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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터는 얼마나 안전한가?

故 박송희님 4주기 기억 집담회
“우리의 일터는 얼마나 안전한가: 박송희법 시행 이후 극장의 안전문화를 점검한다”

김기일

제222호

2022.09.29

2018년 9월, 김천시 문화예술회관에서 오페라 공연을 준비하던 한 스태프가 작업 중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희생자는 해당 공연에 조연출로 참여했던 故 박송희 님으로, 세트 보수를 위한 도색 작업을 하던 도중 내려가 있던 리프트 개구부 아래로 추락, 사망했다.’1)

리프트 주변에는 안전 울타리가 없었고, 해당 시설에 대한 안전교육은 물론 이용 시 주의 사항과 관련한 간단한 설명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 이후 김천시는 사과 없이 서류 조작 등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당시 무대가 충분히 밝았다는 핑계로 사고의 책임을 오히려 故 박송희 님에게 돌리기까지 했다. 이후 진행된 유가족의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김천시의 과실을 80%만 인정했지만, 이어진 유가족의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사고 위험성을 전혀 모른 채 숨진 고인에게 일부라도 책임을 묻는 건 정당하지 않다”라며 김천시의 과실이 100%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지난 2022년 3월에는 재발 방지를 위한 유가족들의 형사소송 제기로, 검찰이 3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김천시를 약식 기소했다.

故 박송희 님의 안타까운 죽음은, 현장 연극인들 사이에 극장 예술 노동자의 안전한 작업환경 보장에 대한 요구와 극장 안전관리 소홀에 대한 문제의식을 촉발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공극장안전대책촉구연구연극인모임(이하 연극인모임)’을 주축으로 한 연대 활동 및 제도 개선 논의가 올해 1월 공연법 개정(‘박송희법’) 및 7월 시행령 개정안 시행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공간에 책상과 의자가 둥그렇게 놓여 있고, 열다섯 명 정도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다. 한쪽 벽면의 스크린에는 “고 박송희 님 4주기 기억 집담회” 프레젠테이션 파일이 띄워져 있다.

지난 9월 7일 연극인모임의 주최로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 다목적실에서 故 박송희 님을 기억하고 공연장의 안전문화를 점검하는 집담회가 열렸다. “故 박송희님 4주기 기억 집담회: 우리의 일터는 얼마나 안전한가”라는 제목으로 두 시간가량 이어진 집담회에서는, 현장 예술인 및 공공극장 무대감독을 포함한 극장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박송희법 이후의 극장 안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연출가 방혜영의 사회로 진행된 집담회는 「박송희법 제정 경과와 이후 과제들」이라는 연출가 이양구의 발표로 시작되었다.’2) 그는 2018년 9월 6일 사고 이후 공연법 개정까지의 과정을 요약하여 이야기하고, 공연법의 목적으로 ‘공연자 및 공연예술 작업자의 안전한 창작활동 조성’을 명시한 것, 공연예술진흥기본계획에 ‘안전관리 계획 수립’이 포함된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작업자가 ‘안전한 창작환경에서 활동할 권리’가 개정된 공연법에 규정되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장에 남아 있는 과제로, 1) 실제 현장 작업자가 더 많이 사용하는 공연법 미적용 공연장(소규모 공연장)들에 대한 안전관리비 지원 2) 극장, 프로덕션 양측 모두의 실질적인 안전관리 담당자 육성 및 교육 3) 작업자를 대상으로 한 지속적인 안전 교육 4) 안전문화 정착을 위한 극장 조직과 프로덕션 간의 소통 및 협력 문화 구축 등을 이야기했다.

이어 연출가 홍예원은 「박송희법 알고 계시나요?」라는 발표를 통해 공연법 개정에 대한 전국지자체의 인지 및 인식 상태를 진단했는데, 발표에 따른 지자체의 인식 수준은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이 인식조사는 전국 17개 지역 중 개정된 공연법의 대상이 되는 500석 이상의 극장이 있는 140개 지방자치단체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1) ‘개정된 법과 관련한 공문을 받았는지’ 2) ‘공문을 받았다면 관내 공연장에 내용을 전달하였는지’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기대와는 달리 공문을 받지 못했거나, 받았더라도 공연장에 알리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가 다수 발견되었다. 그는 “공연장은 우리의 일터인데, 나의 안전이 지자체 공연장 담당 주무관이나 지역문예회관 관리자의 인식, 태도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였다는 말과 함께, 법 개정 이후에 대한 문체부의 책임 있는 대책을 촉구하였다.

발표자가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뒤쪽 스크린에 발표 제목과 발표자 이름이 보인다. “박송희법 알고 계시나요? - 전국지방자치단체 공연법개정안 인지, 인식상태 조사결과 – 발표자: 홍예원”

이어진 발표에서 독립기획자 김진이는 현장 예술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공연예술인 무대 사고 실태 및 공연법 개정에 대한 인식”의 파일럿 조사 결과를 공유하였다. 설문에 응답한 현장 예술인의 작업 경험 및 공연법 개정에 대한 기대를 묻는 해당 조사에서는, 첫 번째 발표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1) 대다수의 공연자가 작업하는 소규모 공연장에 대한 안전문화 조성 2) 극장과 단체(작업자) 간 관계를 위계관계에서 협조관계로 전환 3) 프로덕션 내에서의 안전 조치 및 인식 전환 필요 등의 시사점이 도출되었다. 특히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공연 중 사고를 목격하거나 경험했고, 이후 정해진 절차 없이 구성원들이 알아서 대처했다고 응답한 결과를 통해 공연법 개정 이후 해결되어야 할 주요 과제들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작업장에 만연한 안전불감증과 제한된 예산, 촉박한 일정 등으로 실질적인 안전 확보가 어려운 현실을 지적한 자유의견은, 제도 개선과 더불어 현장과 기관의 노력이 뒤따라야 현실을 타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이후,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극장 ‘쿼드’의 무대감독 정태환과 성북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꿈빛극장’의 무대감독 김재홍의 발표가 이어졌다. 각각의 발표에서는 두 공공극장의 안전관리 현황과 방향성이 이야기되었는데, 무엇보다 ‘형식적이지 않은 실질적인 교육’에 대한 두 극장의 노력과 지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공연 내용의 변경으로 인한 사고 사례, 시간 조율의 어려움 때문에 스태프 및 출연자 전원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는 사례 등에서는, 현장 예술인의 인식 전환과 작업 현실에 대응하는 극장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는 현실이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 발표에서는 연출가 김쭈야가 그간 자신의 극장 작업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노후한 극장에서의 작업 환경, 사고 발생 이후 책임 소재가 개인에게 돌아가는 현실을 지적하며 작업장에서 모두가 안전관리자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는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져줄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그 이유였다. 이는 앞선 설문조사에서 밝혀졌듯 현장 작업자들이 놓인 ‘위험한 환경’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이어 공공극장에서의 경험이 소규모 민간극장에서의 작업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공공극장의 선도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공연법 개정이 적용되지 않는 현장에서도 작업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볼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공연법 개정이 법조문의 문장으로부터, 작업자인 ‘나’가 안전하다고 체감할 수 있는 현실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본문사진3 대체 텍스트: 책상에 둘러앉은 발표자들 뒤쪽으로 기억 집담회에 참여한 청중들이 보인다.

발표 이후 이어진 현장 참여자들의 이야기에선, 문체부가 좀 더 문제의식을 갖고 책임 있게 공연법 개정 이후를 위한 노력을 해주길 바란다는 의견, 기관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현장의 작업자들 또한 안전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 등이 개진되었다. 특히 현재 공공극장 무대감독 및 공연장안전지원센터 실무자와 현장예술인 사이 벌어진 ‘안전교육’에 대한 논의가 인상 깊었다. 작업자들은 현장에 가까울수록 형식적 교육이 아닌 현장에서 유효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에 깊이 공감했고, 교육의 개선을 위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할 것과 각각의 위치에서 노력해줄 것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었다. 이번 집담회는 기관 및 극장, 현장 예술인 간의 일방적인 질타나 책임전가가 아닌 공연예술계 공동의 문제의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생산적이라고 느껴졌다. 또한 그렇기에 거꾸로, 이후 각 주체 간의 구체적인 논의가 더 절실히 필요하고, 그것이야말로 실질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집담회를 마치고 나오며 코로나19가 시작되었던 2020년 초가 떠올랐다. 극장을 운영하면서 작업자들에게 ‘마스크를 써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왜 그렇게 말하기도, 받아들여지기도 어려웠던 걸까, 다시금 고민해보았다. 또한 극장운영자 및 프로덕션 책임자로서, 여전히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 극장 안전교육에 대한 무거운 부채감을 안고, 박송희법이 다른 어떤 법보다 현장예술인에게 정당한 권리와 동시에 묵직한 책임을 던지는 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우리의 일터는 안전할까? 안전한 우리의 일터는 누가 만들까? 내 동료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까? 언제나 그렇듯, 결국엔 내가 아닐까?

[사진 제공: 적야(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1. 해당 사고에 대한 개요 및 쟁점은 지난 2020년 9월, ‘공공극장안전대책촉구연극인모임’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공동주최한 <공공극장 무대의 안전과 위험의 외주화> 토론회 자료집(https://drive.google.com/file/d/1ep-juZOTj-Qd52GFktawc6N4BsdkpOOK/view?usp=sharing)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으며, 이후 법적 다툼 및 공연법 개정에 대한 논의도 해당 모임의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SafetyofPublicTheate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 이 집담회 실황은 연극인모임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aEZtyPgw5Zk). 분량 문제로 본고에서 다뤄지지 않은 구체적인 발표 내용 및 현장 의견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후 자료집도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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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일

김기일
연출가, 극장 운영자
엘리펀트룸. 주로 연출. 혜화동1번지 7기 동인 및 극장장, 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 2015년 연출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주로 젊은 창작자들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을 오가거나, 기획해가며 작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연극과 극장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으며, 요즘은 부쩍 극장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민간과 공공, 예술가와 기관에 대한 생각도요.
windfisher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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