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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전성시대, 공정계약

아르코 주최 : 출판 분야 창작자 대상 표준계약서 설명회

강한나

제204호

2021.07.15

‘극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애매함’이란 어떤 숙명과도 같은 것인가 하는 이야기들은, 아마도 본지의 극작가 관련 기사들에서 여러 차례 회자 되어 왔을 것이다. 텍스트를 매체로 작업을 하긴 하지만, 지면과는 딱히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다. 가까운 듯 먼 육촌 친척 같달까? 사실 팬데믹 이후로는 지면도 무대도 팔촌쯤은 되는 것 같다. 괜스레 쓸쓸해졌다가, 불현듯 내가 웹진 [연극in]의 잠재적 필자임을 기억해냈다.
연극인들에게 출판 분야는 남의 동네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실상 본지의 필자들은 모두 출판 분야 저작자에 해당한다. 더욱이 디지털 전환과 온택트라는 매체 환경의 격동기에,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텍스트 기반 콘텐츠들을 공유하고 발표할 수 있는 매체들도 점점 더 다양해질 것이다. 올해 2월 정부는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 개선안 및 신규안 10종(이하 ‘문체부표준계약서’)을 고시했다. 문체부-작가단체-출판계 등 다자간의 합의로 만들어진 문체부표준계약서는 출판 분야로서는 정부에 의한 첫 고시인 만큼, 관련 쟁점들에 대한 활발한 논의들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 6월 23일 오후 2-4시, 표준계약서 및 관련 법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유사한 사례를 통해서 창작자 스스로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출판 분야 창작자 대상 표준계약서 설명회’(이하 ‘설명회’)를 온라인 생중계로 마련했다. 나와는 무관해 보이는 것 같지만 실은 당사자로서 꼭 알아야 할 정보들을 얻기 위해, 사전에 신청하여 설명회를 시청했다. 1부는 분야별 출판 계약 실태와 문제점, 해결방안 등에 대한 실태발표, 2부는 불공정계약을 예방하기 위한 표준계약서와 관련 법령 등의 교육으로 진행되었다. 발표와 교육 내용 중 몇 가지 집중적으로 공유하고 싶은 쟁점들이 있어서 짚어보려고 한다.

출판권과 배타적발행권은 별개다

흔히 출판권 계약을 맺으면 출판 주체가 해당 콘텐츠와 관련한 모든 발행 권한을 배타적으로 독점할 수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를테면 종이책을 출판할 때 출판권만 명시된 출판계약서만을 체결하고서는, 저작자에게 통보도 없이 임의로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등 매체형식이 다른 엄연히 별개 형태의 도서콘텐츠를 그냥 발행해버리는 출판사가 있다는 것이다. 출판사나 플랫폼에 따라 특화된 매체형식들이 각기 다 다르기 때문에, 저작자 입장에서는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북클럽 등을 각각 독립적으로 진행하고 싶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제반 발행 권한들을 출판 주체가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싶다면 ‘배타적발행권’ 계약을 별도로 체결해야 한다. 문체부표준계약서는 이 출판권과 배타적발행권 설정을 각각 별도의 계약서로 분리하고 있다. 전자 출판과 오디오북을 배타적발행권 설정 매체로 상정하고 있는데, 그 외 형태의 매체로 배타적발행권을 설정하고자 한다면 해당 매체의 특성에 맞는 계약서를 꾸며서 별도의 계약서작성을 하면 된다. 출판권과 배타적발행권이라는 개념은 공연 분야로 치면 공연권에 비추어 생각해볼 수 있겠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극작가들이 집필한 희곡의 경우 저작자인 작가가 자신의 저작물을 스스로 공연하거나 타인에게 이를 하도록 허락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배타적 권리인 공연권을 가지게 된다. 나는 이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 혼자 선에서 집필한 초고 혹은 완고 버전은 무조건 저작권등록을 해놓는다. 많은 경우 극작가 혼자서 공연을 하는 경우보다는 다른 작업자들 혹은 공연단체와 협업을 하게 될 텐데, 이 경우 공동창작을 거친 완성된 연극저작물은 공동저작물이기 때문에 그 프로덕션에 공연권이 귀속된다. 단, ‘그’ 버전에 한해서만. 추후에 작가가 작가 버전 대본으로 다른 작업자들과 전혀 다르게 연출되는 또 다른 공연을 창작하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역시 공연제작자가 공연이용권을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싶다면 계약서작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저작권법을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연극에 대한 애정’과 ‘동료애’로 무마되거나 위계에 의해 봉합되는 경우가 있어 왔다.

표준계약서가 되려면 그 계약에 관여하는 당사자들끼리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표준계약서’라는 개념은 법적 용어는 아니다. 다시 말해, 표준계약서가 말하는 ‘표준’은 어떠한 법적 효력이나 권리, 강제성을 띠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버전만 표준계약서로 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출판 분야의 경우 너도 나도 표준계약서라고 명명하고 있는 수많은 계약서 버전들이 있다.
올해 초, 그러니까 문체부표준계약서가 고시되기 얼마 전에 많은 창작자들의 공분을 샀던 ‘출판계통합표준계약서1)라는 버전도 있고, 심지어는 개별출판사들별로 각자 자기들만의 입맛에 맞는 표준계약서 버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설명회 2부의 ‘창작자들이 유의해야 할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 활용방안’ 발표를 진행한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는 “최소한 표준계약서가 되려면 그 계약에 관여하는 당사자들끼리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출판 분야의 경우 표준계약서 양식을 만들 때, 앞으로 그 계약서를 이용하게 될 출판업자와 창작자 각각의 당사자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합의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현재는 문체부표준계약서 양식이 유일하다. 따라서 계약을 하게 될 때, ‘표준계약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절대 공정한 문서라고 맹신하고 무조건적으로 계약사항에 따라 계약을 이행할 것이 아니라, 해당 계약서양식의 출처를 꼭 확인하고, 스스로에게 불리하거나 불공정 조항이 있다고 판단되면 내용들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공연 분야, 그리고 생활 전반의 각종 다양한 계약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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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

저작권은 세부적으로는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저작인격권은 그 저작물을 처음 만든 저작자의 일신에 전속하는 권리로, 계약 등으로 양도가 불가능한 저작자 고유의 권리다. 저작물을 공표하거나 공표하지 않을 것을 결정할 권리인 ‘공표권’, 저작자가 저작물의 원작품이나 그 복제물에 또는 저작물의 공표에 있어서 그의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하거나 표시하지 않을 권리인 ‘성명표시권’, 법에 명시된 경우를 제외하고 저작자가 갖는 그 저작물의 내용, 형식 및 제호의 변경을 금지하여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인 ‘동일성유지권’이 저작인격권에 해당한다. 저작인격권과는 달리 저작재산권은 계약을 통해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거래할 수 있다. 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2차적 저작물작성권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권리들은 계약상 약관 외에도, 예술인복지법이 정한 예술인에 해당하면 이 법에서 정하는 특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예술인이 문화예술기획업자와의 계약관계에서 불공정한 피해를 입었다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예술인신문고에 신고해서 소송지원을 받거나, 문체부로부터 행정처분을 받게 할 수 있다.
근래 들어 읽은 트렌드/미래예측 카테고리의 책들은 대체로 2020년대 ‘대중’문화의 특징 중 하나로 ‘마이크로의 다원화’를 꼽았다. 출판 분야에서 공정계약 논의가 활발해지게 된 것도, 그간 공신력을 독과점한 제도권 매체 중심의 등단문화 카르텔이 해이해지고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문화적 배경에서였다. 그러니 창작자들 각자의 고유성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독자, 관객, 대중과 만나는 자신만의 길을 믿고 나아가시길 바란다.
설명회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보기가 가능하고, 발표자료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누리집(www.kpipa.or.kr) 메뉴탭의 ‘정보및참여’ > ’통합자료실’ 게시판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1. 올해 1월 15일 대한출판문화협회를 비롯한 출판계는 그들만의 ‘출판계통합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문체부 고시를 앞두고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저작권자인 작가의 의견 수렴이나 합의가 전혀 없이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계약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계약기간 10년과 동일 조건 자동연장, 2차 저작물작성권 위임, 출판권과 배타적발행권 동시 설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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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나

강한나 극작가
희곡을 쓴다. 좋은 희곡으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극작가로서의 목표다. 이 판타지 같은 목표를 현실에 좀 더 가깝게 만들어볼 수는 없을까 고민하며 웹희곡플랫폼 ‘희곡마켓’이라는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다. 자연인으로서는 우주 존재들과 사이좋게 공생하며 돌보는 삶이 인생의 목표이자 삶의 의미이고 희곡 쓰기는 그러한 삶의 방식 중 하나다. 최근 발표작은 본지 [희곡] 코너 ‘다른 손(hands/ guests)의 희곡 쓰기’ <극장no.005068jnj0b6>
www.facebook.com/PsycheL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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