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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산우화극장에 가면 월장석친구들이 있다

서서히학교

오선아

제224호

2022.10.27

나는 상월곡에 위치한 천장산우화극장1)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월장석친구들2) 커뮤니티의 구성원이자 배우입니다. 현재 천장산우화극장의 교육파트(서서히학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서서히학교는 주민과 지역의 예술가가 관계를 맺고 역할을 찾아 양방향의 의지가 형성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역민들이 극장의 역할을 고민하고, 극장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교류하기도 하며, 지역의 주체로서 성장할 수 있는 예술교육 프로젝트입니다.

천장산우화극장은 2018년 시민참여 예산을 통해 성북정보도서관 지하 2층의 유휴공간인 강당을, 블랙박스의 가변형 형태로 설계하며 지어진 지역의 공공극장입니다. 동네 주민 모두가 주인인 이 극장은 현재 지역예술가 그룹인 월장석친구들과 도서관, 성북문화재단의 민관협업으로 공동 운영되고 있습니다. 월장석친구들은 극장의 형태를 설계하고 이름을 짓고 자발적으로 기획팀과 교육(서서히학교), 인큐베이팅(솔딱새프로젝트3)), 그리고 극장을 운영하는 사무국을 구성했습니다.

서서히 학교가 되어

극장과 교육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시민연극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장산우화극장은 장르의 경계를 넘어 공연과 파티, 포럼, 전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마을의 광장 역할을 소화하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가 꼭 필요로 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기로 했습니다. 또한, 일방향의 지식 전수에서 벗어나 서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첫 프로젝트인 극장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마을 안에 일종의 ‘학교’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수학이나 영어를 배우는 학교가 아니라 보다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서로 가르쳐줄 수 있는 곳들이 서서히 마을 전체에 생겨나는 거예요. 마치 동네 자체가 커다란 학교가 되는 것처럼.”

- 「N개의 서울」4) 인터뷰 중

천장산우화극장의 입구 우측에 두 개의 목재 입간판이 서 있다. 왼쪽 입간판에는 ‘서서히학교 with 천장산우화극장 13:00~15:00’라는 글자와 달과 산, 네발짐승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 입간판에는 한자로 ‘영업중’이라고 쓰여있다.
사진 출처: 「N개의 서울」

극장 과정 – 무대, 조명, 음향

먼저 극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에 극장의 조명과 음향을 배우고 창작해보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가 모여 있는 그룹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꼭 필요했고, 새로 지어진 극장을 궁금해하는 도서관 이용객들과 동네 주민들도 극장에 대해 배우면서 공간에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오길 기대했습니다.

극장지배인 과정

뜬금없는 소리 같겠지만 나는 2011년 프랑스에 있는 소도시 모를래(Morlaix) 거리극 페스티벌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작은 소도시였기 때문에 공연이 시시할 것이라는 편견은 축제를 경험하면서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양질의 좋은 공연도 인상 깊었지만, 주민들의 태도 또한 상당히 인상 깊었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램북을 쥐고 할머니의 손을 이끄는 어린아이며, 왜 이번엔 그때 그 팀(작년에 왔던 공연팀)이 초청되지 않았냐고 묻는 아주머니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는 동네 자원봉사자, 공연을 본 뒤 삼삼오오 공연에 대해 피드백하는 주민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즐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민으로서 주체적으로 축제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관객이 없는 예술을 상상하기 힘들 듯 예술가가 성장하려면 건강한 지역주민들이 함께해야 하고 지역주민이 건강하려면 예술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극장이 지어진 서울 성북구 상월곡동 이곳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극장의 얼굴이 되고, 아이들이 동네를 소개하고, 주민 모두가 월장석친구들의 신작을 비평할 수 있는 날을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상월곡동은 장년층과 노년층의 인구 비율이 높은 편이며,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적었기 때문에 극장이 낯설고 불편한 상황이었습니다. 극장의 문턱을 낮추고 예술가들과 함께 교류할 수 있게 만들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였고, 극장이 지어진 1년 차에 우리 극장만의 하우스매니저(극장지배인)를 모집했습니다. 그렇게 10여 명의 예비 시니어 극장지배인을 만나게 된 것이 서서히학교 극장 지배인의 첫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극장을 소개하고 극장에 대한 에티켓에 대해 논쟁하고, 동네에서 살아온 인생그래프를 공유하고, 나만의 극장지배인 멘트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천장산우화극장의 내부, 노란 옷에 스카프를 맨 한 여성이 ‘천장산우화극장 극장 지배인 vs 타극장 하우스매니저’라고 쓰인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고, 7여 명의 노인들이 의자에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출처: 2020 서울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지원사업 온라인 전시

시니어-청소년-청년

이 프로젝트를 통해 2020년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극장지배인을 양성하는 과정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두 명의 강사진 및 예술가들과의 라포 형성을 위해 4명의 멘토단으로 구성된 이 프로젝트는 8개월간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극장에서 진행할 수 있게 설계된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습니다. 참여자가 장년층과 노년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극장지배인 프로그램은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기에도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지역이어서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동네 이웃이었다는 것입니다. 강사진과 멘토단이 협력하여 수업 재료 키트를 들고 가정방문을 해서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을 설치한 뒤 사용법을 설명해주고 나옵니다. 처음에는 많은 분들이 어려워서 못하겠다고 하셨지만, 결국 90%는 스스로 링크를 타고 접속할 수 있게 되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접속을 못 하거나 음성지원을 못 켜신 분들이 생겼지만, 담당 멘토가 동네에 대기하면서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AS 기사처럼 집으로 방문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참 고단하고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수시로 긴급회의를 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니까요. 그리고 그해 말 문득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타인에 대한 경계와 단절을 불러일으켰지만 다른 세대와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고 불안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안에서의 안전함을 조금은 경험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예술가 그룹인 우리 역시 재난사회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실험하는 한 해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안전하게 시니어 극장지배인 과정을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햇빛이 비추는 날, 도로에 베이지 색 옷을 맞춰 입은 시니어 극장 지배인들이 일렬로 서 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들의 우측에는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베이지색 옷을 입은 스태프가 있으며, 우측에는 손을 모으고 이를 경청하는 스태프와, 카메라로 이들의 모습을 찍고 있는 스태프가 있다.
사진 출처: 서울문화재단 공식 블로그

시니어 층을 시작으로 2021년도에는 청소년과 청년층을 모집해서 극장지배인이라는 이름으로 세대가 섞여 협업하고 놀 수 있을까? 라는 실험을 합니다. 기존 시니어 층은 활동을 지속하되 새로운 청소년 그룹을 모집하여 세 세대(시니어극장지배인, 청년예술가, 청소년극장지배인)가 교류하는 상황을 기대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극장에서 행사를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월장석친구들이 주최하는 우화예술제에 합류하여 처음으로 동네에서 관객을 맞이하였습니다.

현재 2년 차가 된 극장지배인은 17세부터 78세까지의 다양한 연령대가 어우러져 <삶은연극>이라는 공연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신규 멤버인 청년 극장지배인이 관객을 맞이할 예정입니다.

<삶은연극> 공연 포스터다. 한 줄에 세 사람씩, 총 4줄, 전부 합쳐 12명의 얼굴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다. 얼굴 턱선을 따라 배우, 각색·프롬프터, 연출·지도 등의 타이틀과 이름이 쓰여 있다.
사진: 필자 제공

서서히학교 프로그램 중 하나인 극장지배인 과정이 벌써 3년 차에 접어들었다. 3년 차에는 공연이나 전시 서포트를 넘어서 지배인 활동을 하면서 생긴 헤프닝을 모아 공연을 만들어보자고 했었다. 그러나 2년간의 길고 긴 팬데믹 상황에서 극장지배인 활동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연극은 인생이다’라는 뻔한 말 위에 누구네 인생도 뻔하지 않기에 우리의 이야기를 연극에 담아보는 시도를 한다. 극장과 동네를 중심으로 관계를 맺어온 청소년, 청년, 시니어 극장지배인들은 개인의 이야기를 유명한 고전 독백에 담아보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펼치기도 그 역할이 되어보기도 한다.

또한 무대에 서기까지의 노력과 스태프들의 노고를 경험하며 극장지배인의 역할과 존재에 대해 더 깊은 사유를 해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있는 이 무대 위에서 마음껏 불사른 뒤 내년 극장지배인을 준비해야겠지?

- 3년 차 서서히학교 기록

공연을 올리기까지 모든 배우는 두려움에 맞서 용기를 내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극장지배인으로서의 활동이 더 탄탄해지길 바랍니다.

다음 서서히학교는 극장지배인과 더불어 주민비평가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서히학교는 현재진행 중입니다.

  1. 지역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만든 도서관 속 블랙박스극장이다. 공연, 전시, 행사, 워크숍 등의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간이며, 월장석친구들과 성북문화재단이 협치 운영하고 있다.
  2. 월장석친구들은 월곡, 장위, 석관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오픈 네트워크이다.
  3. 솔딱새프로젝트는 창작자 인큐베이팅 프로젝트이다. 새로운 예술 실험을 하고자 하는 창작자와 천장산우화극장, 월장석친구들의 협업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4. http://localtoseoul.or.kr/sfac-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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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아

오선아
성북동에서 ‘오배’라고 불린다. 극단 ‘서울괴담’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월장석친구들’이라는 오픈 커뮤니티의 구성원이다. 최근에는 상월곡역 주변에 아트라운지 쌀(SSAL)이라는 예술펍을 동료들과 운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sunah_oh / 인스타그램 @ssal_art_lou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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