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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만으로 내가 이야기해도 될까?”

현장이라는 하나의 단어에서 각자의 언어로 갈라지는 수많은 경험들에 대하여

이연주

제231호

2023.03.23

이번 [현장] 코너의 좌담에서는 각자의 현장에 대한 생각을 나눠보았습니다. 현장에 대한 정의나 단일하게 모이는 화두를 정리하기 위한 좌담이 아니기에 사회자는 없습니다. 개별의 경험을 말하고, 서로의 관심사를 확인하기 위해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와 질문은 미리 공유했습니다. 좌담 현장에서는 쉬는 시간을 통해 각자의 언어를 고르고, 진행 상황을 함께 점검했습니다.

일시:
3월 8일 수요일 10시-13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2층

참여:
김소연(평론가), 우범진(배우), 원지영(연출가), 조연희(배우)

참관:
김슬기(웹진 연극in 편집장), 예준미(웹진 연극in 에디터), 이연주(웹진 연극in 편집위원), 김상민(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 담당자)
소연
저는 연극 평론하는 김소연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은 거의 연극 평론과 연관된 일이고요. 또 하나로는 『문화정책리뷰』라는 웹진의 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한 달에 3~5개의 기사를 발행하는 아주 소략한 웹진이에요. 문화정책에 관한 웹진이라 독자층도 굉장히 좁아요. 이 일도 저에게는 연극 평론과 연관된 일입니다.
지영
저는 원지영이라고 하고요. 연출을 하고 있어요. ‘원의 안과 밖’이라는 이름으로 2018년 중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요. 연극 만들기 전에 많이 떠돌아다니고, 여행하고, 해외 문화원에서 국제교류 기획자로도 잠깐 일을 했어요.
연희
저는 조연희라고 하고요. 이런 자리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사회적 언어를 잘 사용하지 못해서요. 어쩌다 보니까 오게 되어서 꿋꿋하게 제 언어로 잘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원서나 이런 자리에서는 평균치로 소개하게 되는데요. 배우입니다, 가끔 연기를 하는 조연희입니다, 이렇게 소개하게 됩니다.
범진
저는 배우 우범진이라고 하고요. 다른 일 안 하고 거의 연극만 해왔고요. 최근에 공연을 안 한 지 1년 반 정도 됩니다.

소연

“창작 외 연극교육 등의 비중은 어떤지, 연극교육 등이 창작활동과 연계되는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직접적 연계는 안 되겠지만 우회적으로라도 연계되는 경험이 있는지, 연계되는 사업 또는 형태가 있었는지 등.”

소연
저는 몇억짜리 연구 용역이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책에 대한 관심보다는 연극 평론의 연장에서 정책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연극 평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공연예술 정책이나 지원 정책이 창작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니까요. 공연 무대에 대한 비평만이 아니라, 창작 환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궁금함과 그걸 살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고요. 제가 갖는 고민 중 하나는 창작지원과 향수지원이 분리되어 있고, 그 사이의 벽이 너무 완강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복권기금의 수익이 문화예술지원사업에도 쓰이는데 향수사업에만 써야 해요. ‘신나는예술여행’ 등과 같은 사업이죠.
지영
향수사업이 뭐에요?
소연
관객들이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을 지원하는 사업이요. 복권기금의 수익은 공공사업의 재원이 되는데 대체로 취약계층 지원사업에 쓰이고,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도 창작활동이 아니라 관객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거죠. 저는 현재 공연예술정책에서 창작지원과 향수지원 사이에 있는 완강한 칸막이를 없애고 각각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왔어요. 그런데 한 연구사업을 하면서 흥미로운 현상을 확인하게 되었어요. 2020년에 있었던 코로나19 긴급지원사업이었는데, 내내 여러 지원사업이 있었지만 한번도 선정되지 못했던, 그러니까 지원제도에 잘 들어오지 못하는 개인과 단체들이 선정자들이었습니다. 창작지원사업에는 일종의 선정자 풀이랄까 하는 것이 형성되어 있잖아요. 카르텔이라기보다는 지금의 지원방식에서 선정 빈도가 높은 창작자 창작단체가 있고 그렇지 못한 창작자 창작단체가 있죠. 물론 그 경계가 뚜렷하고 그런 건 아니고요.
2020년 연구에서는 그간 창작활동 지원제도에 잘 들어오지 못하는 창작자들을 만났어요. 그분들과 인터뷰를 하는데, 향수지원 사업이 창작자들의 활동에서는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내가 바깥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이러한 사업들이 창작활동의 모티브나 새로운 네트워크가 되는 거예요. 지원기관이나 정책 목표에서는 벽이 있지만, 창작자들이 움직이는 현장에서는 경계가 다르구나, 싶었죠. 저야말로 어떻게 보면 정책의 틀로 본 거잖아요. 이거는 향수, 이거는 창작, 이렇게 생각했던 건데 창작자 개인들은 이미 그 경계를 허물고 넘나들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지영
저는 ‘신나는예술여행’ 사업에 참여해보지는 않았지만, 주변 동료들 보면 본인들이 만든 작업이 문화 소외 지역에 간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대학로나 어떤 극장이 있는 동네들을 계속 벗어나려는 욕구가 아티스트들한테 다 있는 것 같고, 작업이 이동성을 가질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창작지원과 향수지원이 구분되어 있다는 건 많이 느끼지 못했거든요. 어떻게 많은 사람이 연극을 향유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늘 고민해요. 그래서 어떨 때는 굉장히 투박한 생각이지만, 전 국민한테 티켓을 1년에 두 장씩은 쥐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저도 지원사업 선정자에 이름이 적힐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요. 이렇게 넘나드는 분들도 있지만, 지원제도 밖에서 고군분투하는 분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늘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저도 관객으로서 공연을 선택할 때 지원받은 연극부터 접근한 것 같아요.
범진
저는 예술인복지재단에서 하는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 참여하면서 협업 기업의 요구로 한 미혼모 단체를 만났는데요. 그 단체는 이전에 미혼모들의 이야기로 뮤지컬을 만든 적이 있더라고요. 이게 되게 효과가 컸던 게, 미혼모 분들이 고립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가장 가까운 가족들로부터 단절되면서 외로움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공연을 통해서 가족들을 설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거예요. 그 과정에서 자존감도 회복되고, 치유되는 과정들이 있었는데, 미혼모 당사자 단체이다 보니 규모가 너무 작았던 거죠. 재원도 없고, 비용도 없고요. 그래서 예술인과의 협업 효과를 알고 있어도 자체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긴 힘들더라고요.
배우 우범진. 회색 니트 위에 회색 트위드 자켓을 입었다. 뒷머리가 목을 덮고 있다. 좌담 참여자들이 볼 수 있도록 노트북을 펼쳐 자신이 출연한 영상 작업물을 보여주고 있다. 노트북 화면에는 배우 우범진의 얼굴이 떠 있다.
우범진
소연
그렇게 연계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별로 없어요.
범진
평택 햇살사회복지회는 기지촌 여성노인들을 섬기는 단체인데, 단체가 예술의 효과를 잘 알아서 연극, 음악, 미술 등 예술 활동을 많이 하셨어요. <일곱집매>, <문밖에서>처럼 연극인들이 그분들의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기도 하고, 당사자분들이 직접 참여하신 프로그램도 많아요. 어떤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어요. 항상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피해 다니고, 인터뷰를 하더라도 모자이크 처리하고 가명을 썼는데, 내 이야기를 관객들이 보고 좋아하고 감동 받고, 그 연극이 상까지 받는 것을 보면서 “보잘것없는 내 삶도 드라마가 될 수 있구나. 나로 인해서 사람들이 감동 받는구나” 그게 감동적이었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더 이상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고, 가명 쓰지 않고, 세상에 이야기를 하고, 자기 언어를 갖게 되고, 활동가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 변화의 사례들, 회복의 사례들을 보면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크다 싶었죠. 예술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당신의 삶도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활동, 거기에 공공예술이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평택 왔다 갔다 하는 게 정말 빡셌거든요. 하루 날 잡아서 지방 내려가는 게 일이에요. 여기에서 지방 소외의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공공예술에 대한 요구는 전국에 다 퍼져 있는데, 문화예술인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까 여기에서 불균형이 생기죠.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수도권에서 활동하다 지역으로 내려간, 미술과 예술 기획을 하는 지인이 있는데, 그분이 지역에서 처음 맞닥뜨렸던 게 그 지역 예술인들의 텃세였다고 하더라고요. 지역에 예산은 있는데, 어떻게 잘 접목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있어요.
연희
예술가들이 서울에 많이 편중되어 있다, 그게 문제가 된다는 건 너무 익숙한 말인 것 같아요. 외국은 아티스트들이 지역 사회로 퍼져서 커뮤니티를 이루는 현상을 보인다고 해요. 크루베의 <화가의 아틀리에>라는 그림을 보면, 그의 화실에서 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가 그리는 그림을 보고, 담소를 나누고, 잡다구레한 일을 하는 그런 모습이 있어요. 그의 화실 자체가 어떤 커뮤니티 장으로 여겨지는 거예요. 그 공간 자체가 예술의, 시공간의, 행위하는 현장이 되어버린다는 거죠. 쿠르베의 그림의 의미는 이념과 현실에 대한 것이겠지만요.
어쨌든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 실제로 자기가 근거했던 곳으로 돌아가서 활동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인천에 살고 있는데, 사람들이 멀다고 해요. 그런데 인천에 계속 살아서 그런 느낌을 잘 못 받거든요.
공연을 해온 저의 흐름 안에서 지역이 거점이 되는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생각만요. 그러던 와중에 작년에 <강화도 산책: 평화 도큐먼트>에 참여했는데, 되게 좋았거든요. 전윤환 연출과 앤드씨어터도 인천 출신이고, 서울에서 작업하다가 모두 서울에 편중된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거점을 인천으로 옮기고, 지금은 강화도에서 ‘공간 그리고’라는 예술가 레지던스를 운영하며 작업하죠. 강화도의 문화기획 단체 ‘강화유니버스’라는 팀하고 연계해서 활동도 하고요.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두려움을 알게 된 사람으로서 작업이 되게 유의미했어요. 도민들도 와서 ‘내가 사는 공간이 이런 곳이었어?’ 하셨는데, 그렇게 새로운 자극을 주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강화도의 공간을 같이 밟아보면서 역사를 톺아보기도 하고, 외부의 사람들이 유입돼서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에 대해 자기 사유를 발화하고, 같이 걷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거죠. 물론 반칙이긴 해요. 거긴 극장이 아니라 실제 공간이잖아요. 그러니까 극장하고는 기본값이 다른 거죠. 극장은 그런 자극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우니까.
소연
텅 빈 블랙박스에서 공연을 쌓아가는 것과는 다르죠.
연희
완전 반칙이죠. 완전(웃음). 여긴 완전 다른 공간이니까. 공연 끝나고 하루 자고 오게 됐는데요. 공연 루트가 구 강화대교부터 시작하거든요. 북한 땅이 가장 잘 보이는 도로가 있었어요. 도로 한복판에 논두렁이 있는 곳인데 되게 아름다워요. 거기가 공연의 마지막 장소에요. 공연에서는 구 강화대교로 시작되는 루트를 들어갔다가 나오게 되는데, 공연이 끝났으니까 거꾸로 나왔다가 들어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새벽에 동료들은 자고 있는데, 왠지 혼자서 가고 싶더라고요. 정말 신기해요. 제가 공연했던 공간이 그대로 있는 거예요. 사람들의 일상적인 공간으로. 되게 묘하죠. 그 프로젝트가 여름에 시작했는데 제비가 막 날아다니던 장소에 이제는 오리들이 날아다니고 있고, 논두렁의 초록색 모종들이었던 어떤 벼는 베어져 있고 어떤 벼는 베어지기를 기다리고 있고.
한 거점에서, 바람이 엄청 많이 불었는데, 어떤 주민분이 열심히 걷고 계시다가 저한테 말을 걸더라고요. “제가 공연에서 막 뛰어다녔던 길이에요” 이렇게 설명드리니까 그분도 “강화도에 산 지 1년 반이 됐는데 오늘은 추워서 사람들이 안 나온 것 같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거예요. 공연에서는 더 가고 싶었는데 너무 길어서 못 갔던 길을 이제는 한참 너머까지 주민분과 걸어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다 돌아가는데 그분이 저를 막 부르는 거예요. 그리고는 같이 걷는 분들과 나눠 마시려던 유자차를 저한테 주셨어요. 그런 게 저한테 되게 많은 걸 남겼어요. 이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 더 어떤 작업을 해야 할 것 같고, 선택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여하게 된 의도는 지역에서 탈극장 공연을 하고 싶다는 거였는데, 더 큰 걸 받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범진

“자신의 주된 업무가 아닌 일을 할 때, 어떻게 동기부여를 얻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가.”
“나는 내 삶의 부분들을 어떻게 경계 짓는가.”
“공공예술의 역할과 방향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연희
제가 본 선배들 중에는 지원을 받지 않고 연극을 하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지금은 대부분 지원금에 의존해서 창작을 하고 있잖아요.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의도는 전혀 없고요. 제가 보아온 것들, 본 것에 대한 이야기만 해볼게요. 제가 간혹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해요. “야, 지원금 받아서 공연하면 다 무료로 공연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면 다 공공연극이고, 공공예술인 거 아니야?” 그런데 우리 다 알죠. 현실적으로 지원금 2천만 원 받아서 작품에 참여하는 인력들의 생계를 충당할 수 있는 구조를 짤 수 없다는 걸. 이걸 다 공공의 영역으로 포함할 수 없는 거죠. 그럼 공공이라는 단어를 어떤 범주에 포함시킬 건가? 창작자 영역과 향유할 수 있는 사람, 결국 이 모두를 포함하지 않은 상태로 공공에 대한 논의가 되는 것 같아요. ‘공공’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다 공공미술만 나와요. 그래서 혼자 열심히 생각해보고, 또 주변에 물어보고, 그런데 아무도 답을 안 주고, 또 어떤 정책사업 논의하는 자리에 갈 만큼의 욕구가 막 생기진 않고요.
지영
공공이란 말만 놓고 보면 너무 크고, 무게가 있는데요. 전 공공이 결국 삶이라는 말로 치환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술가들도 공공이라는 틀 안에서 삶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여기 계신 분들이 경험하신 것처럼 때로는 창작자들의 삶까지 책임지게 되는 것 같고요. 연희 배우님의 강화도에서의 경험과 그러한 연극들이 아주 많아지면 흔히 말하는 공공예술, 공간지원, 지역예술, 이런 경계가 자연스럽게 쓸모없고 무의미해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관객들도 공공예술이 자신의 삶과 가깝다고 생각하면 되게 편안해질 것 같아요.
전 지금이 연극인들의 겨울방학처럼 느껴져요. ‘올해는 뭘 하면서 1년을 채우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모임 같은 교류 활동을 하게 됐어요. 먼저, 변방연극제를 같이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자원 활동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고 작업하는 장으로 축제를 바라봤는데, 이번에는 손수 축제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고요. 또 하나는 어린이들에 대해서 좀 알고 싶은 거예요. 어린이가 저에게는 먼 존재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가까워지고 싶은 존재거든요.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마치 여타 다른 소수자들을 대하듯이 멀고 이해하지 못할 존재로 생각하게 될 것 같아서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을 만드는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7더하기’라는 어린이 공부 모임을 하고 있고요.
또 혜화동1번지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극장을 같이 가꾸고 운영하는 일인데요. 극장은 늘 꿈꾸게 되는 곳이잖아요. 내가 극장을 이렇게 책임을 지고 한번 이 터를 닦아본다는 생각인데요. 시작할 때 현타가 오더라고요. 이렇게 젊은 연극인들이 이 비싼 월세를 어떻게 책임질까, 고민하는 걸 보면서 저도 일원이지만 엄청 안쓰럽기도 하고요. 그러다 극장 페인트칠을 같이 했는데, 손으로 극장을 더듬고 새로 만드는 경험이 굉장히 또 좋더라고요. 요즘은 이렇게 쉬면서 정신을 돌보는 시간을 갖는 것 같아요. 상담치료라든지, 정신을 좀 가다듬어서 나중에 작업을 요이땅! 했을 때 요동치지 않을 수 있게요. 작년에는 일부러 작업 수를 확 줄이고 ‘지원사업 없이 해볼 거야’ 이러면서 혼자서 해봤거든요. 근데 그것도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올해는 지원사업도 한두 개 정도 넣고.
소연
선정됐어요?
지영
하나 됐어요. 오늘도 하나 넣을까 말까 하다가 한 글자도 못 쓰고(웃음). 제가 뭔가를 주도적으로 책임지는 프로젝트 말고, 삼삼오오 모여서 모임 속에 있으니까 굉장히 마음이 편안하고, 확실히 거기에서 오는 아늑함과 힘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요즘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연희
흐르듯이 이렇게 발생되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차 마시듯이. 이렇게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발생되는 거.
소연
공공예술에서 도대체 공공이 뭐냐는 질문을 하셨는데요. 그 질문에 동의가 돼요. 비평의 영역에서 쓰이는 말과 정책의 장에서 쓰이는 말, 또 몇몇의 논문에서 쓰이는 말이 너무 다른 차원에서 있는 것 같아요. 혼란스럽죠. 그런데 또 그렇게 혼란스럽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떻게 보면 혼란스럽다는 말이 정의의 문제는 아닌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공공예술의 공공은 무엇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그걸 합의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평의 영역에서 봤을 때 이렇게 혼란이 지속되는 이유는 담론장이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정의를 갖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와 나의 생각이 뭐가 다른가, 뭐가 같은가를 서로 확인하는 거죠. 저는 담론장이 그런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질문이 있어요. 우범진 배우님이 경험은 좋았는데,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스트레스가 뭔지 궁금했어요. 되게 다양한 경험과 활동들이 있는데, 비평의 장이 항상 소위 대학로로 집중되면서 연극의 다양함이나 다채로움은 담론화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있지 않을까? 바깥에서 벌어지는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예술성의 성취가 읽히지 못한 채, 각자 나의 따뜻하고 좋은 경험으로만 의미화되다 보니까 “예술가로서는 무엇으로 남지?” 이런 질문이 쌓일 수 있는 건 아닐까요?
평론가 김소연. 투명한 안경테에 단발머리, 남색 티셔츠에 회색 목티를 받쳐 입었다. 두 손을 앞쪽으로 자연스럽게 뻗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다. 책상 위에 태블릿PC와 종이, 펜 등이 놓여 있다.
김소연
범진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예술가로서의 인정욕구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미혼모 단체와 했던 미혼모 캠페인은 영상을 만들고, 기업과 연결해서 그걸 기업 홈페이지와 인스타에 올렸는데, 전혀 반응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유명 연예인이 어느 미혼모 단체에 기부한 건 이슈가 되잖아요. 그리고 KBS에 ‘허스토리’라는 여성문제 이슈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 있어요. 그 채널에서 평택의 햇살과 저희 워크숍을 촬영해서 올렸는데, 그것도 너무 반응이 없는 거예요. 우리의 활동이 당사자 개개인에게 효과는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반응이 미미하다 보니 정말 무기력하구나, 거기에서 오는 한계와 아쉬움을 느꼈고요.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한계이고 아쉬움일 뿐이지 스트레스나 상처가 되진 않았어요. 당사자들의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에 예술인들의 성취감도 높았고요.
정작 스트레스를 받는 건, 파견예술활동이 자기 주도적으로 일정을 맞출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인데요. 한 달에 10회 이상 30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이번 달은 60시간 할 테니까 다음 달에 좀 덜 할게요’ 이럴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제가 관리할 수 없는 영역이다 보니까 제 주된 작업의 영역까지 침범당하는 느낌이랄까요? 역량, 에너지, 시간, 관계의 문제에서 좀 감당하기 벅찰 때가 많거든요. 올해는 일정이 많이 겹쳐 있어서 작년만큼 역량을 쏟을 수가 없는데, 그로 인해 기관에 누가 되거나 누군가는 서운할 수도 있는 문제들이 있지만, 작년처럼 할 수는 없거든요. 거기서 오는 갈등이죠.
소연
향수사업에 대해 실제 참여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 사업들의 문제는 계량적 평가만 남는다는 것 같아요. 과정에서는 되게 재미있는 경험이 있었고, 흥미로운 작업이었는데, 그런 과정들은 남겨지지 않고 수혜자가 몇 명이고, 시간을 잘 채웠고, 이런 성과로 평가받죠. 창작활동은 관객이 천 명이 들어도 언급되지 않고 지나가는 작품도 있지만, 3일 동안 100~200명 정도의 관객이 봐도 비평에서, 혹은 동료들로부터 반응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 있죠. 향수사업이라든가, 공공예술이라든가, 예술교육 등등 극장 밖의 활동에 대해 그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술적 계기, 예술적 성취에 대해 같이 읽어낼 수 있는 담론장이 있어야 힘이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담론장이 풍부해야 새로운 실험도 하고, 몰입도도 커지고요. 그 안에서 성취의 계기를 읽어내고 드러낼 수 있어야 창작과 향수의 경계가 흐트러질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은 설계 자체가 일종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예술이 개입한다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예술을 도구로 접근한다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이 놓이는 맥락이 달라지면서 기존의 예술장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여러 다양한 예술적 계기가 발생할 수 있다, 발생할 것이라는 목적 혹은 의도도 있습니다. 예술가들의 예술활동이 사회적 역할도 하고, 그것이 노동으로서 대가를 받고, 또 새로운 사람과 환경을 만나서 벌어지는 예술적 계기 등을 통합해보자는 것이죠. 사업설계에서는. 물론 얼마 전 논란이 있었던 것처럼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의 문제들도 있는데, 그것만이 아니라 담론장이 없다 보니 정성 평가는 맥락이 지워진 채 사업취지를 증명하는 몇몇 성공사례만 남고 대부분의 활동은 정량평가, 시수를 채웠는가 등등으로 분리되어 있어요. 그런 상황이 문제적이라고 봐요.
범진
그런 부분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요. 듣고 보니 그런 담론장은 없었던 것 같고, 앞으로 담론장이 형성돼서 이야기가 나온다면 좋을 것 같네요.

연희

“‘사물의 현재 있는 곳, 일이 생긴 그 자리, 일이 실제 진행하거나 작업하는 그곳’이라는 현장의 사전적 의미에 동의하나요?”
“오늘 이 좌담회의 생각이 묻은 시간과 공간은 얼마, 어디인가요?”
“각자 어떤 관점과 필요, 요청에 의해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요?”
“지금까지 거쳐온 공간 중 자신의 ‘현장’과 밀접한 곳이 있었나요?”

소연
예술교육도 제도를 설계할 때는 미래의 관객을 길러내고, 창의성을 키우고, 예술강사라는 예술가의 일자리도 만들자 등의 목적과 취지가 있었어요. 그렇다면 그간의 예술교육에서 이러한 목표가 얼마만큼 성취되었는지에 대해 점검하고 논쟁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죠. 그간 예술교육에서 논쟁은 예술 강사 지위와 처우밖에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좋아했다든가 만족했다는 것을 넘어서 예술교육에서 예술적 계기는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고 때로는 논쟁도 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펼쳐질 장이 없는 거예요. 모범사례만 소개하고, 정책의 당위성과 효용성만 주장하죠.
연희
저는 김소연 선생님의 말씀이 지원제도나 기조, 지향하는 바, 그 중심이 ‘다음’을 향해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너와 나의 의견을 내놓고, 다음을 향해서 견주어보자고 이해되어서 좋은 것 같아요. 김소연 선생님처럼 사회적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게 필요한 것 같은데 저한테는 그런 언어가 없어서요.
지영
이 사이를 찾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말씀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요, 그럼 이야기 장이 필요한데 그걸 어떻게 만들죠? 그래서 오늘 이런 자리도 굉장히 귀하잖아요. 연극in이라는 채널이 있으니까 이런 장이 만들어지는 건데, 그마저도 너무 없죠. 이렇게 온라인으로라도 볼 수 있는 채널이 너무 없고, 어떤 사업의 끄트머리에 담론장을 만들자고 했을 때 정작 예술가들은 어떤 언어로 풀어야 할지 어려워하기도 하고요. 또 공공 담론장이 만들어졌을 때 적극적인 연극인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바쁘거나 소극적이어서 안 가기도 하고요. 어떻게 이런 이슈를 갖고 현장 연극인들이 참여하도록 할 수 있을까? 그게 물음표인 것 같아요.
연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소명의식이랄까요? 이 일에 대해서, 이 안에 있다, 내가 이 안에 살고 있다, 이게 사는 문제와 연관되었다는 생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요. 여러 가지 다방면의 문제들이 연결되어 있잖아요. 정책이란 단어 하나에도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야 하니까 “내 경험 하나만으로 내가 이야기해도 될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열정이 있어도요.
배우 조연희. 청색 재킷 위에 검은색 재킷을 겹쳐 입었다. 분홍색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있으며, 동그란 안경을 쓰고 검은색 머리띠를 한 단발머리다. 책상 위에 노트북을 펼쳐두고 있으며, 그 옆쪽으로 노트를 두고 펜으로 메모하고 있다.
조연희
소연
그것도 깨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웹진이라는 형식은 문자 중심이고, 문자로 소통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이 있죠. 예를 들어 오늘 같은 자리라면 기획자가 토론 주제를 정하고 패널을 섭외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진행할 사회자를 정해서 진행하죠.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진행하고자 하잖아요. 왜냐하면 기존의 문자 중심의 효율적인 틀을 깨야 새로운 언어가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배우가 연기를 위해 여러 훈련을 하는 것처럼 평론가는 매체 비평문 등의 형식에서 효율적인 말하기를 위해 훈련하는 사람이고 흔히 담론장이라면 그렇게 훈련된 사람들의 언어로 대화하죠. 그래서 담론장이 필요하다, 그러면 비평지원사업을 만들어야 한다로 이어지는데, 제가 말하는 담론장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려면 소통의 방식이 달라져야 하고 그런 고민과 시도가 있어야 새로운 담론장이 가능할 것 같아요.
연희
20대 때는 연기 얘기는 하지 않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30대에는 신뢰 관계가 있는 배우들하고만 조금씩 나누고. 혼자서 공부하고, 생각하고, 공연 보고, 그런 시간이 길었는데요. 그래서 김신록 배우가 웹진에서 연기 중심으로 [대화] 코너를 진행했을 때 되게 좋았어요. 아, 배우들이 영업비밀을 알려준다(웃음)! 저도 그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몇 시간 얘기 나누다가 그런 말을 했어요. 너무 좋다고, 고맙다고. 저는 어떤 흐름 안에 있으며, 관계를 통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흐름 안에서 우범진 배우님과 비슷한 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럴 때 스스로 막 욕도 했어요. 하루에 30분씩 자고, 택시로 이동하고, 너무 많은 일을 하면서 또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하지만 연습시간을 사수하고 어떤 일에는 소명의식을 갖고 해야 하고. 이미 잘못되고 있고, 뭔가 맞지 않는구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면서도 예술과 생계를 분리하면서 살고 있고. 시간을 쪼개서 역량 강화를 하고, 워크숍을 쫓아다니고. 그러면서 내일의 영혼을 막 당겨서 쓰는 거죠. 결국에는 멈춰야 할 때가 오더라고요. 하루는 24시간, 유한하잖아요.
아무튼 저는 멈추고 나서 빨리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특정시기에 공연준비, 역량강화, 연기 외 활동 등으로 내일 영혼을 당겨쓰고 몸이 아작날 때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그땐 개인적으로 돈도 많이 벌어야 했어요. 그런 일들이 예술에서 파생된 작업들로 돈을 벌 기회잖아요.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제가 예술 혹은 예술적인 일로 생산적이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걸 알고 되게 섬뜩했어요. 힘들어 보이지 않으려고 되게 애썼거든요. 그러다 일을 해야 하는데 혼자 잠 들었어요.
범진
잠.
연희
잘 잤어요. 그때가 변곡점이라고 생각해요. 예술활동과 삶을 분리할 수 있을까? 선배들은 “분리해야 하는 거야. 너 그러면 안 돼. 거쳐 가야 해” 그러는데 저는 어지간히 분리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그래도 되는 건가? 싶은 거예요. 동시대적인 작품을 하면서 고뇌하는데, 작품과 삶을 연결 짓는 공연을 하는데, 결국 작품은 작품으로 준비해야 하는데. 분리가 되는 건가? 폭력, 슬픔을 미화하는 작품을 싫어했던 시기도 있어요. 공연 보는 걸 좋아하지만 안 봤던 시기도 있었죠. 인정하니까 쉬웠어요. 난 분리가 안 되는구나. 분리 안 할래. 어떤 계기에 의해서 그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제가 강원도 화천에 ‘궁리소 묻다’가 운영하는 ‘예술텃밭’이라는 공간을 되게 좋아해요. 2021년 ‘즉흥수행법-액션씨어터’라는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그 시간이, 공간이 좋았어요. 그 공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힘이었던 것 같아요. 왜 좋을까를 다녀온 다음부터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워크숍에 다녀오고 나서 몸을 정말 멈춰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몸이 멈춰 버리더라구요. 모든 걸 끊고, 사람도 끊고, 치료 받으면서 집에 있었어요. 연극인들은 일상이라는 게 없죠. 일상이란 단어를 검색해 보면 매일 반복되는 걸로 나와요. 그때 제가 했던 건 매일 나가서 걷는 거였거든요. 집에서 부평공원, 부평공원에서 두 바퀴 걷고, 병원, 이런 식으로 매일 걷는데, 방언처럼 툭툭 어떤 말들이 나오더라고요. “왜 좋았지? 그때 퍼포먼스 왜 좋았지?”
그 워크숍에서 개인별로 짧은 퍼포먼스를 했거든요. 그전까지 제가 무대에 서는 동력은 칭찬받고 무대에서 빛 받고 박수 받고 연기 잘 하고, 이런 데서 나왔다면, 그때 어떤 퍼포먼스가 좋았던 이유는 달랐어요. 행위가 재화로 남는 게 아니라 그냥 향기처럼 슥 하고 가슴에 나는 게 좋았던 거예요. 저는 이미 몸으로는 그렇게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입으로, 말로 그걸 뱉어낸 거예요. 예술적 행위의 동력이 삶과 맞아떨어졌다는 걸 인식한 거죠. 그걸 문장으로 뱉어낸 순간, 되게 값진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모든 게 연결되어 있잖아요. 다 관계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분리할 수 있겠어요. 관계를 통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마음을 되게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 마음을 기준으로 삼고, 하나, 하나.
소연
원지영 연출님이 지금 하는 건 동면프로젝트라고 하는데, 겨울잠이 멈춰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마 곰은 겨울잠을 하면서 아주 중요한 생명활동을 하고 있을 거예요. 밖에서 보기엔 ‘왜 작업 안 하지?’ 하지만, 본인은 굉장히 여러 가지 작업을 하고 계시잖아요. 정책도 그렇고 기존의 담론장도 그렇고 창작과 생활이 분리되어 이야기되거나 지워져 있죠.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창작자들의 개별 활동에서는 통합되고 연결되는 과정을 말씀해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중요한 과정이 개인에게 맡겨져 있어요. 제가 새로운 담론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현재와 같이 분리되거나 어느 하나를 지우고 다른 하나만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존 구조에서 스스로 파괴되지 않고, 자기를 보듬고 치유하고 자라나게 하는 이런 이야기가 더 많이 공유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지영

“예전에 우리가 흔히들 이야기하던 ‘극단’이라는 고정적인 패밀리를 벗어난 체제는 어떠한 것인지, 그 활동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어떤 것인지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겨울은 어쩐지 연극인들에게 방학철인 것 같습니다. (하하) 주변을 보아도 그렇고요. 이 시기에 어떤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연극 동네에서 (즉, 우리가 현장이라고 부르는 곳) 즐겁게 서로 알고, 그 가운데에 속하기도 하지만 소위 ‘연극판’에 너무 머물지 않고 자꾸 바깥을 바라보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해요. 그럴 땐 어떤 마음에서인지, 왜인지, 그런 걸 느껴보았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지영
오히려 어떤 작은 순간들이, 어쭙잖은 예술보다 훨씬 감동적일 때가 있거든요. 밭에서 무언가 하나가 이렇게 자라서 나오는 것을 보는 순간이라든지. 실제로 그런 작업도 많아지고요. 저 역시도 언젠가 정신을 딱 차리고 보면 ‘내가 너무 연극 동네 안에서 이렇게 헤매고, 좁은 곳에서 이렇게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아차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러다가 잠시 멈추고 보면, 작업 안에서 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가령 제가 활동을 하다가 만난 할머님과 공연을 한다든지, 실제로 제 첫 연극도 그냥 무턱대고 아버지랑 해버리기도 했고요. 계속 바깥에 있는, 연극 밖에 있는 인물들이 연극이 되어가는 것들을 보고 싶어 한다든지. 이런 과정으로 자꾸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모든 창작자들을 보면 다 그런 욕구가 느껴지거든요. 오늘 이야기에서 다 연결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오늘 담론장이라는 화두가 많이 나왔는데요. 진짜 여전히 많은 혁명이 필요하구나. 굉장히 작은 혁명들이 많이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돼요. 얼마 전에 김근태 도서관에 갔는데, 거기에 “최선을 다해 참여하라. 그러면 힘이 생기고, 그래야만 바꿀 수 있다”라는 문구가 있어서 사진을 찍었어요. 활동하면서 조금 지쳐서 놓치기도 했었구나, 하는 반성도 들기도 하고요. 네. 혁명에 참여하겠습니다(웃음).
연출가 원지영.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웨이브 머리에 남색 코듀로이 티셔츠를 입었다. 양 손바닥을 자연스럽게 위로 펼쳐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원지영
소연
공공, 교육, 커뮤니티 아트, 장소 특정 공연, 이런 것들은 제도화된 경계를 넘어서 때로는 거의 정치적인 운동에서 출발하기도 하는 작업이거든요. 저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활동이 전개되는 방식은 정치성이 거의 거세된 상태라고 생각해요. 각자의 순간은 있지만요. 영국의 아동 청소년 연극의 경우에도 68세대들이 꿈꾸고, 만들고, 확장되면서 이론화되고, 체계화되어 갔던 게 있는데, 그런 과정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채 방법론으로 국내에 소개되죠. 물론 개별 작업에서 관객과 만나는 순간 꽃을 피울 때가 있죠. 그렇지만 꽃을 피운 하나의 사례가 있다고 해서 그러한 방법론을 도입하면 다 꽃이 피는 건 아니죠. 정치성이 거세된 채, 맥락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으면서 혼돈 속에 유입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평론가로 생각해보면 요즘엔 허구의 진실이 갖는 힘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요. 허구를 통해 길어 올려지는 진실, 그러한 진실의 힘에 대해 생각해요. 예술과 삶을 일치시키는 많은 이론, 방법들이 사실은 또 하나의 연극적 제도가 되어 있고 다양한 연극을, 다양한 목소리를 연극에 도입하고자 했던 많은 시도들이 연극계 안에서만 맴돌고 때로는 연극의 담론을 독점하려고 하고 그러면서 또 다른 여러 이야기들, 목소리들을 주변화시키는 양상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져요. 평론가로서는 요즘 연극과 삶의 만남에서 허구의 이야기가 갖는 의미, 진실이 허구의 이야기로 떠올려지는 순간 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비평이나 정책의 담론에 갇히지 않고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무엇인가로 잡아내고 싶어요.
연희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공연이 올라오면 너무 보고 싶어요. 그런 땀 흘리는 공연들, 그런 공연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몇몇 배우와 나눈 적이 있어요.
소연
사실 저는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주목하는 시선이 한국 연극이나 우리 사회에서 자라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내 눈앞에서 펼쳐져도 어떤 중요한 계기를 다 못 믿는 관습적인 평가가 있기 때문에, 저도 그런 문제의식만 있었지, 어떻게 갈고 닦아야 하나에 대한 접근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범진
다른 맥락의 이야기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안과 밖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맥락 자체가 수평적인 구조에서 나온 건 아니잖아요. 안이 있고, 중심이 있는 거라면 어떤 면에서는 그게 불평등한 구조나 권력 중심적인 것을 담보한 단어라고 보는데요.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저에게 바깥은 나와 타자라는 관계를 들여다보게 해요. 더 나아가서 예술 활동으로 보면 나와 내가 만나는, 내가 수행해야 될 역할로 해석이 되고요.
이걸 최근의 고민과 연결해보면 모든 종교에서 발견되는 주제가 황금률이잖아요.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유학에서 그것을 설명하는 단어는 용서할 서(恕)더라고요. 같을 여(如)에 마음 심(心), 같은 마음이에요. 같은 마음이 뭘까,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한다고 할 때, 채식주의자에게 소고기를 대접할 수는 없잖아요. 나와 다른 부분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지, 타자화하지 않고 내가 중심이 되지 않을 수 있을지가 늘 고민인 것 같아요. 바깥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아니라는 얘기이기 때문에 나를 중심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내가 정말 타자를, 바깥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얼마나 같을 수 있을까? 경계가 있다면 그 경계라는 선의 굵기를 얼마나 가늘게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듭니다.
연희
전 원지영 연출님의 질문을 보고 다시 질문이 생겼는데요. 바깥을 바라보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지영
제가 하는 예술이 너무 무력하다고 느끼는 순간이요. 그게 추하든 아름답든. 추해도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요. 충분히 나를 건드리지 못하거나 아름답지 못할 때요. 그리고 삶이 훨씬 강렬할 때. 그때 바깥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연희
경계는 누군가 만들기도 하지만 스스로 만들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삶은 입체적이잖아요. 그런데 선은 입체적이지 않잖아요. 경계란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면 뜻이 되게 많거든요. 제가 싫어하는 경계는 누가 만들어놓은 경계에요. 저도 제가 만든 경계가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말을 잘 못 해, 사회적인 언어로 얘기해야 돼. 저도 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 모임에서 언어에 대해 자꾸 발견되는 게 있어요.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다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제가 기억하기 싫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일들이 제 어깨를 잡고 뒤흔드는 거 같았거든요. 그게 저를 공부하게 만들었고요. 학문에 의존해봤는데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어쨌든 저도 안과 밖을 열심히 생각했던 적이 있고요. 그래서 밖이 뭘까? 오히려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적어봤어요. 조심스럽게.
‘바깥을 바라보는 경우’라고 하셨는데 언제 ‘바깥을’ 보시나요?
‘안’에 있을 때 ‘밖’을 바라보는 경우, 그런 마음이 드는 때, 내가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 상태는 어떠한지요…?
근데요… ‘밖’이 궁금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밖’에 나가보지 않았다면요.
좌담회 전경. 가운데 공간을 두고 네 개의 테이블이 사각형으로 놓여 있다. 각 책상에 네 명의 좌담 참여자가 앉아 있고, 그 뒤쪽으로 네 명의 참관인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공간의 벽면은 엷은 베이지색이고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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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이연주 본지 편집위원
연극 쓰고 연출합니다. thukushi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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