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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작가의 사심을 담아서

‘다른 손’ 희곡 공개모집_‘현장감상’회

서동민

제203호

2021.06.24

실은 현장감상이라는 말 자체가 처음이었다. 뚜렷한 목적보다도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행사장에 향했다. 웹진 연극in '다른 손' 희곡 공개모집 ‘현장감상’은 지난 6월 16일부터 19일까지 총 4일 간 서울연극센터에서 진행되었다. 나는 그 중 첫째 날 첫 번째 회차에 참여했다.

서울연극센터의 로비에 도착하자 간단한 기획 의도와 관람 방식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하반기 연극in에 게재될 희곡을 뽑기 위해 독자들과 동료들을 초대했다. 각 작품을 읽고 간단한 감상평을 익명으로 남길 수 있다. 최대 네 개까지의 작품에 사심을 담아 투표할 수 있다.’ 빈틈없는 안내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명확한 상이 그려지진 않았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 안은 그 밖과는 딴판으로 어둡고 고요했다. 드문드문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고, 딱 그 범위를 밝힐 정도의 스탠드 불빛이 켜져 있었다. 책상 위에는 꼭 대학가 술집의 방명록 같은 메모장이 놓여 있었다.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자, 어느새 작은 음악 소리도 들려왔다.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는 차분한 연주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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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감상 대상작들을 읽다 보니 새삼 작품의 주제가 눈에 들어왔다. 독특한 관람의 형태에 신경을 쓰느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 희곡들은 모두 ‘다른 손’이라는 같은 주제를 고민한 글이었다. 같은 주제의 희곡들을 하루 안에 나란히 살펴보는 경험이 내게는 거의 처음이었다. 소설집과 다르게 희곡집은 앤솔로지로 접할 기회도 없었다.
독자이자 동료의 입장에서 그 낯선 경험이 반가웠다.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다른 손’이라 명명될 수 있는 타자들의 이야기, 전에는 희곡의 주역이 될 수 없던 존재들의 대사들, 혹은 타자성 자체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들의 시선까지. 특히, 내가 아직 인식이 부족한 ‘동물권’에 관해 다양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안에 담긴 동료 작가의 깊은 고민들을 엿보며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비로소 현장감상의 의미에 대해서도 조금 더 납득할 수 있었다. 나는 내심 희곡을 오프라인으로 찾아가 읽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반신반의했었던 것 같다. 막상 참여해 보니, 공간이 하나로 묶어주는 몰입의 경험이라는 것이 분명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나도 행사에 초대된 역할을 할 때였다.
나는 사실 나의 투표가 게재 작품의 선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과도하게 책임감을 느꼈다. 그 때문에 아예 벽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 작품 읽기에 집중했다. 25편의 작품을 골고루 읽기에 주어진 시간이 좀 짧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되도록 모든 작품에 구체적인 장점과 아쉬운 점이 하나씩 담긴 감상평을 남기고자 노력했다.
감상평을 남기는 용지에 지금 읽고 있는 희곡들이 ‘작가 분들의 소중한 작품’임을 상기시키는 문구가 적혀 있는 점도 좋았다. 다른 어떤 행사에서 참여자들의 솔직한 의견을 듣는다는 명목으로 아예 주제 선정 자체나 희곡을 창작하는 시도 자체에 대한 비방을 들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정 없는 평들에 상처 입는 작가들이 생길 수 있으리라. 다시 한 번 밝히지만, 내게는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두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무엇보다 부담스러운 것은 최대 네 개의 작품에 표를 행사하는 과정이었다. 스스로 공정성에 관해 끊임없이 질문했던 것 같다. 가나다순으로 읽은 탓에 뒤쪽의 작품에 상대적으로 덜 집중하게 된 것은 아닐까? 결국, 방역을 위한 10분의 쉬는 시간 이후에 두 번째 회차에도 참여해 뒤쪽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읽었다. 특히 내게 더 와 닿아 작은 표시를 해뒀던 작품들 중 네 개를 골라 투표용지에 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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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에 대해 고민한 과정은 내게도 작은 깨달음을 주었던 것 같다. 예컨대, ‘내가 과연 누구의 작품에 표를 행사할만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엔 곧 이런 질문이 따라왔다. ‘애초에 표를 행사할 자격이 따로 존재하는 것인가? 그런 자격은 주로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있었나?’ ‘내 주제에 아쉬운 점까지 평으로 남기는 게 무례한 일은 아닐까?’ 하면 곧, ‘나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내 작품에 대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감상이 존재했다면? 선정이 안 된 공모전에서 그나마 덜 답답하지 않았을까?’ 하는 식으로. 현장감상에 참여한 분들이 아마 심사라는 제도에 대해서도 저마다의 감상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투표용지는 꼭 접어 투표함에 넣었다. 그 옆으로 누군가 한 번 사용했던 희곡집이나 옷, 장난감 등을 나눠주는 공간이 있어서 좋았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고민하는 전체 기획 의도와도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장감상에 참여한 분들에게 제공하는 기념품도 튼튼한 에코백과 비건 간식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감상의 시간이 조금 빠듯했다는 사실이었다. 사심위원들은 최대한 많은 작품들을 독자에게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1차 선정작이 좀 더 적은 수였다면 어땠을까? 혹은 감상의 시간이 애초에 더 길게 계획되었다면, 아마 더 다양한 감상의 양상이 펼쳐졌을 것 같다. 현장감상 참여자들이 작품을 가지고 함께 대화하고, 같이 소리 내 읽어볼 수 있는 짬이 존재하는 제 2회, 3회 행사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작품을 써준 작가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 꼭 내가 글을 쓰는 환경과 비슷한 공간에서 여러분의 작품들을 읽으며 함께 웃고 감동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내 글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다지기도 했다. 우리는 이처럼 익명으로 만났지만, 결국 서로의 이야기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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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민

서동민
웹진 '연극in'에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소개팅>, <혜수와 올퓌>를 게재했습니다.
웹진 ‘비유’에 <우아한 연주>를 게재했습니다.
주로 퀴어 이슈에 관한 글을 쓰고, 과학 소설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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