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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축.자] 여름엔 페미니즘 주사 한 방!

페미니즘 연극제

이리_비건 페미니스트 연극배우

제204호

2021.07.15

연극in 웹진은 여름의 공연예술축제를 대상으로 7월 한 달간, 해당 축제가 추천하는 최고의 후원자에게, 자신이 덕질하는 축제를 대놓고 자랑하는 꼭지를 마련하였습니다. 해당 기사는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서, 그 내용의 면면은 웹진의 편집방향과 다소 다를 수도 있습니다. 코너의 참여를 원하는 축제와 필자가 있다면 webzine@sfac.or.kr으로 기고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편집자주.
페미니즘 연극제가 흥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 이게 무슨 말인가. 7월은 축제의 달이다. 코로나 시국에 축제가 웬 말인가. 7월에는 해마다 페미니즘 연극제, 변방연극제,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고, 각 연극제의 티켓 오픈일에는 피켓팅이 벌어지고, 연극제의 개막작은 주로 흥하고, 잘되건 안 되건 잘 보건 못 봤건 개막작에 대한 이야기가 작업자들 사이에 돈다. SNS에서도 개막작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다. 올해로 무려 4회째를 맞는 그 이름도 투명한 페미니즘 연극제. 동료들은 연극제 티켓 오픈 날 몇 편을 건졌다, 남는 티켓이 있느냐 서로 연락을 돌렸고 똥손이자 올해도 연극제 기간에 연습을 하게 된 나는 참전도 못 하고 군침만 흘렸다. 아니, 사실 해마다 참가작에 출연하던 입장에서 티켓팅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이 포지션이 낯설기만 하다.
1회 페미니즘 연극제에는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으로, ‘Action 입을 대다’로 참여했었고, 3회에는 ‘스탠드업 그라운드업 2’와 부대행사였던 ‘연극을 퀴어링’에 참여했다. 올해는 준비하고 있는 공연 연습기간이 연극제 기간과 겹쳐서 많은 공연을 보지 못하고 있고, 부대 행사인 ‘페미니즘과 기후위기’에 몸담은 바람컴퍼니 창작자가 발제자로 참여하여 비대면으로 진행이 되었으나 모든 순서가 끝난 후에 소감을 말하는 것만 들을 수 있었다. 이렇듯 해마다 페미니즘 연극제는 회자되는 공연들을 남겼고, 새로운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옆에 있던 동료를 다시 보는 계기였고, 아 저 이야기를 연극으로 저렇게 할 수 있구나의 깨달음을 얻어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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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다행히 동료분이 티켓팅 해놓은 공연을 보러 갈 기회가 생겼다. <사라져, 사라지지마>를 혜화동 1번지에서 보았다. 디지털 성폭력과 학교 미투라는 무거운 주제가 등장인물들의 청소년성과 잘 만나 ‘사라지지 않아’라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던지는 수작(秀作)이었다. 마지막에 실제 학교 미투 활동가들의 대자보가 등장하는 장면이 압권이었고, 내가 본 공연 중에 역대급으로 카톡 화면이 가장 어색하지 않게 등장한 연극이 아닌가 생각한다. 교복 입은 모습이 낯설지 않은 소위 ‘청소년 연기 전문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연극제에서 동료들을 만나고 동료들의 생각을 만나며 ‘그래, 우리가 연극계에 있고 이런 공연이 올라가고,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들이 있어’ 하며 기운을 얻기도 하지만, 무겁고 어려운 주제들을 과감히 선택하여 정면 돌파하는 과정에서 연극 언어를 벼리고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연들을 만나게 되면, 그래 우리가 이렇게 연대할 수 있어, 비록 현실이 엉망이지만 활동하고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고 거기에 힘을 보탤 수 있어, 연극 하는 게 이럴 때 보람되지 하면서 직업 만족도가 (왜 내가) 올라가기도 한다.
들어보지 못한 연출이나 배우나 창작집단이 연극제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는 기쁨을 얻기도 하고, 익히 알던 작업자들을 만날 때 그들의 진면목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연극인이 되어서 연극제를 하는 건지 연극제가 있어서 연극인이 된 것인지. 순서가 중하겠는가! 중한 것은 오직 티켓팅!! 연극제는 정해진 기간 하고 끝나지만, 브로셔에서 보고 소문으로 들은 작업자나 공연은 다시 극장에서 만날 수가 있다.
또 페미니즘 연극제 하면 제휴공연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제휴공연이라는 제도가 있는 연극제가 또 있나 싶을 정도로 페미니즘 연극제가 잘한 일 중에 하나가 아닌가. 재작년에 제휴공연으로 <웨이크업 투 메이크업 2>, <결투>, <레몬사이다섬머클린샷> 등을 보았다. 이렇다보니 페미니즘 연극제가 없던 시절의 대학로가 기억나지 않는다. 여성서사 공연이 너무 없다는 말은 이제 한국 연극계에서는 하기 어려운 말이다. 물론, 공연계에 유리천장, 운동장 기울어짐, 경력단절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한국 연극계에 여성서사가 없다고 하면 고개를 들어 페미니즘 연극제를 보라고 할 수 밖에. 뭐 알 관객들과 관계자들은 이미 알기에 이렇게 티켓팅이 치열한 것 아니겠는가.
프린지나 변방 연극제 등의 연극제 참여 작가나 작품에 대한 관심도도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라인업이나 연극제의 성사 여부, 성패 여부에 대한 관심은 페미니즘연극제가 월등히 높다. 페미니즘 연극제는 ‘올해는 누가 나올까, 어디서 할까, 좀 더 페미니즘적인 공연들이 올라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올해 공연들이 다루고 있는 이슈는 뭘까’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연극이 시대를 반영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연극이 먼저 질문을 던질 수도 있지 않은가. 연극이 어떻게 동시대와 만날 것인지는 작업을 할 때마나 고민하는 부분이나 연극제 단위로 이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시각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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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연극제가 주장하듯이 대학로에 페미주사 한 방을 놓아주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접하기 전에 우리 모두 빻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것처럼, 페미주사는 때마다 느슨해지지 않게 한방씩 맞아줘야 하는 것이다. 고삐를 늦추면 내면 깊숙이 자리한 빻음이 언제 튀어나올지, 내안의 페미니스트가 언제 퇴근해버릴지 모른다. 우리가 이런 호사를 누리면서 페미니즘 연극제 공연을 보고 동료들과 대화한지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아다시피 ‘아직도’ 갈 길은 멀다. 혹시나 내 안의 빻음이 스멀스멀 튀어나오려 하고 내안의 페미니스트가 출근을 안 한다 싶으면! 책장에 꽂힌 좋은 말씀 한 권 뽑아 읽어도 되겠지만 페미니즘연극제로 달려가서 페미주사 한 방 맞아야 하는 것이다. 왜 연극으로, 춤으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해야 하는지는, 연극제가, 개인 작업자가 증명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연극제가 흥할 만 하니까 흥하는 것이다. 그러니 잔말 말고 티켓팅에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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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이리
비건 퀴어페미니스트 연극배우이자 달리기를 하는 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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