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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가 당연한 세계에서 퀴어를 말하기 - <드랙x남장신사> 드랙킹콘테스트

문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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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킹콘테스트는 2022년 <드랙x남장신사> 재공연 이전에 총 5회의 공연을 했다. 홍대 지하 클럽에서 열렸던 1, 2회 공연과 3회 <드랙x여성국극>, 4회 <드랙x남장신사>, 5회 <드랙x트랜스 이갈리아>까지. 드랙킹콘테스트(이하 드킹콘)는 2018년 10월, 홍대 클럽 명월관(MWG)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시스젠더 게이 남성을 위주로 형성되는 드랙 문화에 저항하고 지정성별 여성에게만 벌어지는 신체 검열에 대항하여, ‘유두 노출’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성별 이분법에서 자유롭고 안전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드랙킹콘테스트가 시작됐다. 기획 멤버로는 금혜지(금개), 김다원(아장맨), 조소라(소다), 최현진이 있었고, 이중 소다는 3회 드킹콘까지 꽤 많은 일을 도맡아 했었다. 당시에 나는 퍼포머로 참여했는데, 이때만 해도 모두 친구였기 때문에 구분 없이 서로의 일을 도와서 했다. 클럽을 대관해서 1, 2회 공연을 진행하면서 하위문화와 예술의 경계에서 끊임없는 질문을 받았다. 매회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지만, 이 공연이 언제까지 기획진의 사비로 만들어지고, 티켓값으로 채워지고, 퍼포머는 2만 원을 받아 가는 식으로 진행될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드킹콘이 지속가능성 있는 프로젝트가 되려면 공적 지원금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여성, 괴물>에서 활동하던 홍지수 기획자와 함께 서울문화재단 지원금을 신청했다.

지원사업 선정 후, 2019년, 제3회 드킹콘 <드랙x여성국극 춘향전>과 <허볼 Her ball>, 2020년, 전시 <씨 뿌리는 여자들>을 만들었다. 애초에 드랙 페스티벌로 지원한 사업이 개별로 분리되기도 했고, 하나의 사업만 해도 부족한 예산에 세 개의 사업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참여한 인원의 인력으로 대부분의 일이 진행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획진 활동비 지원이 없었더라면 정말 힘들 뻔했다) 이 중, <드랙x여성국극>은 정동극장 정동마루에서 2회 공연을 했다. <춘향전>의 각색은 나와 김다원, 김동은(시몬), 명휘(아키나)가 했고 최하은이 연출을 했다. 나는 기획과 각색팀에서, 춘향전의 각 캐릭터에 퀴어적 성격을 부여하고, 캐릭터에 맞는 이유를 이들에게 주어진 서사에 덧붙이는 작업을 했다. 이때는 크레딧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DJ 레몬튠(마노)이 음향을 하고 석자은이 조명을 했다. 김성연(변사또), 달해빛(향단), 라소영(월매), 아장맨(몽룡), 유승연(춘향), 이지구(방자), 최명휘(멀티맨)와 하우스 오브 허벌이 기생으로 출연했다. 알파 남성 이몽룡의 폭력성, 춘향과 향단의 <아가씨>적 서사, 월매의 부치 시절 이야기, 여성성을 가진 모든 것을 질투하던 디나이얼 퀴어 변사또. 3회 드킹콘 <드랙x여성국극>은 우리가 처음으로 연극 형식으로 올렸던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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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공연의 경우, 지원사업 규모에 비해 세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누적된 피로가 있었다. 이후, 드킹콘에는 나와 아장맨이 남았고, <드랙x남장신사>와 <드랙x트랜스 이갈리아>를 만들었다. 2021년 12월에 있었던 5회 공연 <드랙x트랜스 이갈리아>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트랜스젠더 혐오가 만연했고, 많은 연대자들이 세상을 떠난 상황에 마주한 우리는 상실과 무력감 대신 광기와 야망의 무대를 선보이고자 했다. 기획 초반에는 이갈리아를 기반으로 한 대본도 써보았지만, 나는 결국 1, 2회 드킹콘과 비슷한 형식의 공연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퀴어가 왕이라는 세계관 아래, 3일 동안 다른 라인업으로 모어, 에디, 서연, 색자, 아장맨, 안평, 잭스터, 페논이 각자의 무대를 선보였다. 수어 통역의 경우, 이때는 당사자의 드랙쇼 형식이 강했기 때문에, 나는 이런 무대에서 통역이 가능할지 걱정이 됐다. 이때, 한국농인LGBT에서 협력 단체로 작업하자는 제안을 해주었고, 5명의 활동가가 농접근권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며 각자 맡은 퍼포머의 드랙을 하고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나는 이들을 빛내기 위해, 무대에 별도로 마련된 빛나는 작은 무대 위에 오르는 방식을 연출했다.

다시 4회 <드랙x남장신사>로 돌아가면, <드랙x남장신사>는 2020년 처음 시작해, 선배 퀴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2020년 초만 해도, 레즈비언 가시화라는 말이 있을 만큼, 레즈비언도 그리고 그 선배님들의 삶도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남장신사는 인생사 다큐멘터리와 공연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로, 선배들을 인터뷰하고 영상을 만드는 작업이 먼저 이뤄졌는데, 명우형을 인터뷰하면서 명우형이 어린 시절 세종문화회관과 인연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4회 공연은 세종문화회관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회 세종문화회관 초연을 준비하면서 연습을 보다 보면, 모든 장면이 눈물 포인트였지만 공연 당일, 나의 울음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터졌다. 무대의 조명이 켜지고, 호스트 아장맨이 걸어 나왔다. 그가 말한다. “제4회, 드랙킹콘테스트” 그 한 단어. 우리가 있는 곳은 지하 클럽이 아닌 광화문 한복판 세종문화회관이었고, 관객들은 바닥이 아닌 단차가 있는 객석 의자에 주르륵 앉아 무대를 지켜봤다. 완벽한 조명과 더불어, 백스테이지에는 이 모든 걸 함께 준비한 감독님들이 있었다. 주마등처럼 지난 공연들이 지나갔다. 하위문화라고, 예술이 아니라고, 연극이 아니라고, 그래서 너희는 뭐냐고, 나 자신도 매번 혼란스러워하며 좌충우돌 해온 시간들. 드랙킹콘테스트의 시간들. <드랙x남장신사>가 정말로 어떤 것보다 감격스러웠던 점은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하는 전문적인 연출, 배우, 디자이너, 감독님을 만나 우리가 기획한 것 그 이상의 공연을 만든 것이다. 모든 공연이 그렇지만, 이 공연을 무사히 마치게 된 것에는 많은 사람이 마음을 모아준 덕이 크다. 극장 규모와 인력에 비해 터무니없는 예산에, 해야 할 일은 늘어났음에도, 모두 밝은 표정으로 함께해주었다. <드랙x남장신사>가 왜 이렇게 대형 프로젝트가 되었는가 생각해보면, 프로젝트에 참여한 분들과 관객들이 이 공연과 다큐멘터리를 사랑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냥 웃고 넘겼으면 될 칭찬에, 너무 신나서 자꾸 일을 벌였다. 그리고 ‘사실은 미술작가’인 나는, 작업과 병행하겠다는 결심으로 시작했던 드랙킹콘테스트에 완전히 몰두했다. 작은 열망으로 시작된 작업은 일이 진행될수록 대형 프로젝트가 되었다. 생애 구술사 기록으로 시작한 인터뷰 영상은 장편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로 제작 중이고, 세종문화회관에서 1회 공연으로 끝날 줄 알았던 공연은 메리홀 대극장에서 3회차 재공연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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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만 가지고 일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여러 시도와 실패를 거쳐서인지 회의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2022년 <드랙x남장신사> 재공연은 아르코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 나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였고, 미술전시로 받을 수 있는 개인적 기회를 쓴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이 지원금으로 대극장 3일 공연을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공연을 무사히 진행하려면 지원금에 전석 매진의 티켓 수익을 더해야만 간신히 예산을 맞출 수 있었다. 400석씩 3일, 1,200석을 채운다는 일은 엄청난 패기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극장 공연을 강행한 이유는, 퀴어 가시화를 위해서였다. 4, 5회 공연에서 아쉬움은, 열심히 소리를 질러 ‘여기 있다’고 해도 적은 객석수 때문에 그 목소리가 전달되는 것도 한정적이란 사실이었다. 연출님을 비롯해 주변에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줬다. 그러던 중, 초연 때 함께 하셨던 테리님이 불참 의사를 밝히면서 그 부분을 채워야 하는 작업도 함께 해야 했다. 테리님은 한국에 첫 레즈비언 모임 사포를 만든 분이자, 스톤 부치이다. 그의 빈자리를 채우려면, 부치여야 했다. 그런데 부치란 무엇인가? 테리님은 부치이지만, 부치로 대본을 쓰고 부치를 연기하게 하려면, 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시대는 바뀌고 레즈비언들도 자꾸 바뀌니까, 부치가 무엇인지는 더욱 알 수 없어졌다. 하지만 부치란, 레즈비언 중에서 늘 눈에 띄는 존재로 이제 퀴어적 아이콘이 될 때도 되었는데 늘 빗겨나갔다. 왜일까? 프라이드를 가질 새도 없이 부정어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이런 질문과 함께, 엄숙한 레즈비언 사회에 일침을 던지는 섹슈얼리티가 가득한 장면이어야 했다. 좀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내가 보고 싶고, 바라는 부치를 써넣었다. 이게 될까? 1,200명이 보는 공연인데, 이 대본이 정말 괜찮을지도 불안해졌다. 그리고 연습에 들어갔다. 연출님의 세세한 질문들로 세계관이 구축됐고, 배우님들이 이를 해석하고 연기하고 음악감독님이 음악을 채워주었다. 그렇게 여러 명의 힘으로 부치 씬이 완성됐다. 그리고 동시에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무대 위에 실존하는 선배들과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균형이 잡히는 듯했다. <드랙x남장신사>는 퀴어 선배님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담은 극이다. 그리고 이를 보는 관객은 동시대를 산다. 공연을 제작하거나 연기하거나 바라보는 우리는 각자의 굴곡진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서 선배들의 이야기에 공감했고, 이들의 당당한 모습에 감사했다. 무대 위에서 선배와 후배는 호흡을 맞추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환호해주었다. 거기에 관객의 환호까지 더해져, 공연이 완성되었다. 우리는 증명하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우리의 이야기 속에 울고 웃으며 그 자체로 존재했다.

내가 연극팀과 함께하면서 느낀 것은, 하나의 공연은 모든 구성원이 모여서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 사람의 특출함으로 인한 그 사람의 소유가 아닌, 공연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드랙x남장신사>는 이 모든 사람이 모여서 만들었다. 드랙킹콘테스트의 성황을, 그동안 드킹콘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드랙x남장신사>의 찬사를, 공연을 함께 만든 모든 분께 돌리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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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드랙X남장신사> 기획, 촬영: 양승욱]

문상훈

문상훈
미술 작가. 기획도 겸업하고 있다. 전시 <레즈비언!>(2019), <실패전>(2020)을 기획했으며 개인전 <규중칠우쟁론기: No Future>(2021), <너는 이 전시를 못 보겠지만>(2020), <우리는 끝없이 불화할 것이다>(2019) 외에 <퀴어락 QueerArch>(2019), <씨 뿌리는 여자들>(2020) 등의 전시를 했다. ‘드랙킹콘테스트’ 1, 2회에 참여하다가 2019년 드랙킹콘테스트 3회 <드랙x여성국극; 춘향전>부터 기획진으로 일하기 시작해, <드랙x남장신사>, <드랙x트랜스 이갈리아>를 기획했다.

인스타그램 @sanghoonxx

moonsanghoon.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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