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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애도에서 배제되었나,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다시 모였나

김소연

제226호

2022.11.24

10월 30일 일요일 오후 1시 반.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스파프) 마지막 작품을 보기 위해 대학로를 향하고 있었다. 전날 밤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밀린 일을 해보겠다고 컴퓨터를 켰다가 그만 이태원 참사 속보를 내내 보다가 새벽에야 잠들었다. 결국 일은 시작도 못 해보고 다시 노트북을 닫고 가방에 넣어 공연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때 문자가 왔다.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내가 예약한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것이었다. 왜 취소되었는지, 취소에 따른 사후 절차가 어떠한 것인지를 안내하는 내용은 없었다. 공연 한 시간 반을 앞두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날아온 문자를 보면서 급하게 결정했다는 것, 혹시라도 빈 걸음 할까 길 나서기 전에 서둘러 보낸 문자라고 생각했다. 아무 설명도 없었지만 공연팀에 코로나19 감염자가 갑자기 확인되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 일이 아니라면 이렇게 갑자기 공연을 취소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공연 취소의 경우 아무리 급해도 아무런 설명도 없는 취소 통보는 없었다) 계속 이태원 참사 뉴스를 듣고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밖에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워낙 공연이 많았던 10월이었고, 갑자기 비어버린 일요일 낮시간을 그냥 보내기는 아깝다는 생각이었다. 날짜가 겹쳐서 미뤄두었던 공연이 생각나 현장에서 티켓을 구할 수 있을지 알아보려고 공연팀에 전화했다. 마침 연락은 바로 닿았는데, 역시 취소라는 것이다. 스파프 프로그램이다. 그러니까 코로나가 아니었다. 두 공연만이 아니라 축제의 전 프로그램이 모두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나자 더 이상 공연을 찾아볼 기운이 나지 않았다.

30일 1시 반 예매자에게 보낸 공연 취소 문자, 1시간여 후 다시 예매자에게 개별적으로 보낸 ‘국가애도기간’ 선포에 따른 결정이라는 취소 사유를 알리는 문자, 다시 3시간여 후 역시 예매자에게 개별 전화를 통해 취소에 따른 환불 절차 안내가 있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스파프 홈페이지와 아르코예술극장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지만 공연 취소를 알리는 공지는 없었다. 저녁 7시 즈음에 아르코예술극장 홈페이지에 공지가 올라왔고 스파프 홈페이지에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지막 공연 취소에 대한 안내는 없다. 며칠 후 우연히 스파프 SNS 계정을 통해 당일 공지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예매자에게 취소 통보 문자를 보내고 한 시간 후였다. 아르코예술극장이나 스파프는 내가 팔로우하는 계정이었지만, SNS 알고리즘 때문인지 즐겨찾기를 해놓거나 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타임라인에 게시물이 뜨지 않는다. 그래서 한참 후에야 공지를 발견했다.

30일 스파프 공연 취소 과정을 이렇게 자세히 쓰는 이유는, 과연 이러한 과정 어디에서 ‘애도’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라는 의문 때문이다. 아마도 공연예매자들에게 공연 취소 통보를 하기까지 내부적 논의과정이 있었을 터인데 내가 공연 취소 문자를 받은 오후 1시 반은 여전히 ‘이태원 참사’ 속보가 계속되고 있던 때였다. 희생자 집계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고, 희생자들도 다 확인되지 않았던 때였다. 실종자 신고 전화가 폭주하고 직접 참사현장을 찾은 실종자 가족들이 상황실에서 가족을 확인하고 오열하는가 하면 아직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애를 태우던 때였다. 30일 공연을 앞두고 있던 공연팀에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지인을 둔 팀원들이 있어 새벽까지 그리고 아침 일찍부터 소식을 확인하고, 마지막 공연을 어떻게 치를지를 두고 계속 의논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모든 이들이 참사 수습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때에 사고를 막지 못했던 국가가, 사고 수습에 매진해야 할 국가가 한 일은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축제 주최기관인 예술경영지원센터에 축제를 취소하라는 권유인지 통보인지 지침인지 결정인지를 전달했던 것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공연자들과의 어떠한 협의 없이 취소를 결정했다.

참사 수습이 먼저지만 수습과 함께 국가가 국민에게 우리 함께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갖자고 권유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사건 수습 일선에 있지 않으니 ‘국가애도기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가 ‘국가애도기간’을 이유로 축제를, 공연을 취소하는 과정 어디에 ‘애도’가 있는가. 권유인지, 지침인지, 통보인지를 전달받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애도’를 위해 축제의 마지막 공연을 취소한 것이라면, 취소 결정이 함께 애도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 과정과 결정을 널리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 널리 알리고 공연 취소라는 결정이 애도에 참여하는 과정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날 이 급작스러운 결정에 대해 이리저리 알아볼수록 문화체육관광부의 입장이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가애도기간이라 일체 공연이 중지되는 것인가, 그래서 축제가 취소되었나, 그러면 국공립극장들은 어찌 되나, 단기 공연은 취소하고 장기 공연은 지속한다고 했다더라 등등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만 있었다.

이러한 일방적 결정은 공연을 막아서 공연자의 권리, 관객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결정, 이러한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에서 축제에 참여하는 이들은 애도를 빼앗겼다. 공연자이기에 앞서 우리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지인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던 이들에게 이 결정이 과연 애도에 함께 참여하는 과정이었을까. 관객들은 어떤가.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겪은 그 모든 과정, 공연 직전 처음 공연 취소 문자를 받고 환불 절차를 안내받는 과정에서 나는 그저 티켓 구매자였을 뿐이었다. (극장에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공연 시작 1시간 반 전, 아무 설명 없는 공연 취소 문자가 발송된 이유가, 환불 규정상 공연 시작 1시간을 기준으로 그보다 앞서 취소를 통보하면 티켓가 100% 환불, 기준을 넘기면 110% 환불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 역시 밤을 새우다시피 뉴스를 보고, 극장으로 향하던 길에도 귀로는 뉴스를 들으며 눈으로는 핸드폰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참사 앞에 있었다. 그러나 국가가 행하는 애도, 애도를 위해 축제를 취소하라는 국가의 애도에서 나는 도리어 참사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유가족들, 지인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에서 티켓 구매자로 처리되었다. 대체 여기 어디에 애도가 있다는 말인가.

강요와 배제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

이 모든 과정은 너무 익숙해서, 낯설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을 때도 사건 수습보다 국가는 국민을 향해 애도를 강요하면서 축제를, 공연을 막았다. 함께 애도하자면서 공연자들, 관객들은 함께 애도하는 이들에서 배제되었다. 그 역할을 벗어야만 애도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참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연자들, 관객들은 축제의 장에서 자기 역할을 강제로 빼앗긴 채 애도에서 배제되었다. 30일 공연 취소 통보를 받고 내내 이런저런 소식들을 찾느라 SNS 타임라인을 계속 보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위해 예정된 공연을 취소한다는 소식이 올라오는가 하면, 애도의 마음을 담아 공연을 계속한다는 소식도 있었다. 공연을 취소하건 공연을 지속하건 모두 참사 앞에서 함께 슬퍼하는 애도였다. 거기에는 강요된 애도도, 배제도 없었다.

밤새 수많은 사람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 지옥의 밤이 지나고 다시 날이 밝은 30일은 스파프 폐막일이었다. 따로 폐막식은 없지만 축제 프로그램들의 마지막 공연이 오르는 날이었다. 이번 스파프는 최석규 예술감독이 지난해 12월 5년 임기로 취임하고 열리는 첫 축제였다. 5년 임기는 공공부문에서는 거의 처음 시도되는 최장 임기이다. 그동안 스파프 운영의 난맥상을 생각할 때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게 하는 소식이었다. 스파프는, 한국연극협회, 한국무용협회 등의 공동주최로 시작해서 재단법인을 설립했다가 갑자기 재단법인을 해산하고 한국공연예술센터의 문화사업부 사업으로 이관되었고, 한국공연예술센터가 해산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통합된 후 극장운영조직으로 다시 이관되었다. 그리고 팝업씨어터 공연방해 사건 이후 이번엔 예술경영지원센터로 이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런 그간의 과정을 생각할 때, 5년 임기 예술감독 취임이 그간의 난맥상을 타개할 계기가 되길 기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취임 후 첫 축제를 치르는 최석규 예술감독이나 축제를 지켜보는 이들이나 모두 이번 축제에 관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축제는 결국 외부의 결정인지, 스스로의 결정인지 아직도 그 과정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중단되었다. 축제는 일방적으로 취소되었고 축제에 참여했던 이들은 취소를 통보받았다. 애도를 이유로 들었지만 그러한 일방적 결정으로 공연자와 관객들은 애도에서 배제되었다. 너무나 익숙해서 낯선 이 장면이, 새로운 출발을 기대했던 축제에서 다시 반복되었다. 참사 앞에 망연자실한 이들에게, 공연자이자 관객이자 시민인 우리에게 이러한 결정은 다시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 결정에서 언급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책임은 무엇인지, 문화체육관광부의 결정인지 권유인지 통보인지 지침인지가 관철되는 데에 축제 주최 측인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책임은 무엇인지 해명과 사과가 필요하다.

비둘기와 햇볕과 바람과 아이와 함께

마로니에 공원 야외공연장 앞 나무 바닥에 연출가 설유진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자주색 야구모자를 쓰고 청색 재킷을 입었으며, 선글라스를 끼고 시집을 펼쳐 들어 읽는 중이다. 앞에는 노트북을 펴두고, 텀블러와 여러 책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다. 그 앞으로 하얀 비둘기가 지나가고 있다.

참사 4일이 지난 11월 2일 늦은 밤, 연출가 설유진은 SNS 계정에 함께 모여 읽기를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워, 뭔가 소리 내어 읽고 듣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몇 시간이 될지 며칠이 될지 모르겠으나 일단 내일 2022년 11월 3일 목요일 점심시간, 오후 12시부터 저는 마로니에 공원 어딘가에서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시와 기사, 노랫말 등을 소리 내어 읽으려 합니다. 자주색 야구모자를 쓰고 마로니에 공원 어딘가에 앉아 제 딴에는 큰 소리를 내고 있으려 합니다. 듣고 싶으신 분, 뭔가 다른 것을 소리 내어 읽고 싶으신 분은 오셔서 듣고 읽고 하셔도 좋습니다. 곁에서 듣겠습니다.”(출처: 설유진 페이스북 11월 2일)

다음 날 마로니에 공원에는 삼삼오오 연극인들이 모였다. 그들은 함께 읽었고, 함께 들었다. 누군가는 내내 함께 있고 누군가는 왔다가 가기도 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러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공원을 뛰어다니던 아이도 비둘기도 바람도 햇살도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모임에는 강요된 애도도 배제되는 존재도 없었다. 참사의 희생자들만이 아니라 유가족들만이 아니라 참사를 목격한 우리 모두 위로가 필요하다. 울고, 외치고, 그런가 하면 소곤거리고, 웃기도 하고, 차를 나누어 마시기도 하면서 한낮에서 밤까지 마로니에 공원에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그 목소리는 죽음 앞에서 슬픔에 통곡하는 것만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삶들을 보듬어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세월호 참사 앞에서 그러했고, 블랙리스트와 미투를 겪으면서 그러했다. 달라져야 한다고.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 앞에서 우리 사회는 또 다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하고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우리의 애도가 강요된 침묵이나 슬픔에 멈추지 않고 되돌아가지 않기 위한 행동이라면, 그것은 그 목소리들처럼 삶을 보듬는, 바람과 하늘과 비둘기와 모든 존재들의 삶을 보듬는 그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가 내내 남는다.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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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김소연
연극평론가.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좋은 공연을 함께 보기 위해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든다.
인스타그램 @sweetdream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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