촬영 Chad Park

상주는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소박하게 시작해서 다시 여러 사람들을 불러 모을 것이고 그곳을 모두 함께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다. 축제가 혁명이 되지 않아도 좋다. 축제가 축제로 끝나도 괜찮다. 다만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기록되기를. 그리하여 또 다시 만나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축제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사진제공 : 축제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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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희

윤미희
희곡 쓰는 윤미희. 2015년 1월, 연극in에 희곡 <상상해볼 뿐이지>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나에게는 얼굴을 쓰다듬을 손이 없다>, <물고기 뱃속>, <성난 파도 속에 앉아 있는 너에게> 등을 썼다.
ymhlife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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