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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축.자] 변방에 선 낯선 감각들의 축제

서울 변방 연극제

김일송_공연 칼럼니스트

제205호

2021.07.29

연극in 웹진은 여름의 공연예술축제를 대상으로 7월 한 달간, 해당 축제가 추천하는 최고의 후원자에게, 자신이 덕질하는 축제를 대놓고 자랑하는 꼭지를 마련하였습니다. 해당 기사는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서, 그 내용의 면면은 웹진의 편집방향과 다소 다를 수도 있습니다. 코너의 참여를 원하는 축제와 필자가 있다면 webzine@sfac.or.kr으로 기고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편집자주.

가끔 여럿이 모였을 때 말하는 궤변이 있다. 문화와 예술의 개념 차이에 대한 궤변으로, 마치 샴쌍둥이처럼 붙여 사용하지만, 어쩌면 매우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요설이다. 그럴 때 늘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여러 예술가 중에 당장 떠오르는 화가 이름 하나만 거명해보세요. 돌아오는 대답의 십중팔구는 피카소와 고흐다. 그때 이렇게 말한다.
“그들 대부분은 새로운 사조의 창시자입니다. 우리는 기존의 관습을 추종하는 이들보다는 유행하는 사조를 거부하고, 동시대의 상식에 의문을 던지며 새로운 길을 여는 이들을 예술가라고 부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술은 문화와 달리 단독자로서 고유성이 중요한 개념이 아닐까 싶어요. 원으로 치면, 문화에는 동질감을 주는 구심력이 작용하고, 예술에는 거기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작용하는 게 아닐까.”.
사실 문화와 예술 두 개념을 애써 구분할 까닭은 없다. 또한 장인(匠人)이나 시민 역시 예술가인 시대에 저런 인식은 좀 구태한 구석도 있다. 안 그래도 좁은 예술가의 자리를 더 협소하게 만드는 문제도 있다. 강조하고픈 건, 원의 바깥으로 향하려는 개인들의 의지가, 한 사회의 인식 지평을 넓히는 동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사설이 길었다.

그러면서, 당장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축제로 드는 예 중 하나가 바로 서울변방연극제다. 축제는 1999년 자유로운 창작 정신과 실험 정신을 모토로 ‘수작1_젊은 연출가들의 속셈전(戰)’이란 이름으로 시작해, 2005년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개최되고 있다. 여기서 이 이상으로 축제의 역사를 복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나온 발자취보다 중요한 것은 나아가려는 방향에 있을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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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변방연극제 선언문 (2012~)
서울변방연극제 선언문은 그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나침판 구실을 한다. 서울변방연극제는 동시대의 연극성을 새롭게 조망하고 질문하는 연극제이다. 그리고 연극과 연극, 연극과 삶과의 경계에서 균열과 아름다움을 사유하는 연극제이다. 또한, 불가능한 것들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연극제이며. 아울러 이상한 것, 낯선 것, 잡것들의 미학을 추앙하는 연극제이다. 마지막으로 서울변방연극제는 연극이 아닌 모든 것들의 연극제이다.
위의 선언문을 통해 서울변방연극제가 중앙을 목적지로 삼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변방에서 더 먼 변방으로, 더 먼 변방으로 끝없이 바깥을 향한다. 그렇게 서울변방연극제는 우리의 인식과 감각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선언문에서는 궁극적으로 연극의, 그리고 예술의, 결국은 삶의 경계마저 허물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마저 엿보인다.
그것이 단순히 구호로만 그치는 게 아님은 그간의 발자취가 증거 할 것이다. 그건 서울변방연극제를 통해 선보인 작품들은 형식적으로 관습적인 서사구조를 깨는 작품부터 연극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주제적으로는 개인의 사소한 일상을 담는 작품부터, 당대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하는 작품, 나아가 전 지구적 문제를 환기하는 작품까지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한 마디로 변방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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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변방연극제2021 포스터

그러나 보다 강조하고픈 건, 외부적으로 보이는 작품보다 축제 자체의 운영과 구조에 있다. 대개의 축제가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데 반해, 서울변방연극제는 2015년부터 크라우드 펀딩을 도입하여 성공적인 모델을 안착시켰다. 한편 2019년부터 힘주어 실시하고 있는, ‘워크룸’과 ‘토크’도 소개해야 할 듯하다. 물론, 저것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그럼에도 서울변방연극제의 ‘워크룸’과 ‘토크’를 강조하는 건, 그것이 종래의 워크숍이나 관객과의 대화와 다른 변별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워크룸’에 대해 축제의 공동예술감독인 아드리아노는 “어떤 문제의식과 철학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지, 결과적으로 예술을 만드는 과정이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누는 것”으로 정의한다. ‘토크’ 역시 공연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혹은 단순 질의응답을 넘는 전문적 수준의 토론으로서 기능한다.
서울변방연극제에서는 워크룸, 토크가 공연 못지않은 비중으로 진행되는데, 이에 대해 이경성 공동예술감독은 “예술가를 중심에 두고 과정에서 발현되는 가치에 주목, 이를 관객들과 나누며 자연스럽게 동시대 이슈에 대한 확장된 담론의 생성을 지향하고 있다”라고 압축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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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변방연극제2021 토크의 장면 (사진 서울변방연극제 ⓒ 한민주)

서울변방연극제의 공식 영문명은 ‘Seoul Marginal Theatre Festival’이다. 변방을 뜻하는 여러 단어가 있는데, 그중 ‘marginal’은 ‘중요성이 미미한’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너무 겸손한 표현이 아닐까. 저 위치에 ‘marginal’의 자리에 더 진취적인 느낌의 ‘frontier’가 놓여도 의미의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나아가 여기서 선보이는 작품들 대개가 전위적이라는 의미에서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표현 또한 어울릴 듯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 인식의 지평을 원이라 할 때, 서울변방연극제는 변방의 사유와 감각으로 그 원을 뚫고 나가려는 힘의 하나일 것이다. 서울변방연극제는 변방의 상상력으로 중심을 뒤흔들고, 나아가 탈중앙, 탈권위, 탈권력을 꾀하는 불온한 움직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움직임 덕에 우리 사회의 원은 조금씩 넓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으로 인해 우리는 다음 세대로, 시대로 진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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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송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서강대 불문학과 졸업. 문학(희곡)전공으로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무대예술을 소개하는 공연문화월간지 <씬플레이빌> 과 서울무용센터에서 발행하는 무용웹진 [춤:in] 편집장을 역임했다.
ilsong75@gmail.com / 페이스북 Il-Song Raphael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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